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전쟁에 팔짱 실망" 흑인 청년층 마음 돌아선다 [르포]

김형구 2024. 2. 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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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8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15년 백인 우월주의자의 총격으로 9명의 신도가 숨진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흑인 감리교회 ‘마더 엠마누엘 AME 교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Still~ all my song~ shall be~, nearer~ my God~ to Thee~(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4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시의 ‘마더 엠마누엘 AME 교회’. 일요일인 이날 주일 예배가 열린 교회 안에서 신도들이 부르는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1817년에 설립돼 미국 남부에서 가장 오래된 흑인 감리교회로 꼽히는 이 곳엔 아픈 기억도 있다. 2015년 한 백인우월주의자가 총기를 난사해 목사와 신도 9명이 희생됐다. 사건 뒤 장례식을 찾은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은 추도 연설 중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Amazing Grace)를 불러 미국인의 심금을 울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8일, 민주당 대선 후보를 뽑는 첫 공식 경선인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예비경선·3일)’를 한 달 가까이 앞두고 이 교회를 방문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9년 전 총기 난사 사건을 거론하며 “백인 우월주의는 미국을 분열시킨 독”이라고 비판했다.


“4년 전 바이든 찍었지만 이번엔 확신 없어”


바이든의 지난달 교회 방문을 두고 미 매체들은 선거전략적인 고려 때문으로 풀이했다. 전통적 민주당 지지층으로 꼽히지만 최근 민심 이반 기류가 뚜렷했던 흑인 유권자의 표심을 다시 붙들어놓으려는 노력이란 해석이었다.

특히 주 인구에서 26%를 차지하는 흑인 인구가 많은 사우스캐롤라이나 경선에서 압도적 지지세를 확인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리매치가 유력한 대선 본선 경쟁력을 입증시킬 필요가 있었다.

일요일인 4일(현지시간) 오전 주일 예배가 열린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흑인 감리교회 ‘마더 엠마누엘 AME 교회’. 찰스턴=김형구 특파원

취재팀이 이날 만나본 흑인 신도 사이에선 “바이든을 좋아한다”는 목소리가 앞섰다. 동시에 지지자라고 밝힌 이들조차 올해 대선에서 그의 재선을 장담할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전날 프라이머리 투표에 참여해 민주당 대선 후보로 바이든 대통령을 찍었다는 한 흑인 여성(71)은 “11월 대선은 어느 후보가 더 많은 사람들을 투표소로 끌어모으냐는 싸움인데 바이든 지지자들이 얼마나 열성적으로 투표하러 나갈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옆자리에 있던 다른 흑인 여성(78)은 “4년 전 대선에서 바이든을 찍었지만 이번에도 같은 선택을 할지 확신이 안 선다”고 털어놨다. 이어 “반드시 투표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이나 위기감이 4년 전만큼 크지 않다”고 했다.

부인과 함께 예배를 마치고 나온 밥 맥스웰 역시 전날 프라이머리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어떤 정치인이 우리 삶을 바꿀 거라고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독교인으로서 나는 미국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다. 대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주님의 선택을 믿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4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흑인 감리교회 ‘마더 엠마누엘 AME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온 밥 맥스웰(오른쪽)과 그의 아내가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찰스턴=중앙일보 워싱턴 총국


“바이든 지지율 하락은 ‘나이’ 탓”


지난달 교회를 방문한 바이든 대통령을 만났다는 60대 흑인 여성 신도는 바이든에 대한 흑인 지지율이 떨어진 이유를 묻자 “나이 때문인 것 같다. 행사 중 자주 넘어지는 장면이나 말실수를 하는 장면을 접하면서 과연 안심하고 미국을 맡길 수 있나 생각이 들 수 있다”고 답했다.
4일(현지시간) 오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흑인 감리교회 ‘마더 엠마누엘 AME 교회’에서 주일 예배를 마치고 나온 익명의 60대 흑인 여성 신도가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찰스턴=중앙일보 워싱턴 총국

바이든의 친서민 정책과 성과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을 이유로 들기도 했다. 그는 “바이든은 자신이 하는 일을 나팔을 불며 떠들썩하게 알리는 스타일이 아니다”며 “대학 학자금 대출 탕감 제도는 저소득층에게 인기가 많은 정책이었는데 연방 대법원의 브레이크로 시행이 중단된 것을 모르고 정부 탓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프라이머리 전날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전통적 흑인대학(HBCU)’ 사우스캐롤라이나주립대를 찾아 지지를 호소하며 바이든 행정부가 추진한 학자금 대출 탕감 정책과 흑인 대학 지원 확대 등의 성과를 홍보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만난 흑인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에 대한 극도의 반감 때문에 그 반대급부로 바이든을 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이들도 꽤 있었다. 이날 교회에서 만난 미 공군 출신 데니스 스탠턴은 “트럼프가 대통령이었을 때 우리가 겪은 혼란을 지금도 기억한다”며 “우리가 대선에서 투표해야 할 지도자는 ‘바른 사람’”이라고 말했다.

프라이머리 당일 웨스트컬럼비아 커뮤니티센터에 마련된 투표소에서 만난 여성 유권자 쉴라(71)도 “미국은 모두를 위한 나라여야 하는데 트럼프는 부자들만을 위한 나라로 이끌었다”며 “미국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해선 트럼프보다 바이든이 낫다”고 말했다.


젊은 층 반감…“전쟁에 팔짱 실망”


중장년층 유권자보다 흑인 젊은 층은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뚜렷한 편이었다. 특히 지난해 10월 발발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이후 바이든 정부가 보이는 친이스라엘 노선에 대한 반감을 드러냈다.

부모와 함께 교회 예배에 참석한 한 20대 여성은 “수만 명의 무고한 희생자가 발생한 가자지구에 더 이상의 살상 공격이 나와선 안 된다”며 “이스라엘을 강하게 압박해야 하는데도 팔짱만 끼는 것 같은 태도는 무척 실망스럽다. 이는 바이든의 재선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8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흑인 감리교회 ‘마더 엠마누엘 AME 교회’에서 연설을 하는 동안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당장 휴전하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AP=연합뉴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이 이매뉴얼 감리교회에서 연설했을 때에도 일부 참석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가지지구에서) 즉각 휴전하라”를 외치며 깜짝 시위를 벌였다.

또한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미국 내 1000명 이상의 흑인 종교 지도자들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의 휴전을 추진하도록 바이든 대통령에게 압력을 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NYT는 “많은 흑인 신도들은 가자지구가 이스라엘 공격으로 파괴되고 있는데도 정부와 여당이 휴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느끼며 환멸감을 나타내고 있다”고 전했다.

찰스턴=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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