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등 14명 '불법승계 의혹' 모두 '무죄'… 법원 "증거 없어"(종합)
법원이 2015년 9월 이뤄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 불법행위가 없었다고 판단,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 수뇌부 모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기소 이후 약 3년 5개월 만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부장판사 박정제·지귀연·박정길)는 5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회장과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부회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사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1팀장(사장), 최치훈·김신·이영호 전 삼성물산 사장 등 13명에게도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이 회장이 최소비용으로 경영권을 승계받기 위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불법적으로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당시 삼성그룹의 핵심 수뇌부였던 미전실 주도로 거짓 정보 유포, 허위 호재 공표, 주요 주주 매수, 국민연금 대상 불법 로비, 자사주 집중 매입을 통한 시세조종 등 각종 부정 거래를 했다고 의심했다. 이로 인해 삼성물산이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상태에서 불리한 비율로 합병이 이뤄지면서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친 ‘약탈적 승계’였다는 게 검찰이 내린 결론이었다. 검찰은 자본시장법 위반 등으로 이 회장 등을 2020년 9월1일 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이 주장한 모든 혐의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봤다. 특히 검찰이 수사 과정에서 핵심 증거물로 제시했던 장 전 미전실 차장의 휴대폰 속 문자메시지 등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찰이 피고인 장충기의 휴대전화에서 선별한 전자정보에 대해 선별 절차를 거치지 않았고, 범죄혐의와 관련성 없는 정보의 삭제·폐기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영장주의와 적법절차의 원칙을 중대하게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은 위법하고, 모두 증거능력이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아울러 두 회사의 합병은 각 이사회의 의사결정 절차 등을 거쳐 진행된 만큼 오직 이 회장의 승계라는 유일한 목적을 위해 미전실이 전단적으로 결정했다고 볼 수 없다고 봤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합병에는 사업적 목적이 존재했고, (이 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 및 경영권 안정은 삼성물산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측면이 있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사건의 주된 목적이 피고인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에 있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9년 8월29일 최서원씨의 국정농단 사건 재판에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사이의 합병 등은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현안"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날 1심 재판부는 대법원의 이 같은 판단은 '승계작업의 존재'를 확인한 것일 뿐, 그 불법성에 대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했다.
이날 재판부는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관련한 거짓 공시·분식회계를 한 혐의도 무죄로 판단했다. 분식회계 의혹을 입증할 핵심 증거로 꼽혔던 삼성바이오로직스의 18테라바이트(TB) 용량의 백업 서버 등의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찰은 은닉된 로직스, 에피스 서버에 저장된 전자정보를 탐색하면서 ‘유관 증거만 선별하여 복제·출력하고, 혐의사실과 관련 없는 전자정보의 임의적인 복제를 막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위법하다"며 "모두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변호를 맡은 김유진 김앤장 변호사는 이날 판결 선고 직후 "이번 판결로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고 생각한다"며 "현명한 판단을 내려준 재판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 1심 판결로 이 회장에 대한 '사법리스크'가 해소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검찰 측은 아직 항소 여부를 밝히지 않았다. 검찰이 일주일 내 항소를 결정하게 되면 2심 재판에서 다시 치열한 법리공방을 거쳐, 결국 최종적으로 대법원의 판단을 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중앙지검은 "오늘 선고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관련 이재용 회장 등 사건 1심 판결에 대해, 판결의 사실 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검토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손선희 기자 shees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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