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회장, 사법 리스크 덜었다…1심 19개 혐의 모두 무죄

윤지원, 심정보 2024. 2. 5.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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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 관련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 1심 선고 공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 합병 의혹’ 사건 1심에서 전부 무죄를 받았다. 이 회장은 2020년 9월 기소된 지 3년 5개월 만의 첫 번째 법원 판단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경영권 리스크의 상당 부분을 덜게 됐다. 두 회사 합병을 경영권 승계에 활용했다는 혐의를 재판부가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2부(부장판사 박정제 지귀연 박정길)는 5일 이 회장의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 사건에 대해 “검찰의 공소사실은 모두 범죄 증명이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앞서 지난해 11월 검찰 구형은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이었다. 기소 당시 검찰의 공소장은 133쪽, 혐의는 총 19개에 달했지만 이날 모두 무죄로 판단됐다. 함께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도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1심 재판부는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이 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불법 합병이란 검찰의 핵심 공소사실부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회장과 (그룹) 미래전략실(미전실)이 합병을 전단(독단)적으로 추진하지 않았고, 삼성물산 합병TF, 경영진과 이사회 등이 합병을 추진한 것으로 보이며, 합병에 사업상 목적이 있었다”며 “경영권 승계가 합병의 유일한 목적이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김영옥 기자


“합병으로 물산 및 주주들에게도 이익”


재판부는 2015년 5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두 회사가 합병 추진 계획을 발표하는 부분을 들여다봤다. 당시 두 회사는 ‘삼성물산 주식 1주=제일모직 주식 0.35주’로 합병 비율을 계산, 제일모직 주식 1주당 삼성물산 약 3주로 평가했다. 당시 이 회장은 제일모직 지분 23.3%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삼성물산 지분은 갖고 있지 않아, 제일모직 주식 가치가 높을수록 삼성그룹의 지배권 확보에 유리했다고 검찰은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합병 전 삼성물산은 이미 성장 정체 및 위기 극복을 위한 여러 시도를 하던 상황에서 제일모직 경영진과의 협의 등을 거쳐 양사가 직접 합병을 추진했다”며 “(검찰이 삼성 미전실의 승계계획안이라며 제출한 프로젝트 G 등의 문건은) 이건희 회장 사망 시 막대한 상속세 납부에 따른 지분 감소 및 상속에 따른 지분율 변화, 삼성그룹 지배구조를 유지‧강화하는 다양한 방안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보고서이지 약탈적 불법 합병계획을 담고 있는 승계계획안이라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월 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열린 2024년 경제계 신년 인사회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재판부는 특히 삼성물산 주주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배임)에 대해 “검사가 주장하는 손해는 ‘추상적 가능성’에 불과하여 그 자체로 업무상 배임죄의 손해가 될 수 없다”고 봤다. 또 “물산 이사는 물산(회사)에 대한 임무를 부담하므로 주주에 대한 임무를 내용으로 하는 (검찰의) 공소사실은 그 자체로 타당하지 않다”며 검찰의 법리구성 자체가 잘못됐다고 봤다.

이 회장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합병을 하기 위해 거짓 정보 유포를 유포하거나, 중요 정보를 은폐하고, 허위 호재 공표 등을 동원했다는 검찰 측 주장도 “시장에 관련 정보가 가감 없이 유통되고 있었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총괄적으로 “합병 과정에서 물산 및 물산 주주의 이익이나 의사가 도외시된 바 없고, 오히려 합병을 통한 그룹 지배력 강화 및 경영권 안정화는 물산 및 주주들에게도 이익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결론지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에 적법 판단


재판부는 합병 과정에서 ‘불법 경영권 승계’ 논란이 불거질 것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이 회장 등이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장부상 가치를 4조5000억원 이상 부풀렸다는 의혹 역시 근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삼성바이오는 2012년 미국 제약사인 바이오젠과 공동으로 삼성에피스를 설립하며, 바이오젠에 삼성에피스 지분의 절반을 정해진 가격에 살 권리(콜옵션)를 부여했다. 검찰은 삼성바이오 회계장부에서 ‘부채’(1조8000억원)로 처리돼야 하는 바이오젠의 콜옵션 보유 사실이 빠져있어 분식회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에 대해 “(당시 바이오젠이 보유한 콜옵션은 실질적 권리가 아니므로) 반드시 공시돼야 하는 정보라는 점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가 2012~2014년 삼성에피스의 회계상 가치를 장부가액(3000억원)으로 인식하다가, 2015년부터 시장가액(4조 8000억원)로 바꾼 것도 정상적 회계처리라고 봤다. 삼성에피스의 사업이 활기를 띠면서 바이오젠이 콜옵션을 행사할 가능성이 커져 실질적 권리가 됐고, 그에 따라 회계기준 변경의 필요성이 있었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삼성바이오 재경팀은 A 회계법인 회계사들과 올바른 회계처리를 탐색했다”고 평했다.

김경진 기자

이 회장은 이날 무죄 선고 뒤 퇴청길에서 취재진에게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그의 변호인은 “이번 판결로 삼성물산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점이 분명히 확인됐다”며 “현명한 판단을 내려주신 재판부에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선고 후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검토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윤지원·김준영 기자 yoon.ji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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