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강이라던 일본 축구 왜 이렇게 됐나

이준목 2024. 2. 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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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목 기자]

아시안컵에서 '한일전'은 없다. 역대 최강으로까지 거론되던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모리야스 재팬'이 8강 탈락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맞이하며 쓸쓸하게 짐을 쌌다.

2월 3일 카타르 알라이얀의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일본은 중동의 강호 이란에게 1-2로 역전패를 당했다.

일본은 전반 28분 모리타 히데마사가 선제골을 뽑아내며 기선을 제압했으나, 후반 10분 모하마드 모헤비에게 동점골을 허용했다. 이후 이란의 파상공세에 고전을 면치 못하며 끌려가던 일본은, 연장전의 기운이 짙어가던 후반 추가 시간 문전 혼전 상황에서 수비수 이타쿠라 코가 페널티박스에서 공을 걷어내려다가 호세인 카나니의 다리를 거는 치명적인 파울을 저지르며 페널티킥을 내주고 말았다.

키커로 나선 알리레자 자한바흐시가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일본의 골문을 열어젖히며 이란이 극적인 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4강에 오른 이란은 8일 홈팀 카타르와 결승진출을 놓고 격돌하게 됐다.

일본의 탈락은 이번 대회 최대의 이변으로 꼽힌다. 2011년 대회 이후 13년 만의 정상탈환을 노렸던 일본은, 아시안컵 역대 최다우승국(4회)이자,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도 아시아 최고인 17위로 이번 대회 참가국 중 가장 높다. 최종엔트리에 유럽파의 숫자만 20명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화려하고 두터운 선수층을 자랑했다.

모리야스 재팬은 불과 1년여 전 카타르월드컵에서는 한국과 함께 아시아를 대표하여 16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이뤄냈다. 월드컵과 평가전 등 각종 A매치에서 독일-스페인-터키 등 세계적인 강호들을 잇달아 격파했고, 2023년에는 A매치 8연승을 달리는 동안 34골을 몰아치는 가공한 화력으로 세계축구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쿠보 타케후사(레알 소시에다드), 미토마 카오루(브라이턴), 엔도 와타루(리버풀), 토미야스 타케히로(아스날) 등 호화멤버로 구성된 일본 대표팀을 두고 '역대 최강의 멤버'라는 평가까지 나왔을 정도다. 많은 전문가들은 일본을 이번 아시안컵의 유력한 우승후보 0순위로 꼽았고 또다른 강호인 한국과 결승에서 만날 가능성이 유력하다고 예상했다.

그러나 정작 이번 아시안컵에서 일본축구는 예상과 달리 큰 힘을 쓰지못했다. 물론 8강에서 만난 이란 역시 또다른 우승후보로 꼽힐 만한 강팀이었다. 피파랭킹 21위로 아시아에서 일본 다음으로 높았고, 이날 경기 전까지 양팀의 상대전적은 6승 6무 6패로 팽팽한 호각세일 만큼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승부였다.

결국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일본이 이란전 한 경기 만이 아니라 대회 내내 우승후보라는 이름에 걸맞는 경기력을 좀처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1위가 유력하게 예상되었던 조별리그부터 이라크(3승)에 덜미를 잡히며 2승 1패로 조 2위에 그치면서 상황이 꼬이기 시작했다. 16강에서 바레인을 3-1로 여유있게 제압하며 상승세를 타는 듯했으나, 이란과의 8강전을 앞두고 주축 선수인 이토 준야가 성범죄 혐의에 연루되어 퇴출-번복-다시 퇴출 확정을 거듭하는 해프닝이 벌어지며 팀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이번 대회에서 드러난 일본의 최대 약점은 수비불안이었다. 일본은 이번 대회 8강전까지 5경기에서 12골을 터뜨렸지만 실점도 무려 8골이나 내주며 빛이 바랬다. 첫 경기인 베트남전(4-2)부터 리드를 허용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고, 3차전에서 최약체로 꼽힌 인도네시아(3-1)에게 실점을 허용하는 등, 이번 대회에서 단 한 경기도 클린시트를 기록하지 못했다.

특히 수비불안의 원흉으로 꼽힌 것은 골키퍼 스즈키 자이온이었다. 2002년생으로 가나인 부친과 일본인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선수인 스즈키는, 연령대별 대표팀을 두루 거쳐 2023년부터 카타르월드컵 주전이었던 곤다 슈이치의 뒤를 이어 일본 A팀의 주전 골키퍼로 발돋움했다.

하지만 아직 21세에 불과한 스즈키에게 갑작스럽게 주어진 국가대표팀 주전 골키퍼의 무게는 너무 무거웠다. 이번 아시안컵은 스즈키에게 성인대표팀 주전으로 나선 생애 첫 메이저대회였고, 이전까지 A매치 출장경험은 단 3경기에 불과했다. 모리야스 감독은 스즈키의 잠재력을 믿고 8강전까지 전 경기에 수문장을 계속 맡겼으나, 평가전에서의 클린시트 행진은 간 곳 없이 매 경기 불안한 볼처리와 실수 퍼레이드를 남발하며 실점 자판기로 전락했다.

이번 대회에서 일본이 허용한 8실점의 대부분이 스즈키의 실수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뼈아픈 결과였다. 이란전에서도 마지막 결승 PK를 내준 것은 수비수 이타쿠라였지만, 그 이전에 동점골 상황에서 스즈키의 어설픈 골킥이 이란의 역습으로 이어지며 실점을 내준 것 분위기가 이란 쪽으로 넘어간 계기가 됐다. 일부 축구팬들은 일본의 유명 만화 제목을 패러디한 '스즈키의 문단속'이라고 조롱하며 비꼬았다.

사실 여기에는 스즈키보다 모리야스 감독의 실책이 더 크다. 일본 대표팀은 스즈키가 계속해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데도 그를 대체할 만한 카드가 마땅치 않았다. 이번 아시안컵 최종엔트리에 발탁된 골키퍼 3인방의 대회 직전 A매치 경력을 모두 합쳐도 4경기에 불과했다. 스즈키를 제외하면 골키퍼 중 최고참인 마에카와 다이야(1994년생)가 1경기, 노자와 타이스 브랜드는 아예 A매치 데뷔조차 하지 못한 선수였다.

현대축구에서 골키퍼의 중요성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일본에도 곤다 슈이치, 다니엘 슈미트, 나카무라 고스케, 경험이 풍부한 골키퍼들이 있었고 심지어 유럽에서도 활동하는 선수도 있을 만큼 선수층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성급한 세대교체를 이유로 메이저대회에서 검증되지 않은 실험적인 기용을 밀어붙인 모리야스 감독의 도박은 결국 대회 내내 팀의 발목을 잡는 아킬레스건이 되고 말았다.

일본축구의 전통적인 약점이기도 한 피지컬과 강약약강의 징크스가 이번 아시안컵에서 반복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일본은 화려한 기술축구가 트레이드 마크였지만 전력차를 떠나 전통적으로 강한 몸싸움과 압박에 능한 끈적끈적한 축구를 펼치는 팀에게는 고전하곤 했다. 과거의 한국축구가 일본을 잡는 필승공식이기도 했으며, 이번 대회에서 일본을 격침시킨 이라크와 이란 역시 비슷했다.

모리야스 감독은 카타르월드컵에서도 본선에서는 유럽 강팀들을 상대로 선전했으나 오히려 아시아 최종예선에서는 초반 한 수 아래로 꼽힌 팀들에게 덜미를 잡히는 등 고전한 바 있다. 일본대표팀에서 5년 넘게 장기집권하고 있는 모리야스 감독은 부임 이후 이번이 두 번째 아시안컵 도전이었지만, 오히려 준우승을 거둔 지난 2019년 대회보다 더 강해진 전력에도 불구하고 결과와 내용이 모두 퇴행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결국 일본축구는 이번 대회를 통하여 아시안컵과 관련된 여러 가지 굴욕적인 역사를 새로 쓰게 됐다. 일본축구는 아시안컵 본선에 처음 출전한 1988년 대회부터 지난 대회 2019년까지 31년간 단 3패만 당했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만 최초로 단일 대회 2패, 36년 만의 조별리그 패배, 42년 만의 A매치 이라크전 패배, 17년 만의 단일 대회 역대 최다실점(8실점) 경신 등의 온갖 불명예 기록을 한꺼번에 갈아치웠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우승후보로 꼽혔고 조별리그에서 졸전을 펼치며 비판받았던 라이벌 한국축구대표팀이 토너먼트에 들어서면서 엄청난 뒷심을 선보이며 재평가를 받고 있는 것과도 비교된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2위에 그치며 한동안 '의도적으로 일본을 피하려고 한 것'이라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한국은 토너먼트에서 강호 사우디와 호주에게 내내 끌려가다가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넣는 저력을 발휘했고 승부차기와 2연속 연장전을 치르는 고비를 극복해내며 기어코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외신들와 축구팬들도 한국의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에 이구동성으로 극찬을 보내고 있다. 한국이 설사 16강에서 일본을 만났더라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실력으로 증명했다.

일본이 8강에서 탈락하며 결승에서 기대했던 한일전은 무산됐다. 내심 결승전 빅매치를 기대했던 팬들에게는 조금 아쉬운 결과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승을 향한 한국의 도전은 여전히 계속된다. 한편으로 우승후보 일본의 탈락은 그만큼 아시아 축구의 상향평준화와 함께, 아시안컵 우승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며 클린스만호에게도 좋은 교훈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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