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교육부와 대학, 준비돼 있는가
한국 대학들 서구같은 자율도
아시아 다른 대학만큼 자생력도 못 갖춘 무기력 상태
정부가 일방적으로 대하는데 외국이 한국 대학 존중하겠나
우리나라에서 교육정책에 가장 오래 관여한 이주호 장관은 교육부 밖에 있을 때는 늘 교육부 폐지를 주장했다. 한나라당 의원이던 2007년, 바른사회운동연합 교육개혁추진위 위원장 시절이던 2017년, 장관 후보자 기간이던 2022년에도 교육부의 과잉규제 문제를 해소하려면 교육부를 발전적으로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기에 취임 후 대학 관련 규제는 과감히 줄이고 대학에 자율권을 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런데 이번 정부 출범 1년2개월 만에 나온 교육정책은 이전 정부에서 시작된 대학혁신지원사업을 확장하는 방향이다. 급격한 교육정책은 혼란만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와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일관되게 나아가야 한다는 현실적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이었음을 의심치 않는다.
교육부 폐지만이 답은 아닐 것이다. 교육부는 미국 영국에도 있다. 일본의 문부성은 그 역사가 백년이 넘는다. 그러나 미국이나 영국은 교육 관련 정책과 운영은 각 지역 교육청에서 담당하고 업무도 초·중등교육에 집중한다. 영국의 옥스퍼드나 케임브리지대학은 정부의 공금을 받는다는 의미에서는 공립대학이지만 완전한 자치권을 가진다. 미국에서는 주립대보다 사립대의 위상이 높고 대학은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고등교육기관으로 존재한다. 미국의 교육부가 대학을 위해서 하는 주요 업무는 학자금대출 업무와 투명한 지표 산출이고 대학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는다. 서구 전통에서 고등교육이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는 학문적 자유이기 때문이다.
반면 유교문화권인 아시아에서는 국가가 인재를 선발하는 전통이 있었기에 중국, 일본, 싱가포르의 대학들은 국가의 관리와 지원을 받는다. 서구 학자들은 아시아 대학들이 국가 지원을 받으며 완전한 학문적 자유를 누릴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진다. 한국 대학교수들이 연구재단으로부터 받은 연구비도 정부지원금이다 보니 미국 학자들 시각으로 보면 한국도 진정한 학문적 자유는 없는 나라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런데도 싱가포르국립대, 베이징대, 칭화대, 도쿄대 등이 국제 순위에서 선전해온 건 인재들이 여전히 이 대학들에 지원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예일대와 싱가포르국립대가 공동운영해온 예일-싱가포르국립대를 2021년 싱가포르 정부가 갑작스레 문을 닫겠다고 결정한 이유도 서구와 아시아대학 간 가치충돌 때문이었다. 국립대 재편이라는 표면적 이유와 달리 싱가포르 내 모든 대학 연구를 검열하고 관장하는 과정에서 예일대가 반발했기 때문에 두 대학이 결별하게 된 것이다. 미국 대학이 중국 정부로부터 금전적 지원을 받아온 것으로 의심되는 연구자들을 축출한 것도 중국으로의 기술유출 방지가 주된 목적이지만 정부 돈을 받는 연구자가 그 국가의 이익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서구적 사고방식 때문이다.
한국의 대학들은 어떤가. 미국 대학 수준의 글로벌 경쟁력을 목표로 하면서 아시아 유수 대학들보다 못한 지원을 받아왔다. 그러다 보니 서구 대학다운 자율도, 아시아 대표대학들만큼의 학풍도 구축하지 못하는 애매한 상태가 되었다. 어떤 혁신을 시도해도 어차피 안 될 거라는 무기력감과 창의적인 혁신을 주도할 자생력 상실에 시달리고 있는 게 한국대학들의 문제다. 급격한 인구 감소와 한류의 영향으로 외국인 학생들도 급증하고 있는 지금 대학이 변모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국 대학들만의 콘텐츠가 있어야 한다. 한국으로 여름학교를 오고 대학원을 지원하는 학생들이 미래에 자국의 지한파 리더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한류의 지속가능성을 염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역사가 보이고 냉전의 이데올로기가 이해되게 해야 한다. 한국을 통해 20세기 이후 세계의 정치·사회적 변화가 읽히도록 교육하는 한국학 프로그램도 탄탄해야 한다. 외국인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외국어강좌, 동시통역 되는 실시간 강의, 한국어 교육프로그램도 준비해야 한다. 고등교육으로 갈수록 과도한 규제가 역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통찰한다면 대학과의 소통에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 재정지원을 조건부로 하향식 혁신을 강제하는 방식은 장기적으로는 한국 대학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정부로부터 존중받지 못하는 한국대학이 나라 밖에서 대접받을 리 없다.
우미성 연세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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