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구현사제단과 함께 한 이 사람, 함세웅 신부의 반세기
[이명옥 기자]
▲ 정의의 길, 세 개의 십자가 함세웅 평전 |
ⓒ 소동 |
최근에 나온 함세웅 평전 <정의의 길, 세 개의 십자가/ 소동 출판사>의 마지막 장을 읽었을 때 '거기 너 있었는가'라는 찬송가 가사가 떠올랐다. 시대가 그를 부를 때 마다 기꺼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묵묵히 걸어 온 함세웅 신부였기 때문이다.
저자 김삼웅 선생은 마흔 한 권의 평전을 썼다고 한다. 함세웅 신부 평전은 김삼웅 작가의 마흔 한 번 째 평전이다. 함 신부는 아직 살아있고, 현존하는 인물에 대한 평전이라니 객관성이 떨어지지 않을지 찬양 일색의 글은 아닐지 하는 일말의 의구심이 있었는데,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평전은 저자의 생각과 의견이 절제되어 있고 인터뷰와 자료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글의 구성은 시대 별로 총 5개의 장으로 되어 있다. 1장 사제가 된 소년(1942~1974), 2장 예수의 길, 정의의 길(1974 ~1978), 3장 찬란한 항쟁의 시대(1980~1988), 4장 민족사적 반성과 남북통일의 꿈(1988~2000), 5장 세 개의 십자가(2000녀대 이후) 다. 장 제목만으로도 평전의 내용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다.
1장은 한국 전쟁 폭격 중 그가 우연히 성모병원으로 피신해 천주교와 친숙해진 것을 계기로, 사춘기 때 삶과 죽음의 문제를 고민하며 사제의 길을 선택한 뒤 공부하게 된 과정을 보여준다.
지 주교 사건이 발단이 되어 석 달 후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만들어 졌습니다. 9월 23일 원주에서 열린 성직자 세미나에서 300여 명의 참석 사제들이 사제단 결성에 합의하였고 24일에는 원주 원동성당에서 전국 800여 명의 신부 중 450명이 서명한 서약서를 제대에 바치고 미사를 올린 뒤 처음으로 집단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64쪽
정의구현사제단은 민주주의 회복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수많은 일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구속 협박 등을 온갖 고난을 감내해야만 했다. 그럼에도 함 신부는 '정의'야 말로 종교의 속성이라 말한다. 선과 악을 구분하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준 것은 인간 스스로 사랑과 정의를 깨우치고 올바른 길을 가라는 의미일 것이다.
3장은 군부쿠데타로 들어선 전두환 정권과 맞서 투쟁하던 시기를 기록하고 있다.
1980년에 더 깊이 깨달았습니다만, 신앙은 암흑과 절망 가운데서도 희망을 간직하는 의지적 선태입니다.-157쪽
그 시기 정의구현 사제단은 부미방 사건이나 박종철 고문치사 진실 폭로, 6월 항쟁의 불씨를 지핀 명동성당 시위 등으로 치열하게 시대와 맞선다.
4장은 민주화 운동 이후 민족사적으로 활동 영역을 넓혀 남북 문제, 언론, 여성 문제, 등 폭 넓은 영역의 활동을 한 시기다. 평화신문과 평화방송 설립, 여성신학 탐구 남북을 하나로 잇기 위한 노력을 주 활동으로 꼽을 수 있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 있으면서 하고자 하는 일 중의 하나는 항일투쟁,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의 세 줄기를 연결하는 거예요. (중략) 이것이 바로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기본적인 물줄기고요. 그 물줄기가 분단을 넘어서 다시 통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 세 물줄기가 우리 민족사회의 같은 물줄기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민족에 대한 성숙한 사랑, 민주주의와 통일에 대한 확인이 이뤄지지 않느냐고 늘 이야기 했어요. -책 304쪽
▲ 함세웅 신부 붓글씨 이름의 가운데 글자 세가 세 개의 십자가로 표현되었다 |
ⓒ 이명옥 |
김삼웅 작가는 그의 이름에 들어 있는 '세 개의 십자가는 어쩌면 그 세 개의 역사적 물줄기를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함 신부가 부활의 예수를실천적 삶을 통해 만난다는 것은 그의 신념에 찬 고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수의) 부활은 결코 관념적 교리가 아닙니다. 불의와 맞서 싸우는 정의의 실천입니다. (ᆢ) 부활은 정의에 대한 열망과 불의와 거짓과의 결별에서 확인됩니다. -314쪽
함세웅 신부의 반세기 삶의 궤적은 한국의 현대사와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그는 청산되지 못한 친일 잔재, 분단 현실, 오랜 군사 독재 체제와 맞서 민주주의와 자유를 찾으려는 민중들에게 그는 실천하는 양심으로 민중과 고난의 길에 함께 했다. 유학파 엘리트로서 체제에 순응하고 고분고분하게 행동했더라면 아마도 주교나 추기경으로 성직 생활을 마칠 수 있었을 테지만, 그는 그 길을 택하지 않았다.
함 신부는 시대가 그를 필요로 할 때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거기' 민중과 함께 있었다. 작가가 함 신부를 의기, 용기, 결기를 지닌 참사람으로 표현한 것은 과장이 아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불의한 거짓과 권력에 굴복하지 않은 사람, 믿는 것을 실천하는 양심, 이것이 함세웅 평전을 일반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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