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복수극인데 과몰입 유발…'내남결'엔 남다른 디테일 있다
"축하해. 내가 버린 쓰레기 알뜰살뜰 주운 거."
지난달 1일부터 방영중인 tvN 월화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이하 '내남결')에서 강지원(박민영)이 웨딩드레스와 비슷한 하얀색의 ‘민폐 하객룩’을 입고 박민환(이이경)과 정수민(송하윤) 결혼식을 찾아 내뱉은 말이다.
지원은 위암 투병 중에 남편 민환과 절친 수민의 불륜을 목격하고 몸싸움을 벌이다 죽음을 맞이한 전생의 기억을 안고 환생해, 민환과 수민에게 복수를 다짐한다. 고된 시집살이, 결혼 후 무관심했던 남편 때문에 힘들었던 지원은 두 번째 생에선 민환과 수민이 결혼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내남결’은 통쾌한 복수 서사에 힘입어 승승장구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방영한 10회 시청률은 12.1%(닐슨코리아)까지 치솟았다. ‘군검사 도베르만’(2022년 2~4월, 10.1%) 이후 2년 만에 달성한 tvN 월화극 최고시청률이다. 아마존 프라임비디오에서는 TV쇼 부문 글로벌 일간 순위 57개국 1위를 기록했다. 네이버 웹툰에 따르면 드라마 방영 후 원작 웹툰 거래액이 10일 만에 17.1배나 증가했다. 이 기간 전체 조회수는 7.1배 상승했다.
디테일의 차이
‘내남결’은 전형적인 권선징악 구조다. 모진 시집살이로 결혼생활을 참아내던 여주인공이 남편과 친구에게 배신당한 후, 두 번째 기회를 얻어 복수를 하고 재벌과 만난다는 큰 줄거리는 2008년 방영한 SBS 일일극 ‘아내의 유혹’을 떠올리게 한다. ‘아내의 유혹’에선 여주인공이 얼굴에 점을 찍고 돌아와 환생한 듯 행동하지만,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내남결’에선 여주인공이 실제로 환생한다는 차이가 있다.
'내남결'의 기본적인 흐름은 클리셰 범벅이지만, 디테일의 차이가 극적 재미를 극대화한다. 외강내강의 악녀를 그린 예전 드라마와 달리 ‘내남결’의 악녀인 수민은 청순한 생머리에 수수한 화장과 옷차림을 한다. 복수를 다짐한 지원이 어깨를 드러내며 화려한 변신을 이어갈 때도, 수민은 목 위까지 셔츠 단추를 잠그고 선한 눈망울로 주변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든다. 수민은 고등학교 때부터 자신의 말을 믿어주고 항상 져줬던 지원이 달라져 가는 모습에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그간 복수극에서 악녀의 전매특허였던 고성방가도 '내남결'에선 주인공 지원의 몫이다. 극중 대기업 U&K의 사내커플이었던 지원과 민환이 헤어지는 과정에서, 지원은 민환의 뺨을 연달아 때리고 바람 핀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린다. 수민의 자작극에 휘말려 억울한 오해를 받을 뻔한 지원이 단전에서 끌어올린 발성으로 “정수민, 거기 서!”를 외치는 장면도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이 과정에서 박민영과 송하윤은 캐릭터에 제대로 녹아들었다. 박민영은 복수를 하면서도 괴로워했던 지원이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요구할 만큼 성장한 모습을 단호한 말투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표현했다. 송하윤은 대놓고 악행은 저지르지 않지만, “넌 내 반쪽이잖아” “네가 먼저 양보했잖아”라는 가스라이팅으로 지원을 길들여온 수민의 모습에 현실성을 부여했다. 언제 어디서든 강자 옆에 붙을 수 있는 자신감을 보이다가, 지원에 밀리기 시작하니 애절한 눈빛을 보이는 열연을 펼친다.
분노유발자인 악역이 웃음 제조기로도 활약한다는 점도 ‘내남결’만의 특징이다. “여자는 남자를 잘 만나야 해”라는 막말을 뱉고, 이별을 통보하는 지원에 손찌검을 하며, 지원과 수민 사이에서 이득이 될 여자를 취하는 이기적인 성격의 민환 캐릭터는 배우 이이경을 만나 미워할 수만은 없는 악역이 됐다. 이이경은 특유의 유머를 섞어 결국 지질함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민환의 모습을 재미있게 그려낸다.
회귀물 통한 변주
익숙한 상황이 그대로 펼쳐지는 회귀물을 통해 상황을 뒤집을 수 있다는 점은 시청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 충분하다. 회귀는 이미 웹툰·웹소설 시장에서 검증된 흥행 코드 중 하나다. 웹툰 원작으로 인기를 끌었던 JTBC ‘재벌집 막내아들’, SBS ‘어게인 마이 라이프’ 등에도 2회차 인생을 사는 주인공이 등장했다.
‘내남결’에선 유능하고 착하기만 했던 지원과 그런 지원을 이용해 이득을 취해온 수민의 이야기가 이미 미래를 알고 있는 지원과 같이 환생한 U&K그룹 후계자이자 조력자 유지혁(나인우)의 계략으로 점점 뒤바뀐다. 지원은 자존감을 되찾으며 지혁과 사랑에 빠지는 반면, 수민은 지원에게 점점 집착하면서 자신감을 잃어간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전생에서 비참하게 죽은 여주인공이 회귀해 길티 플레저(죄책감과 동시에 쾌락을 만끽하는 심리)를 선사하는 재미 요소가 있다. 불륜 치정극에 오피스물과 회귀물이 더해지면서 장르가 다채롭게 변주됐다”고 인기 요인을 분석했다.
드라마 후반부에선 지혁의 정략결혼 상대인 오유라(보아)의 등장이 예고돼 지원과 지혁의 우여곡절 로맨스가 펼쳐질 전망이다. 유라는 원작 웹툰에 등장해 민환이 지원을 더욱 괴롭히도록 만드는 메인 빌런이다. tvN 관계자는 “지원이 이전 생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선 자신의 운명을 누군가에게 넘겨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암 투병, 살인 등 첫 번째 생에서의 비극적인 사건·사고들이 누구를 향해갈지 지켜봐 달라”고 말했다.
황지영 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모친 사망 전 “집은 딸 가져라”…그 합의 무효시킨 오빠의 ‘법’ | 중앙일보
- “저, 어젯밤에 죽을 뻔했시유” 최규하 겁에 질린 The Day (78) | 중앙일보
- 애 낳으면 1억, 셋 낳으면 집도 준다…부영 '파격 출산 복지' | 중앙일보
- 경기장쓰레기 줍는 한국팬 찬사 받자…일본 "저거 일본 문화에요" | 중앙일보
- 이 무릎으로 4강 해냈다…포기를 모르는 '캡틴 손' [아시안컵 축구] | 중앙일보
- “최순실 사태 가장 후회스러운 건...” 박근혜 회고록 오늘 출간 | 중앙일보
- 50대 라이더 숨졌는데…강아지 안고 '멍' 때린 만취 벤츠녀 | 중앙일보
- 손흥민 펑펑 울었다...기적 역전승 뒤엔 '좀비·1020분·운' 3박자 | 중앙일보
- 중국산인 줄 알았는데…전세계 수천억 매출 올린 이 제품 정체 | 중앙일보
- 그들은 실형 직전 튀었다...'거리의 탈옥수' 첫 6000명 돌파 [거리의 탈옥수]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