[On Stage]소프라노 박혜상,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새 앨범 '숨'을 얻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삶·죽음 깊이 고찰
세이킬로스 비문 위로와 영감 얻어
오는 13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
뉴욕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베를린국립오페라 등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소프라노 박혜상은 지난 2일 도이치그라모폰(DG)에서 발매한 두 번째 앨범의 제목 '숨(Breathe)'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결정했다. 앨범 표지 사진을 물속에서 촬영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였다.
박혜상은 2022년 8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다. 하루에 20~30㎞씩 25일간 걸었다. 순례 중 하루는 자각몽을 경험했다. 신비한 에너지에 이끌려 산 정상에서 내려온 뒤 물속으로 들어가는 꿈이었다. 죽음의 공포가 느껴졌다. 정작 박혜상이 물속으로 들어간 뒤 돌연 꽃과 나무가 빛나고 하늘에는 무지개가 떴다. 박혜상은 이 모습을 물속에서 편안하게 숨을 쉬며 지켜봤다.
박혜상은 5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꿈을 설명하며 "물 안에서 숨을 참다 죽을 수도 있다는 가장 두려운 순간에 가장 살아있음을 느꼈다"고 했다. 앨범 제목을 숨으로 정하고, 수중 촬영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태국으로 가서 프리다이빙 코스를 수료했다.
앨범 구상을 시작한 때는 2년 반 전,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시기였다. 박혜상은 코로나19로 좋아하는 여러 사람을 잃어버려서 어둡고 힘든 시간이었다고 했다. 삶의 이유는 무엇인지,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가라는 고민에 휩싸여있던 시간이었다. 고민이 커지면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산티아고로 향했다.
"여러 가지 영적인 체험도 했고 외로움도 강렬히 느꼈다. 하지만 자연이 거저 주는 선물에, 살면서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구나라는 깨달음도 얻었다. 그리고 사람이라는 존재가 회복력도, 의지도 대단하다고 느꼈다. 애써 많이 가지려 하기보다는 내려놓았을 때 세상이 주는 평안함이 있고, 그 안에 진정한 행복이 있다는 점을 산티아고에서 많이 느꼈다."
앨범의 주제는 '살아 있는 동안 빛나자'다. 고대 그리스의 폐허 유적에서 발견된 세이킬로스의 비문에서 영감을 얻었다. "세이킬로스는 1~2세기 쯤에 살았던 인물인데 아내를 잃은 뒤 묘비명을 적었다. '살아있는 동안 빛나라. 그대여 결코 슬퍼하지 말아라'는 문구에서 순간적으로 치유(힐링)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죽음과 삶에 대한 실존적 고민과 해답을 주제로 하는 음악을 새 앨범에 담았다.
첫 곡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While You Live)'은 박혜상이 현대 음악 작곡가 루크 하워드에게 의뢰한 곡이다. 하워드의 기존 작품에 세이킬로스 비문의 가사를 넣은 편곡 작품이다.
폴란드 작곡가 헨리크 구레츠키(1933~2010)의 교향곡 3번 '슬픈 노래들의 교향곡'도 담았다. 3악장으로 된 이 곡에는 악장마다 소프라노의 독창이 삽입돼 있다. 특히 2악장의 가사는 나치 수용소 감방 벽에 새겨진 어느 소녀의 기도문 내용이다. 박혜상은 "세계 2차 대전 당시에 18살 소녀가 감옥에서 엄마에게 쓴 글이다. 엄마에게 걱정하지 말라면서 마리아가 나를 지켜줄 거야라고 얘기한다. 18살 소녀가 강인한 힘을 보여준다. 자신에게 다가올 운명을 인지하면서도 엄마에게 두려움 없이 이야기했다. 무언가를 믿고 있다는 것에 대한 힘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고 했다.
아쟁의 선율이 인상적인 한국 작곡가 우효원의 '어이 가리'도 앨범에 담았다. "항상 한국 가곡을 많이 부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제가 애국심이 강한 사람은 아닌데 한국 노래를 부를 때 혹은 한복을 입을 때 저도 모르게 힘이 생기는 것 같다. 한국 가곡을 어떤 곡을 넣으면 좋을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우효원 선생님과 인연이 닿아 녹음할 수 있었다. 행복했다. 제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 뿌리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정말 영광스럽고 감사하다."
박혜상은 오는 2월13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새 앨범 발매 기념 리사이틀을 한다.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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