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입춘, 돌아온 한 해를 잘 살아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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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상 기자]
▲ 가지 치고 난 후. 대추, 배롱, 멀리에 단풍나무 |
ⓒ 김은상 |
입춘이다. 태엽을 감은 듯 24절기가 다시 시작됐다. '다시'란 말의 배후엔 무언가 착오나 실수 같은 어긋남이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애초로 돌아감이 기껍지만은 않다. 하지만 시골에서 맞는 입춘은 다르다. 한 해가 또 한 번 주어지니 감사하는 마음이다. 차분히 앉아 정원을 바라보며 눈앞에 그림을 그린다. 스케치도 하고 채색도 하며 보기 좋은 정원을 꿈꾼다.
입춘(立春)에는 '入'(들입)자를 쓰지 않고 '立'(설립)자를 쓴다. '立'에는 '곧', '바로'라는 의미가 있다. 곧 봄이 온다는 의미다. 입하(立夏), 입추(立秋), 입동(立冬)도 같은 이유로 '立'자를 쓴다. 봄에 들어선 것이 아니라서 꽃샘추위가 기다리고 있다. 아무렴 어떠랴. 봄이라는 말만으로도 마음이 포근해진다.
때맞춰 가랑비 오고, 비 갠 후엔 따스한 햇살에 완연한 봄기운이 돈다. 해서 모처럼 마음을 탁 놓고 해바라기를 한다. 튤립 싹이 봉긋하게 솟아났다. 반가움도 잠시, 불안함이 스친다. '늦추위를 잘 견디려나?' 아, 제발 걱정 따윈 접어두자. 오늘의 이 보드라운 날씨를 즐기겠다는데, 상관없다, 꽃샘추위도 봄의 일부니까.
움직이기 좋은 날씨다. 조금만 일을 해도 땀이 흘러 겉옷을 열어젖힌다. 지난해 기록을 보니 2월엔 딱 세 가지를 했다. 가지치기, 해충방제 그리고 텃밭 만들기. 간단한 듯해도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도 명색이 시골살이 2년 차, 경력직 정원생활자 아닌가? 이쯤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정도는 알고 있다.
이미 며칠째 가지를 치고 있다. 엄동설한엔 잘린 가지가 동해를 입을 수 있어 이맘때가 적당하다. 키가 너무 커버린 단풍과 매실나무는 기다란 고지가위를 사용해 웃자란 가지만 잘라준다. 최대 4미터 장대에 달린 고지가위를 휘적이며 몇 번 자르다 보면 뒷목과 어깨가 뻐근하다.
대추나무와 배롱나무는 조금 너무한다 싶게 가지를 잘라낸다. 때때로 잘린 가지가 떨어지며 얼굴을 때린다. 대추나무 가시에 손을 찔리기도 한다. 불현듯 '나무들이 제 몸에 손대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정원을 가꾸는 사람의 딜레마다. 그러나 멋대로 자라게 두면 나중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키가 자라고 우거질 것이다.
잘라낸 가지를 치우는 것도 무척 번거로운 일이다. 손수레 가득 두 번을 실어 날랐지만 잔 가지가 사방에 널렸다. 나중에 한꺼번에 치우기로 한다. 후다닥 몰아서 하면 노동이지만 쉬엄쉬엄하면 놀이가 된다. 오늘 다 하면 내일 놀거리가 없다. 정원은 내일 일까지 오늘 열심히 한다고 박수를 보내지 않는다.
전정을 한 후 방제작업을 했다. 해충들이 나뭇가지에 까놓은 알이 부화하지 못하도록 약을 친다. 친환경 약제인 기계유유제와 석회유황합제를 20일 간격으로 흠뻑 뿌려준다. 포도, 복분자, 복숭아, 무화과, 자두, 사과, 매실 등 과실수에 주로 뿌리는데, 배롱나무에도 미국선녀벌레가 많이 끼기 때문에 함께 살포한다.
이달 중순쯤엔 텃밭을 준비해야 한다. 퇴비를 뿌리고 흙과 뒤섞어 준 다음 이랑과 고랑을 낸다. 퇴비는 작년에 미리 사두어 독성가스가 어느 정도 날아가도록 그늘에 말려두었다. 플랜터박스에도 마찬가지로 채소를 키워낼 양분을 공급해 준다. 작은 텃밭이지만 연간 구획정리와 작물 선정은 기본이다.
어느덧 마음은 벌써 봄에 가 있다. 올해는 좀 더 잘할 수 있을까? 작년에는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늦추위 속에 애꿎은 화초들이 고생했다. 쫓기듯 시간을 달구는 도시에서 가져온 습관 때문이다. 일에도 시간에도 그것에 순서를 부여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삶의 속도도 마찬가지. 무리하지 않는 태도가 억지스럽지 않은 정원을 만든다.
다시 입춘이다. 나는 이 한 해를 참, 잘,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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