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철도지하화 하겠습니다’ 공약… 현실은 ‘까마득’
민간 재원 조달 위해서는 ‘사업성 확보’가 관건
총선을 앞두고 여야가 앞다퉈 철도 지하화 공약을 내놓으면서 실현 가능성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철도 지하화는 지난 수십 년간 선거의 단골 공약이었지만 천문학적 사업비를 충당할 재원을 마련하지 못해 추진에 이르지 못했다.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정부는 지난달 25일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교통 관련 민생 토론회에서 ‘교통 분야 3대 혁신 전략’ 중 공간 혁신 대표 사업으로 철도 지하화를 꼽았다. 무엇보다 철도 지하화 및 철도부지 통합 개발에 관한 특별법(철도 지하화 특별법)이 지난달 9일 국회를 통과해 사업의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그러나 철도 지하화가 궤도에 오르기까지 ‘사업성 확보’라는 산은 여전히 높아 보인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철도 국유지 출자 등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다양한 민간 금융 기법을 활용하면 (철도 지하화는) 실현 가능하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를 기찻길 위 예쁜 빌딩으로 바꾸겠다”고도 했다.
철도 지하화는 도심을 가로지르는 철도를 지하로 옮기고 지상의 철도부지와 인근 부지를 함께 개발하는 사업이다. 새로운 철도를 놓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많이 들고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기존의 철도를 멈추지 않고 운영하면서 지하화 작업도 함께 이뤄져야 해서다.
일단 비용 문제는 상부 개발이익으로 충당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혔다. 민간 사업자가 우선 지하화 사업을 진행한 후, 상부 개발이익으로 이를 회수하는 식이다. 정부는 철도부지를 현물로 출자하게 된다. 내년 1월 31일 시행되는 철도 지하화 특별법에 이 내용이 담겼다. 정부는 이런 방식으로 철도 지하화에 50조원의 민간 재원이 투입될 것으로 보고 있다.
철도 지하화가 이뤄질 구체적인 노선은 올해 연말 선도사업 선정 이후 공개될 전망이다. 정부는 일단 6일 철도 지하화 통합 개발 종합계획 수립 연구용역을 발주한다. 전국의 지하화 노선·구간, 상부 개발 구상, 철도 네트워크 재구조화 등 통합개발 방향이 담긴 마스터 플랜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상반기 중 지자체에 노선 제안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배포할 계획이다.
정부는 오는 9월 서울 경부선·경인선·경원선, 부산 경부선 등 공약사업을 중심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제안을 받아 검토할 예정이다. 이 중 계획의 완결성이 높은 사업을 선도사업으로 지정해 종합계획 수립 전 기본계획 수립에 먼저 착수해 다른 지역보다 1~2년 사업 기간을 줄인다.
최근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내놓은 공약에 따르면 수도권에서 첫 철도 지하화 사업이 시작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은 지난달 31일 경기 수원역~성균관대 구간, 서울 영등포역~용산역 구간, 대전역 인근 등을 철도 지하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상부 부지 통합 개발로 여가·문화 공간을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더불어민주당도 지난 1일 철도, 광역급행철도(GTX), 도시철도 도심 구간 모두 지하화로 맞불을 놨다. 철도 지하화와 상부개발을 함께 진행해 지역 내 랜드마크를 조성한다는 게 민주당의 목표다.
핵심은 지상 개발이다. 수익성이 나지 않는 사업에 민간 사업자의 참여를 독려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 용산 역세권 개발 사업은 수익성이 나지 않아 민간 재원 조달에 실패한 사례로 꼽힌다. 이 사업은 2001년 논의가 시작됐으나 2007년이 되어서야 삼성물산을 사업자로 선정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로 삼성물산이 사업권을 반납하고 롯데투어가 이를 넘겨받았다. 롯데투어도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업은 2013년 청산됐다.
정부는 ‘투트랙’ 지상 개발로 수익성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역세권은 고밀·복합 개발을 통해 핵심 거점으로 조성하고, 선로 주변 노후·저밀 지역은 철도부지와 함께 통합 재정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역별 지상개발의 예시도 제시했다. 서울역~구로역을 연결하는 서울국제업무 축, 구로역~석수역을 연결하는 신산업 경제 축, 청량리역~도봉역을 연결하는 동북 생활경제 축 등이다. 부산의 가야~부천~서면을 잇는 신(新)광역클러스터도 정부의 구상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건 지자체의 역할이다. 정부가 현물 출자하는 철도부지 외에 인근 부지를 얼마나 확보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기 때문이다. 경의선 숲길은 철도 지하화의 성공적 사례로 꼽히지만 수익성은 높지 않다. 철도부지 인근과의 통합개발보다 도심 공원 공급에 초점을 맞춘 탓이다. 철도부지 위에 공원을 짓는 것으로는 지상 개발 이익을 보장하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사업 추진이 쉬운 단선 철도를 지하화하면서 역사와 인근 부지를 얼마나 통합 개발 부지로 확보하느냐가 사업성을 가르게 된다. 국토부 관계자는 “철도 지하화는 일종의 도시개발 사업”이라며 “지자체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철도 지하화 사업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선 선도사업이 ‘성공 사례’로 자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선도사업이 무리 없이 진행돼야 다른 노선의 지하화에 참여하는 지자체와 민간 사업자가 늘어날 수 있다. 수익성 확보가 더 어려운 지방의 경우 수도권 노선과 매칭해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다. 김동선 대진대학교 교수는 “기술적·비용적으로 철도 지하화가 쉬운 곳들을 먼저 진행해야 한다”며 “수도권과 지방을 패키지화해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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