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 일본의 인플레이션 상승과 시사점

2024. 2. 6.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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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의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급속히 인상한 후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물가가 이례적으로 빠르게 상승했기 때문에 각국의 중앙은행이 가장 중요한 책무인 물가 안정을 위해 분투하는 상황이다.

2022년 글로벌 고물가 현상이 발생하면서 일본의 인플레이션은 정책목표인 2%보다 높은 2.5%를 기록했다.

일본의 사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한국은 코로나19 위기 이전에 저물가 현상이 지속됐으나 금리 인하를 주저하거나 오히려 인상할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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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장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의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급속히 인상한 후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물가가 이례적으로 빠르게 상승했기 때문에 각국의 중앙은행이 가장 중요한 책무인 물가 안정을 위해 분투하는 상황이다. 반면 일본은행은 세계적인 고금리 경향과 달리 여전히 마이너스 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 일본의 과거 경험을 살펴보자.

일본은 1990년대 경기침체에 빠지면서 만성적인 디플레이션을 겪었다. 상상하기 어렵지만 1993년보다 2013년의 물가가 낮았다. 장기화된 디플레이션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일본 당국의 정책 대응을 빼놓을 수 없다. 90년대 경기침체에서 일본 당국이 통화정책을 소극적으로 운영해 인플레이션이 낮아졌고,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에 대한 일본 국민의 기대도 낮아졌다. 이는 실제로 물가가 하락하는 자기실현적 수렁에 빠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일본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것이라는 국민 신뢰를 형성하지 못한 것이 만성적 디플레이션을 유발했다고 볼 수 있다.

2022년 글로벌 고물가 현상이 발생하면서 일본의 인플레이션은 정책목표인 2%보다 높은 2.5%를 기록했다. 2023년에는 3.2%까지 상승했다. 대부분 국가의 인플레이션이 2023년에 전년보다 낮아진 추세와 대조적이다. 주요인은 통화정책 기조 차이다. 일본은행은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급속한 기준금리 인상에 동조하지 않고 굳건히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유지했다. 금리 격차로 엔·달러 환율이 100엔에서 150엔까지 50% 상승했으나 일본 경제에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격경쟁력이 개선돼 경기를 끌어올리고 물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만성적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은행은 물가를 높이겠다는 의지를 충분히 보여줄 필요가 있었고,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고수한 것이다. 일본이 만성적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났다고 말하기에는 이르지만 지금까지는 순항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은행이 글로벌 추세와 무관하게 정책을 본래 목적에 맞게 운영하고 국민 신뢰를 쌓아나간 것이 인플레이션을 높이는 데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사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한국은 코로나19 위기 이전에 저물가 현상이 지속됐으나 금리 인하를 주저하거나 오히려 인상할 때도 있었다. 당시에 통화 당국이 물가 안정에 최선을 다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반면 2022년 이후 미국의 급속한 금리 인상에 따라 한국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 상황에 맞춰 통화정책이 운영됐다. 결과적으로 한·미 금리차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지 않았으며, 한국의 인플레이션이 점차 하락하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정책이 본래 목적에 집중하면서 경제 주체의 신뢰를 확보해야 한다는 점은 비단 통화정책에만 적용되는 원칙이 아니다. 재정건전성에 대한 신뢰도 중요하다. 아직 국가채무가 많지는 않으나 향후 고령화로 국가채무가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 재정준칙에 대한 논의가 상당 기간 지속됐지만 여전히 도입되지 못했다. 재정수지 적자도 추세적으로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거시건전성 정책도 손쉬운 경기 부양책으로 이용될 수 있다. 실물경기가 부진해질 때 대출 규제를 완화해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는 경향이 있었다. 건전성 규제의 본래 목적은 뒤로 밀린다.

정책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기는 쉬우나 신뢰를 다시 쌓는 것은 어렵다. 경제 최후의 보루인 정책 당국의 신뢰가 뒷받침되지 못한다면 지속적인 경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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