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뜨면 길거리 캐스팅 쇄도…별이 된 '빨간 마후라' 히어로
원조 미남 배우 남궁원(본명 홍경일)이 5일 별세했다. 90세.
최근 수년 간 폐암 투병을 해온 그는 이날 오후 4시께 서울아산병원에서 마지막 숨을 거뒀다.
고인은 서구적 외모로 ‘한국의 그레고리 펙’으로 불렸다. 1959년 주목받던 신인 노필 감독의 ‘그 밤이 다시 오면’으로 스크린 데뷔해 1999년 이두용 감독의 ‘애’ 등 영화 345편에 출연했다.
고인은 1934년 경기도 양평에서 태어났다. 중앙고 졸업 후 한양대 화학공학과를 다닐 때부터 수려한 외모 때문에 ‘길거리 캐스팅’ 제안이 쇄도했다고 한다. 본인은 배우가 아닌, 교수나 외교관을 꿈꿔 미국 유학을 준비했지만 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의 치료비를 마련하고자 충무로에 입성했다.
당대 유명 감독들과 인연도 많았다. 신상옥 감독의 ‘자매의 화원’(1959)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신 감독의 영화사 ‘신필름’ 전속 배우가 됐다. 연기를 체계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연극 ‘닥터 지바고’, ‘로미오와 줄리엣’, ‘부활’ 등 무대에 도전하면서 연기 수업의 공백을 채워갔다. 신상옥 감독과 홍콩 합작 영화를 만들며 홍콩에 수개월 씩 체류했던 때, 홍콩 영화를 많이 보고 연습하며 연기력을 다져갔다. 이같은 노력으로 '멋진 외모에 비해 연기력이 부족하다'는 오명을 씻어냈다.
주요 작품으론 신필름의 ‘빨간 마후라’(1964), ‘내시’(1968)에 더해, 한국판 007을 표방한 첩보영화 ‘국제간첩’(1965), ‘극동의 무적자’(1970) 등 액션 주연작이 많다. 1970년대 김기영 감독의 ‘화녀’(1972), ‘충녀’(1972),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1978) 등에선 선이 굵은 외모와 달리 유약한 남성 가장 역할을 주로 맡았다.
1980년대 만난 이두용 감독의 ‘피막’(1980), ‘내시’(1986) 등에선 악역으로 변신했고, ‘가슴달린 남자’(1993) 등 다양한 장르로 연기 반경을 넓혀왔다. 대표 미남 스타로 군림하며, ‘아로나민 골드’(일동제약), ‘훼미리쥬스’(해태) 등 TV 광고에도 단골 출연했다.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는 “남성적인 듬직한 스타일이 주를 이루던 시대에 남궁원은 서구적 외모로 인기를 모은 대표적 배우다. 하길종 감독의 데뷔작 ‘화분’(1972)에선 관능적이고 묘한 마초적 모습도 잘 드러난다”며 "연기 외에 정치나 사업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고인은 1960~70년대 한국영화 르네상스 1기를 장식한 배우다. 같이 활동했던 배우로는 신영균, 윤일봉, 김지미 등 전설의 배우들이 있다”며 “한국영화 초창기 거의 모든 영화에 나오신 분으로, 남궁원의 별세는 한국영화 르네상스 1기의 문이 닫히고 있다는 의미로도 보인다”고 짚었다.
고인은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 한국영화배우협회 회장, 헤럴드 명예회장 등을 지냈다. 2016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다. 당대 함께 활동했던 배우 신영균, 프랑스에서 작고한 고(故) 윤정희·백건우 부부 등과 교분을 나눴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5년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시대극과 현대극을 거슬러 여러 배역을 맡았었지만 이미지에 맞지 않아 머슴 역은 못 맡았다는 게 아쉽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구적 외모와 건장한 체격 탓에 맡은 배역이 제한적이었다는 아쉬움의 표현으로 읽혔다.
자서전 『7막 7장』의 저자이자 국회의원을 지낸 홍정욱 올가니카 회장이 아들이다. 유족은 아내 양춘자, 홍 회장 등 1남2녀가 있다.
빈소는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이며 발인은 8일 오전 9시30분, 장지는 경기 포천시 광릉추모공원이다. 장례는 고인의 뜻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조화‧부의는 받지 않는다고 유가족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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