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화장장 초만원…5일장, 7일장 해야 할 수도
지난해 전국의 화장률은 잠정 92.5%로 추산된다. 1994년 20.5%이던 화장률은 지난 30년 만에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 정도로 급증하면서 장례 문화를 바꿔놨다. 필자는 서울시립 장묘시설 관리 담당으로 일한 인연으로 1991년부터 장례문화 개선을 위해 씨름해왔다.
하지만 ‘화장 문화 운동가’라는 자부심은커녕 장례 문화 개선 운동을 펼친 ‘원죄’ 때문에 요즘 얼굴을 들지 못한다. 고령화 등으로 사망자가 몰리면서 전국의 화장장에 수급 대란이 벌어져서다. 서울·경기에 이어 대구·부산 등으로 대란이 번져 3일장은커녕 ‘선택적 4일장’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효도가 실종된 시대에 머잖아 5일장, 7일장을 치러야 할 거란 자조 섞인 말도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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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민 반대, 정치인들 부화뇌동
3일장 고집 장례문화 바꾸고
지자체 화장장 설치 의무화를
」
매장 문화가 대세이던 과거엔 서울시민이 사망하면 경기도 파주·고양 등 공원묘지에 묻혔다. 묘지가 거의 포화상태에 이르자 충청도·강원도로 원정 갔다. 화장 문화가 정착하자 매장 시대의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서울·부산 등 대도시의 화장장 수요가 넘쳐 인근 도 단위 화장장을 채우고도 넘친다. 견디다 못한 충청권 화장장에서 다른 시·도 화장 접수 거부에 나설 정도로 병목 현상이 심각하다.
지난 1998년 고(故) 최종현 SK 회장이 화장을 솔선해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자 그다음 달에 ‘화장 유언 남기기’ 시민운동이 시작됐다. 당시엔 화장 시설을 제대로 마련하지도 않은 채 화장 장려 운동을 편다는 비난도 있었다. 그때 서울시는 근본적 대책인 화장장 신설은 뒤로 미루고 벽제화장장 증설과 화장 예약제라는 미봉책으로 대응했다.
서울 서초구에 들어선 서울추모공원(‘제2 화장장’) 건립 과정을 돌아보면 정치 때문에 몇 차례 굴절됐다. 1998년 제2 화장장 건립 기본계획에는 화장로 20기를 짓는 대형 화장장이었다. 그런데 2002년 당선된 이명박 서울 시장은 주민 협의라는 이유로 규모를 반 토막 냈다. 결국 화장로 11기로 축소됐다. 우여곡절 끝에 2011년 12월 준공 테이프를 끊은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은 안팎의 제3 화장장 건립 건의에 대해 “장기 검토하겠다”며 철저히 외면했다.
지난 20여년 전국의 화장장 건립 과정을 모니터링했더니 서울추모공원 사례와 엇비슷했다. 주민은 공해 발생, 땅값 하락, 경제 활동 위축 등을 앞세워 반대했다. ‘님비(NIMBY) 현상’과 ‘님투(NIMTOO) 현상’이 심했다. 정치인들은 표를 의식해 화장장 반대 운동에 부화뇌동했고, 일부 단체장은 주민 반대를 핑계 삼아 화장장 건립 계획을 폐기하거나 무기한 연기했다. 급기야 ‘화장장 백지화 공약’을 들고나와 당선된 단체장도 있었다. 이런 무책임한 행태 때문에 전국에서 화장장 대란이 벌어졌으니 누구를 원망하겠나.
솔직히 전국의 화장장 대란은 해답이 거의 안 보인다. 크든 작든 화장장 건립은 후보지를 확정하고, 주민 설득부터 시작해 법적 절차 이행까지 짧아도 5년은 걸린다. 서울추모공원의 제2 화장장의 경우 기본계획부터 준공까지 무려 14년이 걸렸다. 최근 부지를 확정한 경기도 양주시에서도 4년 후에야 착공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이 2028년에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전망이니 머잖아 7일장이 될지, 9일장이 될지 모를 일이다.
화장장 제때 공급이라는 최선의 대책은 이미 물 건너갔으니 차선책을 궁리할 수밖에 없다. 먼저 장례 패러다임을 확 바꿔야 한다. 권위주의 시대의 ‘가정의례준칙’에 따른 3일장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고인의 뜻과 유족의 형편에 따라 장례일을 잡던 전통사회의 택일 문화를 현대에 접목해 적합한 날을 선택하면 어떨까. 둘째, 장사법과 지방자치법에 따라 모든 자치단체는 화장장 설치 의무가 있다. 그런데도 무임승차해 온 지자체를 그냥 두면 안 된다. 인구가 수십만 명이 넘는 큰 지자체가 광역 화장장을 빙자해 다른 지역에 화장장을 의탁하도록 한 기존 방침을 손질해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화장장 설치는 어려운 규제와 절차가 발목을 잡는다. 건립 후보지는 대부분 국유지가 포함되니 규제를 완화·폐지하는 특별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화장장 건립을 훼방해 온 정치인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화장장 대란 와중에 “결사반대”를 들어 줄 시간이 없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태호 ‘장례와 화장문화 연구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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