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봉동 벌집촌 지금 투자한다면…중국인 밀집 슬럼지역 신통기획 확정 [감평사의 부동산 현장 진단]
서울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2번 출구로 나와 주위를 둘러보면 곳곳에 중국어 간판으로 표시된 상점이 눈에 띈다. 디지털로27길을 따라 약간 경사진 길을 올라가니 중국어 간판은 점점 늘어나는 느낌이다. 3~4분 정도 걷다가 구로남초를 등지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니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온다. 총 162가구로 구성된 남구로역동일센타시아아파트로 올해 4월 준공 예정이다. 이 공사 현장을 제외하면 주위는 오래된 빨간 벽돌 주택만 보인다.
이곳 가리봉동은 다른 노후 주거지역과 달리 특이한 점이 있다. 건물 중앙에 계단을 설치한 곳이 유독 많다. 일반적으로 예전 단독주택은 1층 주인집과 위층 세입자 공간을 분리하기 위해 건물 측면에 계단을 뒀다. 양측 공간을 완전히 분리하면서 동시에 건물 내부 공간과 입구 동선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가리봉동 일대 단독주택은 외부 모양이 살짝 다르다. 건물 외부에 계단이 많거나 측면이 아닌 중앙에 계단이 설치된 곳이 많다.
이유가 있다. 세입자가 1~2가구가 아닌 여러 명이 거주할 경우 좀 더 수월하게 세입자들이 계단을 사용하기 위함이다. 이런 집을 가리켜 ‘벌집’이라고 부르며 가리봉동 일대 벌집이 모여 있는 곳을 ‘벌집촌’이라고 부른다.
‘벌집’은 흔히 말하는 ‘쪽방’과 외부 모양은 비슷해 보이나 탄생 배경이 다르다. 과거 구로구와 금천구 일대 공단을 조성하면서 공단 노동자에게 저렴하게 주거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벌집 구조 주택이 대량으로 만들어졌다.
1970년대 처음 만들어진 가리봉동 벌집촌은 1990년대를 지나 중국인 밀집 주거지역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경제적으로 여유를 갖게 된 일부 중국인은 영등포구 대림동이나 광진구 자양동 등으로 이동했다.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가리봉동 벌집촌에 거주하고 있다. 즉, 이곳은 서울 내 중국인 밀집 주거지역 중에서도 가장 슬럼화된 곳으로도 볼 수 있다.
최근 서울시가 ‘벌집촌’으로 불렸던 가리봉동 115번지 일대를 개발하겠다고 나서 화제다. 서울시는 ‘가리봉동 115 일대 주택정비형 재개발 사업’ 신속통합기획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이곳에는 총 부지 8만4222㎡에 최고 높이 50층, 2200가구 규모 주거단지가 조성된다. 2014년 뉴타운 해제 후 약 10년 만에 가리봉동 일대 재개발 사업이 정상 궤도에 오르게 된다. 지난해 6월에는 이미 가리봉동 87-177번지 일대 신속통합기획이 확정돼 최고 높이 39층, 1179가구 규모의 주거단지가 들어서기로 했다.
두 지역은 지하철 7호선 라인을 경계로 좌우로 펼쳐져 있다. 사업이 완료되면 남구로역 일대에는 약 3400가구 신축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이다. 서울에서 출퇴근 시간대 가장 혼잡한 지역 중 하나로 꼽히는 가산디지털단지와 구로디지털단지 인근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된다는 점에서 많은 기대를 모을 것으로 예상된다.
상전벽해 기대, 남구로역 일대
종상향 후 3400가구 아파트 조성
G밸리(가산디지털단지와 구로디지털단지) 배후지인 가리봉동 일대는 당초 뉴타운지구로 지정됐으나 장기간 재개발 사업이 표류하면서 노후·슬럼화됐다. 반면 G밸리는 14만명 근로자들의 일터이자, IT 산업 중심지로 도약하면서 이 일대는 근로자를 위한 양질의 주택 공급이 필요한 상황이다.
서울시는 우선 벌집촌 일대 용도지역을 제2종일반주거지역(7층)에서 일부는 준주거지역으로 상향 조정해 상업·업무·주거 기능이 결합한 복합주거단지로 만들 계획이다. G밸리에서 근무하는 1~2인 가구, 청년세대를 위한 소형 주거·오피스텔 등 약 2200가구의 다양한 주거 유형을 도입한다. 또 현재 주변에서 여러 개발 사업이 추진되는 점을 고려해 도로 체계를 개선하고 인근 개발 잔여지와 조화롭게 정비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구역에서 제외된 가리봉시장 등을 포함한 이 일대를 지구단위계획으로 관리한다.
이를 통해 가리봉동 낙후된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낸다는 계획이다.
최근 신속통합기획 절차 간소화에 따라 올해 안으로 가리봉동 115번지 일대 정비구역·계획 결정이 완료될 전망이다. 또 도시계획위원회 수권소위원회·사업시행계획 통합심의 등을 적용받으면 전반적인 사업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이곳 외에도 가리봉동에는 87-177번지 일대 역시 지난해 6월 신속통합기획안이 확정된 바 있다. 두 곳의 정비사업이 완료되면 가리봉동에는 3000가구가 넘는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선다.
현 시세 3.3㎡당 2000만원
가리봉동 일대가 신속통합기획에 포함되면서 향후 투자 가치나 주의 사항에도 관심이 쏠린다.
신속통합기획은 새 아파트를 받기까지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는 점이 매수자에게 매력적이다. 부동산 업계는 인허가 단계에서 막혀 10~20년씩 늦어지는 사업지보다 오히려 투자 가치가 높을 수 있다고 평가한다. 사업지 선정 과정에서 서울시가 직접 노후도 등을 따지기 때문에 계획대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신속통합기획은 공공이 지원하는 만큼 투기 차단을 위해 일반 정비사업보다 강한 규제가 적용된다. 신속통합기획에 선정된 재개발지역은 후보지 선정 직후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다. 이후 해당 구역 내 단독주택 등을 매수하려면 관계당국 허가가 필요하다. 실거주 목적이 아니면 허가가 나지 않으며 허가 후에도 실제로 2년 이상 거주해야 입주권을 받을 수 있다. 서울시가 정한 권리산정기준일 이후에 신속통합기획 재개발 사업지에서 신축된 빌라와 지분을 쪼갠 원룸을 사면 현금 청산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유의 사항이다.
정리하면 무주택자로서 어느 정도 현금을 확보한 사람 중 실거주 요건을 갖출 수 있는 사람이 투자할 수 있다. 소위 말하는 ‘몸테크’가 가능해야 한다.
가리봉동 벌집촌 일대 단독주택 가격은 대체로 대지면적 3.3㎡당 2000만원 수준에 형성됐다. 이곳은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뉴타운 등 정비사업에 대한 얘기가 끊이질 않았다. 그만큼 땅값도 꾸준히 올랐다. 지금 대지 100㎡ 이상 단독주택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최소 5억~6억원 자금이 필요하다. 추가 분담금도 감안해야 한다. 다른 재개발지역과 마찬가지로 적잖은 자금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된다면 향후 미래 가치는 충분하다는 것이 현지 부동산 공인중개소 관계자들 생각이다. G밸리 배후 수요는 수십만 명이지만 주변에는 중산층이 거주할 만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많지 않다. 굳이 비교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단지는 금천롯데캐슬골드파크다.
1호선 금천구청역 역세권에 위치한 이 단지는 2010년대 중반 분양 당시만 해도 가격이 비싸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준공 후 서울 시내에서 가격 상승률이 가장 높은 단지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2017년 입주 당시 전용 84㎡ 기준 4억~5억원에 거래됐지만 이후 2배 이상 올라 한때 13억7000만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현재는 같은 면적이 11억원 전후에 시세가 형성됐다. 워낙 노후화가 심하고 중국인 밀집지역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입지 대비 저평가를 받고 있지만 인근 대장주인 금천구청롯데캐슬과 비교해 가산디지털단지나 구로디지털단지와 더 가깝고 지하철 역시 7호선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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