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후핵연료 포화 직전… 고준위 특별법 이번에 통과해야”

신준섭 2024. 2. 5.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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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 현장을 가다] 원전 소재 5개 지자체장, 2월 임시국회 조속 제정 촉구


한국 원전의 최대 난제는 사용후핵연료 처리다. 원자로에서 연료로 사용된 뒤 배출되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포화 시점이 째깍째깍 다가오고 있지만 아직 임시방편으로 버티고 있다. 언젠가는 사용후핵연료를 영구적으로 처리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한 근거 법안 마련은 지지부진하다. 21대 국회가 4년 동안 논의했지만 막판까지 결론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국회 결정을 기다리는 원전 인근 지방자치단체 5곳의 주민들은 속이 타들어 간다. 점점 늘어나는 사용후핵연료가 해당 지역에 영구적으로 방치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적지 않다. 이달 열릴 예정인 임시국회가 ‘골든 타임’을 위한 마지막 기회다. 국민일보는 국회에서 제정이 계류 중인 고준위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이하 특별법)에 대해 원전 지역 주민을 대표하는 5곳 지자체장에게 서면으로 의견을 물었다.

“2월 국회에서 특별법 통과돼야”

4일 지자체장 5명의 답변을 종합하면 이번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돼야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에 모두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포화 시점이 많이 남지 않은 지자체장의 어조가 강했다. 2031년 포화 예정인 한울원전이 있는 경북 울진군의 손병복 울진군수는 “지역 주민들은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정책 부재 속에 수십년간 인내해왔다”며 “영구 처분장이 마련되기 전까지 기약없이 사용후핵연료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고 토로했다. 이보다 빠른 2030년이 포화 시점인 한빛원전이 위치한 전남 영광군의 강종만 영광군수는 “원전 소재 지역 주민의 안전을 위해 조속히 특별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월성원전이 위치한 경북 경주시의 주낙영 경주시장은 “원전을 건설·운영하면서 사용후핵연료 처리 시설을 만들지 않는 것은 화장실 없이 아파트를 짓는 상황”이라고 빗댔다. 국내 최초 원전인 고리원전이 있는 부산 기장군의 정종복 기장군수는 “설 명절이 코앞인데 아직 국회 상임위원회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있는 특별법을 보면 안타깝다”고 전했다. 포화 시점이 2066년이라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새울원전 소재 지역도 의견은 비슷하다. 이순걸 울산 울주군수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시설 부지 선정과 건립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며 “원전 소재 지자체 주민들의 상황을 고려할 때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주민들, 특별법에 대부분 찬성”

지자체장들에 따르면 원전 인근 주민들은 사용후핵연료 대책이 뚜렷하지 않은 현실에 큰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주 경주시장은 “주민들은 영구적으로 사용후핵연료를 떠안은 채 살아야 한다는 불안감이 큰 상황”이라며 “중간저장 및 영구저장시설 확충 계획을 명확히 규정한 특별법 제정을 간곡히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손 울진군수도 “우리 지역 주민들도 원전 내 영구 저장에 대한 우려가 있다”며 “특별법 제정 시 지역 주민 우려를 해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지역도 비슷한 분위기다. 이 울주군수는 “원전 주변 지역 주민들은 이번 국회에서 특별법이 통과되기를 바라고 있다”고 전했다. 강 영광군수도 “주민 인식 조사 사례는 없지만 사용후핵연료의 체계적 관리를 위한 특별법 제정 취지에 (주민) 대부분이 찬성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단순히 영구처분시설이 필요해 주민들이 특별법 제정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는 설명도 있다. 특별법에 영구처분 전의 중간 과정이 포함돼 있다는 점이 찬성 여론에 힘을 싣고 있다고 한다. 정 기장군수는 “원전 반경 5㎞ 이내 주민들은 이번 국회에서 반드시 법이 통과돼야 한다고 말한다”며 “지역 주민들과 직접적 이해관계에 놓여 있는 ‘발전소 부지 내 건식저장시설’ 건설 사항이 특별법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미래 세대에 떠넘기지 말아야”

지자체장들은 특별법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국회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울주군수는 “여야가 쟁점에 대해 11차례 소위 심사를 하는 등 큰 노력을 기울여왔고 이런 쟁점 논의는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포화 시점이 임박한 상황에서 특별법 제정이 계류되는 상황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특별법 제정 마지막 기회인 2월 임시국회에서 결론을 내달라는 목소리가 높다. 손 울진군수는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이 수용 한계에 도달해 원전 가동이 중단되고 국가 에너지 안보로 이어지는 사태는 결코 일어나선 안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강 영광군수도 “지금까지 심사숙고한 만큼 이제는 더욱 안전성이 유지되는 결정을 하는 것도 생각해 볼 때”라고 말했다.

여야가 미래 세대를 생각한 결정을 내려달라는 요청도 있다. 정 기장군수는 “탈원전이냐 원전 확대냐를 떠나서 미래 세대에게 우리가 남긴 위험천만한 사용후핵연료 문제를 떠넘기지 않도록 대승적으로 생각해달라”고 전했다. 주 경주시장은 “우리는 거의 반세기 동안 원전의 혜택을 누려왔고 그 부산물이 사용후핵연료”라며 “이 부산물은 안전하게 관리돼 다음 세대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주 경주시장은 “특별법 제정도 중요하지만 정부는 그 이후 부지 평가 과정에서 지자체와의 적극적인 소통도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국내 최초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세운 경주시의 경험을 토대로 한 제언으로 읽힌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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