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주의 아트&디자인] 런던 서펜타인 파빌리온이 주목받는 이유
지난주 한국 건축계에 반가운 소식이 하나 있었습니다. 올해 영국 런던 서펜타인 파빌리온 설계자로 한국 건축가 조민석(57·매스스터디스 대표)씨가 선정됐죠.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런던 현대미술관인 서펜타인 갤러리가 세계 건축가들에게 설계를 맡겨 그 앞마당에 짓는 한시적 건축물을 말합니다. 파빌리온 공개 기간이 6월 7일부터 10월 27일까지이니, 올해 여름과 가을에 런던을 방문하면 한국 건축가가 설계한 파빌리온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공개 기간이 5개월이 채 안 되는 건축물인데 이 프로젝트가 왜 주목받는지 궁금하시죠. 지난 20여 년간 이곳이 내로라하는 세계 건축가들이 참여해 실력을 뽐내는 ‘건축 실험’의 장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엔 지난 2000년 미술관이 기금 모금을 위해 건축가 자하 하디드에게 임시 건축물을 의뢰했던 것인데, 이게 좋은 반응을 얻으면서 세계 건축·미술 애호가들이 기다리는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프로젝트엔 장 누벨, 프랭크 게리, 렘 콜하스, 페터 춤토르 등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건축가들이 다수 참여했고, 이토 토요, 후지모토 소우, 이시가미 준야 등 일본 건축가도 이미 세 명이나 참여했습니다. 늦은 감이 있지만 한국 건축가가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우리가 눈여겨 볼 것은 이 프로젝트가 미술관이 주도한 기획이라는 점입니다. 서펜타인은 미술관입니다만, 그 기능과 역할을 ‘미술’이라는 좁은 틀에 가두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건축과 미술의 경계를 허무는 데 앞장섰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 건축가들이 각각 다르게 역량을 발휘하고, 건축이 어떻게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파빌리온 완성 후 미술관은 큐레이터가 투어를 안내하는 특별 프로그램도 엽니다. 세계적 큐레이터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미술관 디렉터가 나서 건축가와 대담도 진행하고요. 또 ‘공원의 밤(park night)’이라는 타이틀 아래 파빌리온 안팎 공간에서 시인과 무용가 등이 참여하는 퍼포먼스도 벌입니다. 건물 하나 짓고 끝내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 자체가 미술인 동시에 건축이 되고, 시가 되고, 영감을 불어넣는 ‘행위’가 되도록 미술관이 끝까지 정성을 들입니다.
건축은 어떻게 지어졌느냐에 따라 흉물스러운 덩어리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예술 작품이 되고 또 공공의 자부심이 되기도 합니다. 2017년 서펜타인 파빌리온을 설계하고 2022년 프리츠커상을 받은 아프리카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건축가 프란시스 케레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우리는 건축을 통해 건물만 얻는 게 아니라 영감(靈感)도 얻는다.” 그의 말을 떠올리며 그동안 한국 사회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건축과 예술을 어떻게 대해온 걸까 새삼 묻고 싶어졌습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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