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마지막 1심' 임종헌 집유…"사회적 형벌 치렀다"
임종헌(65)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사법행정권 남용’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6-1부(부장판사 김현순‧조승우‧방윤섭)는 5일 오후 2시 임 전 차장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사건에서 일부 유죄를 인정하고 이같이 선고했다. 이른바 ‘사법농단’ 의혹의 첫 번째 기소 대상이었던 임 전 차장은 같은 사건으로 기소된 14명의 법관들 중 가장 마지막으로 1심 판결을 받았다. 2018년 11월 기소된 지 약 5년 3개월만이다.
유죄를 받기론 항소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은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조실장,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에 이어 세 번째다.
“오랜 기간 비난과 질타…사회적 형벌 치렀다”
재판부는 이날 임 전 차장에게 집행유예형을 선고하며 “피고인은 수사 초기부터 사법농단의 핵심으로 지목돼 오랜 기간 대내외적인 비난과 질타의 대상이 됐다”며 “수사부터 7년, 재판만 5년 넘는 기간동안 받으며 유죄를 받은 범죄보다 몇 배 많은 혐의를 벗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비용을 소비하는 사회적 형벌을 치렀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범죄사실과 관련해 500일 넘게 구금돼 자신의 과오에 대한 대가를 일정 부분 치른 부분 등을 감안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6일 선고에만 4시간이 걸렸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건과 달리, 임 전 차장의 선고는 43분만에 끝났다. 재판부는 “공소사실에 대한 유무죄 판단은 사법부를 이끌었던 고위직 피고인의 도덕적‧정치적 책임 유무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고, 오로지 법적으로 죄가 되는지만 판단한다”며 “어떤 측면에서, 어떤 관점에서 판단했는지만 간략히 설명하겠다”고 선고 첫머리에 밝혔다.
재판 서류 검토 지시 일부 유죄, 공보관실 운영비 관련 유죄
재판부는 임 전 차장에 대해 크게 10가지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재항고, 메르스 관련 정부 법적 책임, 홍일표 전 의원 정치자금법 사건, 유동수 의원 공직선거법 사건, 통합진보당 지역구 지방의회 의원 행정소송건 등을 심의관에게 검토하라고 지시한 데 대해서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를 유죄로 봤다. 공보관실 운영비와 관련해선 허위 예산편성에 대해 위계공무집행방해, 위법 사용에 대해 업무상 배임, 예산 집행 기록을 허위로 남긴 데 대해선 공전자기록허위작성 및 허위공전자기록행사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국가권력으로부터 사법부의 독립을 수호해야 할 피고인의 책무에 반하고, 사법부 독립에 대한 신뢰를 해쳐 비난가능성이 매우 크다”며 “사법부 독립을 훼손한 죄질이 매우 나쁘고, 정치적 중립성‧공정성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해친 중대한 범죄”라고 말했다. 또 공보관실 운영비 명목으로 현금성 경비를 타낸 데 대해서도 “국가 예산을 올바로 사용하지 않은 건 그 자체로 비난받을 범죄”라고도 했다.
무죄 법관 이름 하나하나 읽은 재판부
재판부는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과 관련한 법원 내의 실망감을 전하면서도 검찰의 무리한 수사도 함께 지적했다. 선고 말미에 무죄 부분 공소사실을 짚으면서, 사건에 관계됐던 법관 수십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기도 했다. 재판장 김현순 부장판사는 “피고인은 법원행정처 기조실장, 차장으로 장기간 주요 보직을 맡아 사법행정 업무 전반을 수행하며 권한을 유용해 다수 범죄를 저질렀고 전 재직기간에 걸쳐 위법한 권한을 행사했다”며 “국가가 부여한 사법행정권을 사유화해 특정 의원이나 청와대를 위해 사용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했다. 또 “사법부의 공정성과 정치중립성, 국민신뢰를 저하시켜 법원 구성원에게 커다란 자괴감과 실망감을 안겼다”며 “사법부를 이끌 중대한 책무를 수행하는 사법행정권 행사 법관들이 다시는 피고인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책무를 망각했던 피고인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며 엄벌 필요성을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그러면서 “수사 초기 언론을 통해 국민의 뇌리에 각인됐던 ‘사법농단’ 사건은 수십명의 검사를 투입해 300쪽이 넘는 공소장으로 시작됐지만, 대부분 실체가 사라진 채 ‘심의관에게 부적절한 보고서를 작성하게 했다’는 직권남용죄만 남게 됐는데 이것도 대부분 죄가 되지 않았다”며 “유죄가 인정된 범행도 피고인의 단독 범행이거나, 예산과 관련한 범행에 지나지 않는다”고 짚었다.
임 전 차장은 선고가 끝난 뒤 ‘유죄 인정된 부분에 대한 입장’ ‘법원 구성원들에게 한 마디’ 등을 묻는 질문에 아무 답을 하지 않고 법원을 떠났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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