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족쇄' 풀린 이재용, '뉴 삼성' 향해 기지개 켤까(종합)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약 9년간 발목을 묶었던 '경영 족쇄'를 풀면서 '이재용식 뉴 삼성'을 향한 경영 행보에 속도를 낼지 관심이 쏠린다. 5일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모두를 무죄로 본 법원의 판결로 이 회장은 사법리스크를 일단 해소했다. 검찰의 항소로 2심 재판을 받을 가능성이 남아있지만, 재판이 본격화되기 전까지는 재판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경영 행보가 가능해졌다. 이 회장은 올해 초 삼성리서치를 방문해 임직원들에게 "더 과감하게, 더 치열하게 도전하자"고 강조한 메시지를 이제 행동으로 옮길 것으로 보인다. 향후 삼성의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한 대규모 투자와 인수·합병(M&A) 등에도 시동을 걸며 연초 움츠렸던 모습을 뒤로 하고 '뉴 삼성' 구축을 향한 기지개를 켤 것으로 재계는 기대한다.
재판 변수 없어진 이재용, 보폭 넓힐 듯
무죄 판결은 이 회장의 대외적 이미지를 좋게 하는 동시에 이 회장 운신의 폭이 넓어져 큰 의미가 있다. 그간 이 회장은 매주 2회 나가야 하는 재판 일정으로 인해 해외 출장 일정을 잡기 어려웠다. 삼성과 경쟁하는 글로벌 기업들에 맞서려면 세계 시장에 나가 눈으로 확인하고 주요 인사들을 만나 활로를 모색해야 했지만 이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올해 초에도 이 회장은 국내에서만 일정을 소화했다. 지난달 7~10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2024)와 같은 달 15~19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 경제 포럼(다보스 포럼)에 가지 않았다. 대신 이 회장은 지난달 10일 서울 서초구 우면동에 있는 삼성리서치를 찾아 6G를 포함한 차세대 통신 기술 동향과 대응 방안을 점검했다. 이어 같은 달 16일에는 서초사옥에서 ‘2024 삼성 명장’ 15명과 간담회를 하며 소통했다.
사법리스크의 족쇄는 주요 인사와의 회동도 어렵게 했다. 이 회장은 지난달 26일 우리나라를 찾은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와 만나지 못했다. 당초 올트먼은 이 회장과의 만남을 요청했지만, 이 회장이 1심 선고를 앞둬 일정에 변수가 있었던 사정 등으로 불발됐다. 대신 올트먼은 경기도 평택에 있는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을 둘러보고 경계현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DS) 사장과 회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날 무죄 판결로 상황은 달라졌다. 보폭은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당분간 국내 현안들을 챙기면서 해외 출장 관련 계획들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 일각에선 이달 말 또는 다음 달 초 이 회장이 외국행 비행기에 오를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형 M&A·신기술 투자 속도 기대감
해외 출장은 곧 대규모 투자, 대형 M&A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업계는 삼성전자가 반도체뿐 아니라 인공지능(AI)과 6세대 이동통신(6G), 바이오 등 미래 먹거리 분야에서 초격차 기술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아낌없는 투자가 필수라고 본다. 이 회장은 새해 첫 행보로 찾은 삼성리서치에서 "새로운 기술 확보에 우리의 생존과 미래가 달려 있다. 어려울 때일수록 선제적 연구·개발(R&D)과 흔들림 없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 회장은 2012년 부회장 취임 후 2016년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하기 전까지 신사업 확대를 위해 M&A 사업에 힘썼다. 삼성 기기 생태계 구심점으로 2014년 관련 기업 인수로 마련된 '스마트싱스'가 M&A 대표 성과다.
삼성전자 자회사로 최근 전장 사업에서 성과를 내고 있는 '하만'도 2016년 80억달러 규모로 삼성전자에 인수됐다. 모바일 결제 시스템인 삼성 페이는 삼성전자가 2015년 미국 모바일 결제 솔루션 업체인 루프페이를 인수하면서 기반 기술이 확보됐다. 삼성 AI 비서 '빅스비' 역시 삼성전자가 2016년 관련 기업을 인수한 뒤 기반 기술을 확보해 선보인 서비스다.
대형 투자 계획이 나올지도 주목된다. 이 회장은 가석방으로 풀려난 직후 2021년 8월 향후 3년간 240조원을 투입하겠다는 초대형 투자 계획을 발표한 전례가 있다. 시장에선 삼성전자가 반도체뿐 아니라 AI와 로봇, 6G, 바이오, 전장 등 신사업 분야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4분기 말 기준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92조4200억원이다.
책임경영 속도…3월 주총서 'JY이사회' 완성할 듯
이 회장이 사법리스크를 털어내면서 다음 달에 열릴 주주총회에서 그가 등기이사로 복귀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등기이사 복귀는 곧 책임경영의 의지를 대외적으로 알리는 동시에 '이재용 이사회'를 완성, '뉴 삼성'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하는 수순이 될 수 있어 주목받는다.
이 회장은 2022년 10월27일 회장으로 승진했지만, 여전히 미등기 임원이다. 이 회장은 2016년 10월27일 임시 주총을 통해 사내이사에 선임됐다. 하지만 이후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되는 등 사법 리스크에 직면하며 사내 이사직을 연임하지 않기로 했다. 2019년 10월26일 임기가 만료된 후 현재까지 미등기 임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등기이사와 미등기이사는 회사 핵심 의사결정을 논의하는 이사회에 참가할 수 있는지가 다르다. 등기이사는 이사회 구성원에 포함되지만, 미등기이사는 포함되지 않는다. 중대재해처벌법 등의 처벌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이로 인해 총수 일가가 미등기 임원이면 권한만 있고 책임은 없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재계에서는 이 회장이 대형 M&A 추진 등 투자를 결정하고 책임을 지는 적극적인 경영을 하려면 이 회장이 등기이사로 올라설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관상으론 문제도 없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정관상 3~14명으로 구성되는데,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한종희 부회장 등 사내이사 5명, 사외이사 6명 등 11명이다. 이재용 회장이 사내이사로 추가된다고 해도 정관을 어기지 않는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김평화 기자 peac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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