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차 가수 윤하, 20년 전의 자신을 다독이다
[이현파 기자]
▲ 지난 2월 3일 펼쳐진 윤하의 20주년 콘서트 '스물'. |
ⓒ c9 엔터테인먼트 |
가수 윤하가 데뷔 20년 만에 커리어 최대의 순간을 맞이했다. 윤하는 지난 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케이스포돔(구 체조경기장)에서 20주년 콘서트 '스물'을 개최했다. 3일과 4일간 펼쳐진 이번 공연의 좌석은 매진되었다. 가요 역사상 여섯 번째로 체조경기장에서 단독 공연을 펼친 여성 솔로 가수로 기록되었다.
윤하는 2022년에는 3천 명 규모의 올림픽홀에서 공연을 펼쳤다. 그리고 '사건의 지평선'이 역주행 바람을 탄 이후인 2023년 3월에는 5천 명 규모의 핸드볼경기장에서 공연했다. 그리고 1년 만에 만 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체조경기장'에 입성했다. 윤하는 오랫동안 안정된 티켓 파워를 보유한 아티스트였지만, 이 정도의 상승세를 예상한 사람은 없다.
체조경기장에서 빛 발한 윤하의 야망
커리어 내내 앨범과 공연을 통해 다양한 야망을 드러낸 가수 답게, 윤하는 큰 무대를 잘 활용하기 위해 씨름했다. 특히 6집 <End Theory>(2021)에 담긴, 우주를 향한 야망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 규모의 무대가 필요했다.
특히 윤하는 이번 공연에 도입된 '이머시브 사운드 시스템'에 대한 자신감을 크게 드러냈다. 보통 체조경기장에 투입되는 스피커보다 3~4배 많은 스피커가 설치되었다. 좌석에 상관없이 균질한 소리를 들려주는 한편, 다양한 악기의 소리가 입체적으로 전달되었다.
가로로 넓게 뻗어있는 LED 화면에는 광활한 우주와 천체의 이미지가 번갈아 가며 등장했다. 중앙 통제를 통해 움직이는 응원봉 역시 생생한 공연의 경험을 완성했다. 콜드플레이(Coldplay) 등 윤하가 존경하는 스타디움 록밴드들의 영향도 꽤 느껴졌다.
6집 수록곡 'PRRW'의 웅장한 사운드와 함께 윤하가 무대에 등장했다. 'Black Hole', '물의 여행' 등 6집 앨범에 수록된 곡들이 이어졌다. '물의 여행'의 클라이막스에 단단한 고음이 공연장을 가득 채우자, 사방의 객석에서 탄성이 들려왔다. 윤하는 '아이스 브레이킹을 하는 데에 시간이 걸렸다'며 체조경기장이 주는 긴장감을 고백했다. 하지만 그 고백이 무색하게도, 윤하는 빠르게 대형 공연장을 장악했다.
윤하는 지금까지 발표한 300여 곡 중 이번 공연을 위해 스무 곡을 골랐다. 그 곡들의 면면은 팬들의 예상을 깼다. 한국 데뷔곡 'Audition(Time2Rock)'은 단연 압권이었다. "피아노 나만의 멜로디로 수많은 꿈들 속에서 빛나고 말거야"라는 10대 윤하의 노래가 30대 베테랑 가수 윤하의 입으로 흘러 나왔다. 'sbs 인기가요'를 통해 데뷔했던 18년전과 같은 모습으로, 피아노를 치며 노래하고 있었다.
▲ 지난 2월 3일 펼쳐진 윤하의 20주년 콘서트 '스물'. |
ⓒ c9 엔터테인먼트 |
20주년 공연에서 윤하는 자신의 뿌리가 록(Rock)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했다. 멘트를 할 때는 발랄하고 유쾌한 모습으로 일관하다가도, 마이크를 잡자마자 록스타로 변모했다. 육중한 기타 사운드와 함께 다시 한번 고음을 과시한 'Supersonic', '혜성','살별',팬들을 의자에서 일어서게 만든 'Rock Like Stars', '텔레파시', '오르트구름' 등 업 템포의 록 넘버가 쉼없이 이어졌다. 부지런히 무대를 활보하던 윤하는 자신에게 제2의 전성기를 안겨다 준 '사건의 지평선'과 함께 본 공연을 마무리했다.
20년을 톺아보는 윤하의 자세
앵콜 요청에 맞춰무대에 오른 윤하의 선곡은 앞선 곡들에 비해 차분했다. 윤하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어루만지는 노래 '스무살 어느 날'을 부르며 눈물을 흘렸고, 20년전 일본에서 발표했던 노래 '추억은 아름다운 기억'의 한국어 버전을 불렀다. '스물'이라는 공연 이름에 걸마젝, 윤하는 20년 전의 자신과 상호작용했다.
"좋은 어른이 되자. 아름다운 마을을 노래하는 사람이 되자. 성년이 된 걸 축하한다 윤하야." (VCR을 통해 전달된, 윤하가 20년 전의 자신에게 전하는 메시지 중)
20년 전 일본 시부야의 자그마한 카페에서 피아노를 치던 10대 소녀는 이제는 이틀 동안 체조경기장을 매진시키는 대형 가수로 우뚝 섰다. 데뷔 앨범보다 최근 앨범을 더 잘 아는 세대가 공연장을 가득 채운 것도 현재진행형 아티스트의 증거다. '기가 찬 일들이 있었다'는 윤하의 말처럼, 그 과정에는 지난한 부침과 역경, 정체기도 있었다.
희망적인 노래를 많이 불렀던 가수지만, 윤하는 흔한 힐링 에세이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며 무던한 자세로 말하는 한편, 그 과정을 함께 한 어른과 팬들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20년은 긴 세월이다. '기다리다'(2006)의 지고지순한 마음이 '사건의 지평선'(2022) 속 성숙한 이별로 자라날 만큼의 시간이다. 물론 '자신이 최고'라고 믿던 피아노 록 소녀를 강한 어른으로 만들어 놓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기다리다'의 20주년 버전을 마지막 곡으로 선택한 윤하는 팬들에게 "(데뷔 초처럼) 작은 극장이 되더라도 늘 같은 자리에서 노래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윤하가 이야기한 다음은 꽤 빠르게 찾아올 예정이다. 대전과 대구, 광주, 부산에서의 전국 투어 공연, 하반기 소극장, 대극장, 전국 투어 공연 등 18개의 공연을 더 앞두고 있다. 끊임없이 확장하는 윤하의 세계를 담아낼 정규 7집도 올해 발매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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