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너무 많은 조민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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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것으로 유명하다(Famous for being famous)'는 유명한 말이 있다.
미국 저널리즘에서 통용되는 문구인데 재능이나 성취, 사회적 공헌 없이 유명해진 사람, 왜 유명한지 이유를 모르지만 어쨌거나 유명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조씨를 이렇게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인사로 만드는 데 이른바 레거시 언론의 책임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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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것으로 유명하다(Famous for being famous)’는 유명한 말이 있다. 미국 저널리즘에서 통용되는 문구인데 재능이나 성취, 사회적 공헌 없이 유명해진 사람, 왜 유명한지 이유를 모르지만 어쨌거나 유명한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소 비판적인 표현이다.
미국에서 유명한 것으로 가장 유명한 가족은 ‘카다시안 패밀리’다. 모델 겸 사업가 킴 카다시안과 어머니, 자매 등이다. 킴의 아버지 로버트 카다시안이 세기의 재판으로 불린 ‘O J 심슨 사건’을 변호하면서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카다시안 가족 구성원 전체의 핵폭발 같은 유명세의 기원은 모호하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연쇄작용으로 이들은 유명해졌고 성생활, 성형수술 등 각종 기행을 노출하며 그 유명세를 폭발시켰다. 이들의 일상을 다룬 리얼리티 TV쇼 ‘4차원 가족 카다시안 패밀리 따라잡기’는 2007년부터 2021년까지 무려 14년간 방영됐다.
미국 언론에 이들의 유명세는 미스터리였다. 언론인 바버라 월터스는 생전 카다시안 가족과의 인터뷰에서 “당신들은 ‘유명하기 때문에 유명하다’고 자주 묘사된다. 당신은 실제로 연기도 하지 않고, 노래도 하지 않고, 춤도 추지 않는다. 미안하지만 당신들은 아무런 재능이 없다”고 했다. 월터스의 지적이 오래 사무쳤는지 카다시안 가족은 10여년 뒤 자신들의 리얼리티쇼에서 이렇게 반박한다. “우리는 노래하거나 춤을 출 필요가 없다. 우리는 그냥 우리의 삶을 살면 되고, 그래서 성공했다.” “제프 베이조스(아마존 창업자)한테도 ‘당신 춤을 출 수 있냐’ ‘노래할 수 있냐’ 따질 것이냐.” 이들에게는 재능 없이 유명해지는 재능, 남들이 갖지 못한 희귀한 재능이 있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조민씨는 지난달 31일 소셜미디어와 유튜브를 통해 자신의 약혼 사실을 알렸다. 조씨는 약혼자에 대해 “동갑내기이고 정치에 관련 없고 공인도 아니다”며 “피해가 안 가도록 사생활 보호를 해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고 했다. 조 전 장관도 이 사실을 직접 알리며 약혼을 공식화했다. 조씨는 은행 계좌로 후원금이 쏟아지자 “여러 불필요한 논란이 생길 수 있으니 감사하오나 후원금은 입금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네이버 채널마다 조씨가 약혼반지를 끼고 환하게 웃는 사진이 대문짝만하게 걸려 기사를 외면하려야 외면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조씨 역시 자신의 약혼자와 마찬가지로 정치에 관련 없고 공인도 아니다. 책을 한 권 냈지만 판매량에 걸맞은 문필가라고 보기는 어렵다. 노래도 한 곡 냈지만 직업적 가수로 보기도 어렵다. 과문한 탓인지 그가 존중받을 만한 사회적 성취를 거뒀다는 뉴스도 본 적이 없다. 미안한 말이지만 그는 현재 입시비리로 법원 선고를 앞둔 피고인이다. 하지만 그의 약혼 발표는 국민일보 사회부 기자들이 온종일 매달려서 취재하고 쓴 여러 건의 기사보다 더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런 거 좀 쓰지 마라” “기삿거리가 그렇게 궁핍하냐”는 댓글도 있었지만 기자들은 그런 기사를 열심히 썼고 독자들은 열심히 읽었다.
일반 시민이 뉴스에 쏟는 관심에도 ‘총량’이라는 것이 있을 것이다. 한국 사회에는 조씨 약혼보다 더 중요한 일이 훨씬 더 많다. 조씨 약혼 소식과 축의금 뉴스가 과잉 조명을 받는 동안 다른 중요한 뉴스는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것은 아닐까. 조씨를 이렇게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인사로 만드는 데 이른바 레거시 언론의 책임은 없을까. 이 칼럼도 ‘조씨 이야기를 그만 쓰자’면서 결국 조씨 이야기를 되풀이 쓴 셈이니 영 뒷맛이 개운치 않다.
임성수 사회부 차장 joyls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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