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복수극이라도 속이 다 시원하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
“축하해. 내가 버린 쓰레기 알뜰살뜰 주운 거.”
지난달 1일부터 방영중인 tvN 월화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이하 ‘내남결’)에서 강지원(박민영)이 박민환(이이경)과 정수민(송하윤) 결혼식을 찾아 내뱉은 말이다.
지원은 위암 투병 중에 남편 민환과 절친 수민의 불륜을 목격하고 몸싸움을 벌이다 죽음을 맞이한 전생의 기억을 안고 환생해, 민환과 수민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결혼 후 남편 때문에 힘들었던 지원은 두 번째 생에선 민환과 수민이 결혼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남결’은 통쾌한 복수 서사에 힘입어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방영한 10회 시청률은 12.1%(닐슨코리아)까지 치솟았다. 아마존 프라임비디오에서는 57개국에서 TV쇼 부문 글로벌 일간 순위 1위를 기록했다. 네이버 웹툰에 따르면 드라마 방영 후 원작 웹툰 거래액이 10일 만에 17.1배나 증가했다. 이 기간 전체 조회수는 7.1배 상승했다.
‘내남결’은 전형적인 권선징악 구조다. 여주인공이 남편과 친구에게 배신당한 후 두 번째 기회를 얻어 복수한다는 큰 줄거리는 2008년 방영한 SBS 일일극 ‘아내의 유혹’을 떠올리게 한다.
‘내남결’의 기본적인 흐름은 클리셰 범벅이지만, 디테일의 차이가 극적 재미를 극대화한다. 외강내강의 악녀를 그린 예전 드라마와 달리 ‘내남결’의 악녀인 수민은 청순한 생머리에 순진한 눈망울로 주변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그간 복수극에서 악녀의 전매특허였던 거친 언행이 ‘내남결’에선 주인공 지원의 몫이다. 극중 대기업 U&K의 사내커플이었던 지원과 민환이 헤어지는 과정에서, 지원은 민환의 뺨을 연달아 때리고 바람 핀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린다. 수민의 자작극에 휘말려 억울한 오해를 받을 뻔한 지원이 단전에서 끌어올린 발성으로 “정수민, 거기 서!”를 외치는 장면도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분노유발자인 악역이 웃음 제조기로도 활약한다는 점도 ‘내남결’의 특징이다. 이이경이 특유의 유머를 섞어 결국 지질함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민환의 모습을 재미있게 그려낸다.
상황을 뒤집어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는 ‘회귀’는 이미 웹툰·웹소설 시장에서 검증된 흥행 코드 중 하나다. JTBC ‘재벌집 막내아들’, SBS ‘어게인 마이 라이프’ 등에도 2회차 인생을 사는 주인공이 등장했다. ‘내남결’에선 유능하고 착하기만 했던 지원과 그런 지원을 이용해 이득을 취해온 수민의 이야기가 함께 환생한 U&K그룹 후계자 유지혁(나인우)과 지원의 공조로 점점 뒤바뀐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불륜 치정극에 오피스물과 회귀물이 더해지면서 장르가 다채롭게 변주됐다”고 인기 요인을 분석했다.
드라마 후반부에선 지혁의 정략결혼 상대인 오유라(보아)의 등장이 예고돼 지원과 지혁의 우여곡절 로맨스가 펼쳐질 전망이다. 손자영 tvN CP는 “지원이 이전 생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자신의 운명을 누군가에게 넘겨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암 투병, 살인 등 첫 번째 생에서의 비극적인 사건·사고들이 누구를 향해갈지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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