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높게 지은 아파트 위쪽 싹둑 자른다는데 [강주안 논설위원이 간다]
고도 제한 어겨 날벼락 아파트
반려견 때문에 오피스텔 못가
오피스텔로 들어간 김명렬(74)씨는 밤에 도로 소음이 심하고 외풍 때문에 수면장애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달 12일 이사하려고 살던 집까지 판 그는 이사 이틀 전 입주 청소를 하려다 황당한 사실을 알게 됐다. 월남전에 다녀온 국가유공자인 그는 “하루에 두 시간도 못 자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계획대로라면 지난달 입주를 시작했어야 할 8개 동 399가구의 이 아파트 단지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은 지난해 12월 22일. 한국공항공사가 ‘해당 건축물이 장애물 제한표면을 침투했다’고 통보하면서다. 공항공사 측은 7개 동이 고도 제한 높이(57.86m)를 초과했다고 밝혔다. 동에 따라 초과 높이는 63~69㎝였다.
규정보다 63~69㎝ 높게 지어 입주 불가
‘장애물 제한표면의 높이 이상의 건축물 등을 설치하거나 방치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 공항시설법 34조를 위반한 것이다. 항공기 안전 운항을 보장하기 위한 규정이다. 항공기 운항이 잦은 김포공항 인근에 지은 아파트가 고도 제한을 어겨 주민들 입주가 막힌 초유의 사태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건설사 관계자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김포 지역에서 건물을 지으려면 고도 제한 준수는 필수”라고 말했다. 건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일반 지역에서 아파트를 지을 때 약간의 오차는 허용한다. 배관 작업 등을 하다 보면 처지는 부분이 생겨 아파트 높이에 따라 어느 정도까지는 인정을 해주며 이 아파트가 초과한 69㎝는 통상 허용 범주 안에 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항 인근에선 절대로 넘지 말아야 할 고도가 명확해 감리에서도 철저히 점검한다. 한 건설 관계자는 “시공사와 감리사가 일반적인 허용 오차만 생각하고 공항 주변의 고도 제한은 간과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 시공사는 양우건설이다. 회사 홈페이지에는 2023년 8월 1일 기준 시공능력평가액이 9104억원이라고 나와 있다. 2013년 12월 김포도시철도 3공구와 4공구를 수주하는 등 김포 지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한 이력을 소개한다.
엘리베이터 옥탑 일부 철거 공사
지난달 26일 오전 11시 40분쯤 해당 아파트를 찾아가 봤다. 예정대로라면 이미 주민들이 입주해 차를 세워야 했을 지하 주차장에 금속 기둥을 촘촘히 세웠다. 공사 현장처럼 보인다. 101동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까지 올라갔다. 거기서 계단을 통해 옥상으로 가보니 그곳도 공사장처럼 각종 구조물이 바닥에 널려 있다.
옥상에 있는 엘리베이터 옥탑 구조물과 난간 부분 구조물에 검은 선들이 그어져 있다. ‘컷팅선’이라는 글씨가 옆에 적혀 있다. 공항공사가 제한 표면을 침투했다고 지적한 건물 부위를 잘라내 고도제한을 맞추기 위한 표식으로 보인다.
고도제한을 침범한 부분을 해체하고 재시공해 다음 달 11일까지 사용 승인을 받겠다는 것이 양우건설 측의 설명이다. 옥상 난간 장식 구조물과 엘리베이터 상부 옥탑 구조물이 해당한다. 건물 윗부분을 잘라내는 방식이 안전에 문제가 없는지에 대해 양우건설 관계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판단돼 절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입문 낮아져 화재 시 대피 등 우려
엘리베이터 관련 시설인 건물 윗부분을 잘라내는 부분은 쉽지 않아 보인다. 70㎝ 정도를 제거해도 문제가 없을지도 의문이지만, 옥상으로 나가는 출입문의 높이가 상당히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화재 등 발생 시 주민들이 옥상으로 신속하게 대피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이어서 잘라내는 작업 자체도 만만치 않다. 더욱이 현장을 가 본 101동은 7개 동 가운데 초과 높이가 가장 낮은 63㎝다. 69㎝를 초과한 104동의 경우 출입문이 더 낮아질 수 있다. 사진을 본 시공 전문가는 “계단실 자체가 기본적인 형태를 못 갖추다 보니 설계사의 공식적인 의견이 필요할 것 같다”는 견해를 밝혔다.
주민들 사이에선 시공사와 감리사에게 책임을 묻더라도 일단 건물이 지어진 이상 그대로 사용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에 대해 공항공사 관계자는 “안전과 관련돼있고 법에 규정된 사항이어서 임의로 양해할 사안이 아니다”고 말했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주민들에 따르면 몇 달 전에 이미 아파트의 형태가 완성됐다. 이후 인테리어와 외벽 도색 작업 등이 오랫동안 진행됐다. 건물이 제한 표면을 침범해 사고 위험이 있는 상태로 상당 기간 방치된 셈이다. 앞으로도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경우 항공기 안전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대입 농어촌 특별전형 차질 등 피해 사례 속출
아파트 착공을 앞둔 2019년 11월 공항공사는 사업계획에 대한 회신에서 건축물 설치와 관련해 ‘최고높이 도달 후 7일 이내’에 통보할 것을 요구했다. 만약 엘리베이터 옥탑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을 완성한 직후 공항공사와 협의했다면 즉시 시정에 착수할 수 있었다. 입주민이 곤경에 빠지거나 제한표면 침투로 항공기 안전이 위협받는 상태가 장기간 방치되는 상황을 피하는 게 가능했다.
임시 거처에서 지내는 입주민 고통이 커지는 가운데 양우건설은 본격적인 재시공에 들어갔다. 지하주차장에 금속 기둥을 설치한 이유에 대해선 “옥상 공사의 크레인 작업 때문에 안전을 위해 취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졸지에 떠돌이 신세가 된 입주민들은 입주대책위원회를 통해 피해 상황을 취합하고 있다. 집집마다 갖가지 피해가 속출한다. 아이 교육과 보육이 초비상이다. 맞벌이인 아들 부부를 위해 손자를 돌보던 조부모가 입주가 막혀 인천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면서 아이를 돌볼 수 없게 됐다. 이 때문에 아이 엄마가 직장을 그만두게 됐다고 한다.
"입주민 피해 보상 무성의"
농어촌 특별전형으로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는 사례도 접수됐다. 이곳은 서울에 인접했지만, 농어촌 특별전형 지역에 해당한다. 이 전형에 지원하려면 학생이 중·고교 6년을 다녀야 한다. 당초 입주일이 1월이었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3월 11일로 연기되면서 중학교 입학일에 입주를 못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해당 지역에서 중학교 입학을 못 하면 특별전형 지원에 차질이 생긴다.
일주일 차이로 전학하게 돼 두 학교의 교복을 사야 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곽종근 지역주택조합장은 “아무 잘못 없는 입주민 피해가 너무 크다”며 “시공사가 적극적으로 보상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포시는 양우건설 등에 ‘입주민들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대책을 마련하라’고 했으나 주민들 불만은 높아지고 있다. 보상 문제에 대해 김포시 관계자는 “시공사와 조합이 알아서 할 부분이고 저희가 관여를 못 한다”고 말했다.
서가공(32) 입주대책위원은 “입주를 못 한 분들에게 각종 비용 지급을 위해 양우건설에 예치금 1억원을 요청했으나 이조차 들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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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내서 해결될 문제 아니야"
Q : 이번 사태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나.
A : “도면과 다르게 시공이 되었다면, 시공사와 감리사의 책임이다"
Q : 높이 초과 부분을 잘라낸다는데.
A : “집이 장난감도 아니고 각각의 기능이 있는데 그걸 깎아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당 지자체, 공항공사를 비롯해 관련 기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조정 방법 및 보상 계획을 찾는 게 답이다.”
Q : 잘라내면 어떤 문제가 우려되나.
A : “건축 허가 때의 도면과 달라질 것이고, 최초설계 기능, 입면 구성이 달라질 수 있다. 피난 기준 등을 따지면 소방법에 저촉될 수도 있다.”
Q : 이런 문제가 왜 생기나.
A : “기본적으로 기술인 역량의 문제가 크다. 기술인에 대한 대우, 사회적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 역설적으로 기술발전이 기술인 역량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기계가 도면을 읽어주고 구조 해석을 해주니 사람이 기계에 더 의존하게 된다.”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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