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에서 영양제 사 먹은 뒤 부작용 생기면 누구 책임?

이슬비 기자 2024. 2. 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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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간 건강기능식품 거래, 국민 건강 해칠 것”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엔커버 커피맛(경장영양제 200mL) 2만원'

지난 1일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전문의약품 판매 글이 올라와 논란이 일었다. 엔커버는 약국에서조차 구입하기 어려운 의약품으로, 식사가 어려운 암·파킨슨병 환자에게 처방되는 약이다.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수급이 어려워 재고가 있는 약국이 얼마 없는 상품인데, 판매자는 24개입 박스가 총 6개 있다고 밝혔다.

이 글이 올라온 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국무조정실 규제심판부 권고에 따라 건강기능식품 개인 간 거래를 허용할 예정이라고 밝힌 지 딱 16일째다. 아직 시행이 안 된 것은 물론이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마저 나오지 않았다. 허용 예고만으로 '건강기능식품과 헷갈릴 수 있는 전문의약품 등도 유통될 것'이라는 일선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것. 전문의약품 유통 외에도 이번 정책이 시장을 교란하는 것은 물론, 국민의 건강권까지 해칠 것으로 보고 우려하는 사람이 매우 많다. 건강기능식품 제조사와 유통사 관계자, 대한약사회, 건강기능식품협회 등 여러 관계자에게 이번 정책에 관해 물어보자 모두 한목소리로 '잘못된 결정'이라고 답했다. 식약처가 정책 추진 철회도 고려해 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금도 사각지대 있는데… 업계 "개인 간 거래 허용하면 더 커질 것"
현재 우리나라에서 건강기능식품은 판매업 신고를 한 영업자만 판매할 수 있다. 무료나눔도 마찬가지다.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에 따라 판매업 신고 없이 거래하는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이런 강한 처벌에도 이미 건강기능식품 유통 시장은 교란 문제를 안고 있다. 건강기능식품 유통업 관계자 A씨는 "규제 심판부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개인이 '소량'씩 거래만 한다면 문제 될 일은 없다"면서도 "금지하고 있는 지금도 홈쇼핑에서 건강기능식품을 할인할 때 여러 계정으로 한 사람이 대량 구입해 되파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개인 간 거래를 허용하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했다. 건강기능식품 제조업 관계자 B씨도 "제도 밖에선 유통 질서가 더 어지러워져 소비자 피해가 커질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실제로 현재도 법의 테두리 밖에서 세금을 내거나 당국의 관리를 받지 않고 건강기능식품을 판매하는 전문 판매원들을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2021년 5월부터 2022년 4월까지 1년간 당근마켓 등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거래불가품목이 포함된 판매 글을 모니터링했더니, 건강기능식품이 92.5%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동시에 이상사례 보고도 증가하고 있다. 식약처가 발표한 건강기능식품 이상사례 보고 현황을 보면 2017년 연간 874건에서 2022년 1117건으로 늘었다. 지난해에는 상반기에만 773건이 확인됐는데, 사용한 제품을 구입한 곳으로 통신판매와 개인 간 거래가 포함됐을 '기타'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한약사회 조양연 부회장은 "제도 안에서 금지하고 있는 지금도 개인 간 판매로 위장한 전문판매원들을 감독할 충분한 인력이 없다"며 "개인간 판매 허용으로 사각지대를 만들면 수십만건 이상 거래가 생길텐데, 하나씩 들여다보며 관리·감독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고 했다.

◇책임 소재 불분명… 국민 건강권 해치는 제도 될 것
건강기능식품 유통 시장의 교란은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국민에게 더 큰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업계에서 꼽는 문제점을 정리해 보면 ▲건강기능식품 안정성·기능성 담보 불가 ▲마약 등 불법 유통 채널로 악용 ▲허위·과장 광고 등 잘못된 정보 전달 ▲소비자와 기업 간 갈등 확대 등이 있다. 먼저 품질 보증이 안 되는 상태에서 유통될 가능성이 크다. 조 부회장은 "건강기능식품은 캡슐 등 제형이 일반 식품과 다르고, 기능성 성분도 온도나 습도에 민감할 수 있다"며 "등록된 판매처가 아닌 집에서 보관한 건강기능식품이 유통되는 것이다 보니 보관 과정에서 품질 저하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냉장 보관이 필요한 일부 프로바이오틱스는 실온에 보관했다가 기능성이 떨어질 수 있고, 오메가3는 잘못 보관해 산패되면 오히려 염증이나 암 발병의 원인까지 될 수 있다. A씨는 "품질에 이상이 생기는 것은 물론, 처음부터 기능성 함량이 적은 짝퉁 제품, 유통기한이 도래한 걸 재포장한 제품 등이 유통될 수도 있다"며 "모두 고스란히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더 큰 문제는 건강기능성식품과 비슷한 모양새로 마약, 의약품 등 개인간 유통이 불가한 제품들의 유통 채널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 부회장은 "마약을 넣어서 위장해 유통시킬 수도 있고, 의약품이나 허용되지 않은 원료가 포함된 해외직구 제품이 혼입된 것을 포장만 바꿔서 팔수도 있다"며 "개인간 거래는 치고 빠지는 식이라 추적이 불가하다"고 했다. 여러 개의 약을 복용하고 있는 사람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할 수도 없다. 건강기능식품협회 관계자는 "현 업체들은 과장 광고를 할 수 없도록 식약처가 감시·관리체제를 운영하고 있다"며 "아무래도 개인간 거래가 허용되면 거짓·과장광고로 소비자가 잘못된 정보를 얻게될까 우려된다"고 했다. 조 부회장은 "건강기능식품은 '기능성'이 있는 식품이라 주의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홍국쌀은 모나콜린이라는 성분이 콜레스테롤을 내려주는데, 병원에서 콜레스테롤 높을 때 처방하는 합성효소 억제제와 작용 기전이 같아 해당 약을 먹는 사람은 섭취 함량을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이어 "개인간 거래로는 이런 안전망이 있을 수 없다"고 했다. 현재 건강기능식품 판매점 종사자나 대표는 위생교육을 일년에 8시간 정도 받아, 기초적인 소양을 함양하도록 하고 있다. 건강기능식품 업체 관계자 C씨는 "문제가 생기면 판매자가 분명하지 않으니, 소비자와 제조사 사이 해결하기 어려운 갈등도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개인 간 거래로는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할 방법이 없다. A씨는 "식약처에서 식품이력추적관리를 하는 이유가 어디에서 어떻게 문제가 생겼는지 확인하려고 하는 건데, 개인 간 거래로 판매자가 불분명해지면 어디서 문제가 생긴 건지 특정할 수 없어 이력을 추적하는 의미가 없어진다"고 했다. 국민의 건강권에 관한 문제이다 보니, 소비자도 개인 간 거래를 반대했었다. 지난해 8월 국무조정실에서 '건강기능식품 개인 간 재판매 규제개선' 온라인 토론을 진행했을 때, 국민의 찬반 의견을 종합해 봤더니 반대 의견이 무려 전체의 94.6%를 차지했다. 한 네티즌은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는 불법 제품들로 인해 피해가 많이 발생할 듯하다"며 "국민의 건강문제는 신중하게 결정해야지 피해가 발생한 후에는 돌이킬 수 없다"고 했다.

사진=연합뉴스

◇올해 안에 1년 시범사업 실시 예정
그렇다면 도대체 왜 국무조정실 규제심판부는 이런 결정을 한 걸까? 규제심판부는 법령에서 말하는 '영업자'를 대량 거래가 아닌 소규모 개인 재판매까지 포함해 말하는 것은 법적 근거가 불명확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근거로 미국, 일본, EU 등 해외 주요국 모두 개인 간 재판매를 금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을 내세웠다. 그러면서 유통 질서를 위해 거래 횟수, 금액 등을 제한하는 등 합리적인 대안을 1분기 안에 식약처에서 마련한 뒤, 1년간 시범사업을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업계에서는 규제심판부가 우리나라 건강기능식품 업계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봤다. 취재한 업계 관계자 모두 "우리나라와 외국 건강기능식품 시장은 체계가 다르다"고 했다. 조 부회장은 "다른 나라는 우리나라보다 의료 보험 등이 비싸고 보건의료 제도를 누리기 어려워, 건강기능식품을 영양·보충제로 취급한다"며 "더 의료 서비스를 누리기 쉬운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진행하던 방향대로 건강기능식품도 맞춤형으로 소분해 제공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식약처는 건강기능식품을 먹을 때 전문가 상담을 통해 먹기 편하게 소분하는 제도를 법령에 개정했고, 2025년 1월 시행하기로 했다. 질병이 있거나 복용하는 약물이 있는 사람의 안전관리를 위한 것으로, 이번 건강기능식품 개인간 거래를 지향하는 규제 완화와는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이다. 한편, 규제심판부 위원 5명은 모두 법·규제 부문 전문가로, 보건·의료·안전 관련 전문가는 포함되지 않았다.

반발이 심해도 건강기능식품 소규모 개인 간 거래 시범사업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식약처 관계자는 "이번 사업을 반대하던 것은 초반 입장이었고, 지금은 구체적으로 여러 의견을 모아 방안을 설정하고 있다"며 "바뀐 사항은 없고, 1분기 안에 가이드라인을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 중고 거래 플랫폼 업계 관계자도 "관계 부처와 국무조정실에서 정해진 방향에 따라, 이용자들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제반 사항들을 준비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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