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함없는 한반도 위기 '처방전'

황용하 2024. 2. 5. 10:2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장] 과잉 억제가 부른 위기, 억제 강화가 더 필요하다고?

[황용하 기자]

 지난 1월 15일 경기도 파주시 임진강변에서 바라본 북측 초소에서 북한군이 외투로 몸을 감싼 채 대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연이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남북간 말폭탄 주고받기로 역내 정세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 그에 따라, 전 세계의 대북 전문가들이 북한의 최근 도발이 어떠한 의도를 가지는지에 대해 앞다퉈 논평을 내고 있다.

최근 가장 파장이 컸던 글은 미국 미들버리 국제 연구소의 로버트 칼린 연구원과 지그프리드 해커 교수가 지난 1월 11일에 <38노스>에 기고한 '김정은은 전쟁을 준비하는가?(Is Kim Jong Un Preparing for War?)'일 것이다. 이 글에서 두 전문가는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의 좌절에서 크게 실망한 김정은이 미국과의 외교 관계 정상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고 중국과 러시아와의 전략적 협력강화를 등에 업은 채 핵무기를 중심으로 안보 전략을 수립하면서, 역내 위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군사적인 해법에 확신을 가지게 됐다고 주장한다. 최근 김정은의 빈번한 '전쟁' 언급이 단순히 빈 말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칼린과 해커는 그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따라서 그들의 분석은 최근 북한의 도발에 기반하여, 북한이 위와 같은 결심을 하고 직접적 군사행동에 나설 수 있다는 '추측'에 좀 더 경사한 측면이 두드러진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윌슨센터 아시아 국장 수미 테리도 1월 30일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글 '북한 도발에 대한 과잉 반응의 위험성: 김정은의 최근 행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The Dangers of Overreacting to North Korea's Provocations: What Kim Jong Un;s Latest Moves Really Mean)'에서 비슷한 논조로 칼린과 해커의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수미 테리는 무력 과시와 저위도 위협 등에서 비롯한 우발적 충돌은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북한이 의도적으로 전쟁을 개시할 가능성은 낮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다만 우리가 수미 테리의 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녀가 글 말미에 제안한 두 가지 권고 사항이다. 첫 번째는 우발적 충돌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평양과의 소통채널을 구축해야 한다는 권고다. 오해, 오판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소통 채널은, 현재 교류가 현저히 적은 남북, 북미 관계를 생각했을 때 아주 중요한 사항인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문제는 두 번째로 제시한 한국, 미국, 일본이 군사력과 동맹을 강화해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억제해야 한다는 권고 사항이다. 또한, 수미 테리는 만약 트럼프가 재선했을 때, 김정은이 그와 더 대화하고 싶을 것이라며 적어도 올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전까지는 대북 군사 억제를 지속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덧붙였는데, 이는 전형적인 미국 중심 시각에서 비롯된 무책임한 의견이다.

소통 채널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와 실현 방안이 없는 상황에서 군사적인 억제만 강화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선택이 될 것이다. 이미 필자는 지난 1월 24일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한 발짝만 더 움직이면 쏜다'는 남과 북>이라는 글에서 억제는 '위협은 완전히 조건적일 것이다'라는 보장의 의사를 전달하면서 위협을 동반할 때 가장 효율적으로 작동한다는 주장을 언급했었다. 위협으로만 점철된 억제는 상호 불신만 키울 뿐만 아니라 군비 경쟁의 악순환만 심화시키기 때문이다. 멀리 볼 것도 없이 현재 남북관계가 전형적으로 그 예를 보여준다.

질병을 예로 들자면, 그 치료를 위해선 응당 원인 진단에 따른 알맞은 처방이 따라야 하는 법이다.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위기 고조는 한미일 주도 과잉억제가 원인이 된 면이 없지 않다. 북한이라는 한 국가를 억제하기 위한 한미일의 사실상 동맹에 기초한 군사적인 기제는 이미 기준 초과라는 말이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은 최근 글로벌파이어파워(GFP)에 따르면 세계 군사력 5위로 올라가면서 꾸준히 상승하는 군사력 수준을 보여주는 반면, 북한은 36위에 그쳤다. 일본 또한 군사비를 매년 증강하며 첨단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가지고 있지 않냐라는 주장에는, 그렇다면 이제까지 미국이 한국에 했던 확장 억제 약속과 전략 자산 전개는 모두 허상이라고 생각하는가라고 반문하고 싶다.

이러한 과잉 억제는 마치 관성처럼 굳어져 역내 위기 상황을 다룰 만병통치약으로 자리 잡은 듯한데, 이는 문제 상황에 대한 잘못된 처방이다. 억제를 강화함으로써 역내 안정을 도모하자는 것은, 과잉 억제가 부른 위기를 억제 강화로 해결하자는 자기모순적인 주장을 도돌이표처럼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도돌이표를 마침표로 바꾸고, 어느 국가라도 나서서 대화 재개와 평화의 의지를 표명해 하루빨리 신뢰 구축과 군비 경쟁 완화의 선순환의 물꼬를 트는 것이 중요한 때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