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9차 설계 수정... 언제 "끝"을 외치면 될까 [고향집 다시 짓기]

이창희 2024. 2. 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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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집 다시 짓기] 집 지은 선배들의 도움으로 설계 고민을 끝내다

집을 지으며 했던 고민들, 집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챙겨야 했던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집은 분명 '사는 (buy)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담아내야 하는 '사는 (live) 곳'이니까요. <기자말>

[이창희 기자]

'이대로 설계를 끝내도 될까? 후회하지 않겠어?'

빠져나갈 수 없는 질문의 쳇바퀴에 올라타서, 다람쥐처럼 제자리를 뛰어온 지 3개월이 흘렀다. 5월의 가족모임에서 공유한 설계에서 더 이상 바꿀 것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직도 '끝'을 선언하지 못했다.

PC에 저장된 설계안을 확인하니, 그 사이 다섯 번의 변경을 더해서 벌써 9차 설계안이 오가는 중이다. 더 이상은 머뭇거릴 수가 없다. 겨울에 철근콘크리트 공사라니, 모두가 말리는 바로 그 '겨울 공사'의 압박이 무겁게 가슴을 짓누른다. 게다가, 여든의 노모가 집도 없이 겨울을 나게 할 건가? 무섭다. 

큰 돈이 드는 일... 이래도 될까?

지금까지 결정을 하지 못해서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언제나 목적만을 보고 '쉽게' 정해버려 문제가 되었지, 결정을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내 삶에서 가장 큰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라서 그런지, 마음속에서 잠잠했던 불안과 걱정 세포가 자꾸만 결심을 막는다.

가능하면 설계를 확정한 후 공사를 시작해서, 변덕이 비집고 들어갈 틈을 차단할 생각이었는데, 그 강력한 조건이 '끝'을 선언할 용기를 잡아먹었다. 수백 장의 도면과 파워포인트 슬라이드에 파묻혀서 숨조차 쉬기 어려울 때, 친구가 말을 건다.

"오늘 우리 집에 놀러 올래요? 남편이 바비큐를 준비한대요."

근처에서 의지하며 살아가는 친구인데, 몇 년 전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직접 지은 주택에 이사하셨다. SNS에 공유하는 설계안에 대해 조언을 해주기도 하셨고, 요즘의 정체된 고민을 짐작하는 친구이니 도움을 주겠다는 신호이기도 했다. 집 짓기를 먼저 결심하고 실행하신 선배가, 마음을 써서 내미신 손을 감사히 잡아보기로 했다.

"너무 좋아요!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 주세요!"

시간을 정하고, 후식으로 함께 먹을 과일을 챙겨들고 집을 나섰다. 친구의 집은 포항의 시내에서 조금은 떨어진 흥해에 있었고, 부부가 정성껏 가꾼 정원이 싱그럽게 반짝인다.

몇 시간 동안 잘 구워진 고기와 텃밭에서 수확한 야채 샐러드가 더해진 식탁은 풍성하고 신선했고, 또 다른 집 짓기 경험자인 친구의 친구까지 넷이 둘러앉았다. 즐거운 식사가 어느 정도 끝나갈 즈음, 머리를 가득 채운 고민이 염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 

"도저히 언제쯤 설계를 끝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만하면 된 것 같기도 하고, 여기서 멈추면 혹시라도 공사 시작하고 난 후에 후회하며 억지를 부리게 될까 봐 겁이 나요. 그렇게 되면, 공사를 진행하시는 분들도 힘들어 지실 테고, 비용도 설계도를 바꾸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거잖아요. 어쩌죠?"

집 짓기를 한 번쯤은 경험해 본 친구들은 내 고민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만큼 집이 지어지는 것은 수많은 고민과 결정의 연속이고, 집 짓기가 끝난 다음에도 살아가며 발견되는 '개선점'이 언제라도 괴로울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지금까지 나온 도면을 정성껏 들여다봐 주었고, 주택에서 살아가며 발견한 개선점도 아낌없이 나눠 주었다.

친구들의 구체적인 조언은 집을 지으며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와 결합하여, 어떤 식으로 내 마음에 형체를 만들었음에 틀림이 없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설계 수정 의견을 빼곡하게 정리해서 건축사무소에 전송했고, 한 달 만에 최종 공사비에 대한 산출 결과를 받아들었다. 나의 고민을 알아채고 쳇바퀴에서 꺼내준 집짓기 선배들의 도움에, 지금도 정말 감사하다.
 
▲ 집 짓기 수정의견을 정리하다. 선배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그 동안 구성했던 공간을 재배치하여 수정에 대한 의견을 정리해서 건축사무소에 보냈습니다. 역시, 혼자 고민하면 안됩니다. 감사합니다, 친구분들!
ⓒ 이창희
▲ 동선 및 공간 배치 확인 곳곳의 출입구를 통해 집 주변의 공간들과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확인해 보았다. 친구들의 조언대로 집 주변과의 연결성을 고려하여, 동선을 확인하니 지금의 개선안이 꽤나 마음에 들었습니다.
ⓒ 이창희
 
최종 설계에서 가장 큰 변화는 가족의 공용공간인 주방과 거실을 연결하여, 집의 앞 쪽 햇살이 가장 잘 닿는 곳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설계에서는 원래의 고향 집에서의 공간을 그대로 복제하여, 남쪽의 열린 공간에 거실과 엄마의 방을 놓았으나, 엄마의 방을 과감하게 동쪽으로 옮기고 앞쪽에는 부엌과 거실을 연결시켜 놓았다.

마음에 들었다. 가끔 고향 집에 들렀을 때 관찰한 엄마의 동선을 되새겨보니, 대부분의 시간은 거실과 부엌에서 쓰셨고 주무실 때만 안방에 들어가는 식이었다. 그렇다면, 남향의 집에서 대낮의 햇살이 들이치는 시간은 부엌과 거실로 채우는 것이 상식적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하면 거실의 창에서 야외 테라스로 동선도 연결되고, 정원에서의 바비큐 시나리오도 더 자연스러워졌다.

다음의 변화라면 다용도실, 계단실에서 외부로 통하는 문을 만든 것이다. 이렇게 해 놓으니, 엄마가 밭에서 일을 하시다가 집으로 들어오거나 화장실에 접근하는 동선도 간결해졌고, 계단실에 짐을 넣기 위한 동선도 추가로 확보되었다. 이 변화도 집안 곳곳에서 외부로 연결되는 통로가 있도록 하는 것이 좋더라는, 집짓기 선배의 조언 덕분이었다.

아버지 제사가 마지막인 줄 알았더니
 
▲ 아빠 제사에 모인 가족들 8월 초 아빠의 제사가 있었고, 가족들이 모였습니다. 공사의 착수일이 점점 늦어지고 있어서, 마음이 무거운 날들이었지만, 이렇게 모이니 좋았습니다.
ⓒ 이창희
 
이렇게 9월 초가 되니, 구조나 공간의 구성에 대한 설계는 대부분 마무리가 되었다. 여기서 더 늦어지면 회사의 숙소에서 나가기 전에 완공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 더 이상은 늦출 수 없다는 압력도 분명 작동했겠지만, 친구들과의 식사를 통해 확인한 공간의 재배치가 꽤나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쳇바퀴에서 내려와도 좋겠다는 자신감을 찾게 한 것도, 불안을 함께 밀어내 준 친구들 덕분이었다. 역시, 문제는 혼자 끙끙 싸매고 있으면 안 된다. 주변에 분명히 은인이 있다.

"건축주님, 내부 인테리어 미팅을 하러 한 번 올라오셔야 하겠는데요. 시간 언제 괜찮으세요?"

갑자기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왔다. 구조 설계가 마무리되었으니, 인테리어 미팅을 해야 한다고 했다. 9월 초에 인테리어 미팅을 잡고, 그다음 주에는 시공사에서 추천해 준 붙박이가 구 업체와 미팅을 잡았다. 설계가 끝나면 고민은 끝인 줄 알았더니, 아직도 건축주가 결정해야 하는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게다가, 이게 끝인가 하면, 그게 아니더라. 최종 설계도면이 준비되는 동안, 건축 허가를 신청하기 위해서는 고향의 오래된 집의 철거도 진행해야 한다. 산 넘어 산이다. 게다가 고향의 오래된 집은 석면이 포함된 슬레이트 지붕의 구옥이라서, 전문 철거 업체도 섭외를 해야 한다.

8월 초의 아빠 제사가 고향 집에서 치르는 마지막 행사일 줄 알았더니, 9월 말 추석까지 보내게 생겼다. 그리고 겨울은 점점 코앞으로 다가오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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