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의 이코노믹스] 낙후지역 인프라 투자 늘리고, 세금·규제 확 뜯어고쳐야

2024. 2. 5.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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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경제 회복 위한 전략은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올해 정부는 민생경제 회복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민생경제는 국민의 생활 및 생계와 연관된 경제 활동으로 주거 안정과 교통 불편 완화, 물가 안정, 경기 회복 등 국민의 먹고 사는 문제가 모두 포함된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작년까지 물가 안정에 주력해 왔다. 2022년 7월 6.3%까지 치솟은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금리를 큰 폭으로 높인 결과 최근 물가상승률은 3% 초반대로 하락했으며 올해 하반기에는 목표치인 2%대로 낮아질 전망이다.

물가상승률은 낮아졌지만 생활 물가는 여전히 높다. 이른바 톱니 효과(ratchet effect)에 의해 한번 오른 물가가 내리지 않아 고물가가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시차를 두고 임금이 상승할 것을 우려해 한국은행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마찬가지로 금리 인하에 소극적이다. 인플레이션 재발을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 고금리에 수출 둔화, 내수 위축
한국, 경기 침체 저성장 함정에

중국 외 신규 수출선 확보 필요
건설업 진작으로 경기 일으켜야

국제 기준 맞춘 기업·조세 제도로
기업 투자 늘려 경제 회복 꾀해야

2% 초반 저성장 이어질 듯

민생경제에서 물가 안정보다 더 중요한 이슈는 경기 침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금리를 큰 폭으로 높였지만 경기는 여전히 좋은 상태다. 그러나 한국은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를 큰 폭으로 높여 경기 침체가 심화하고 있다. 금리를 2~3%포인트 큰 폭으로 높인 사례는 2005~2008년 이후 처음이며 그 부작용으로 작년 성장률은 1.4%로 2008년 세계금융위기나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제외하고는 가장 낮았다. 올해도 2% 초반대의 저성장이 지속할 것이 우려된다.

정근영 디자이너

경기 침체는 민생경제에 치명적이다.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청년층은 물론 서민들 생활이 어려워지고 중소 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도 심각한 타격을 준다. 살기 어려워지면서 경제 정책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 또한 낮아지게 된다. 이 때문에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 중에서 선택한다면 대부분의 정책 당국은 장기적으로는 물가 안정을 선호하지만 단기적으로는 경기 진작을 선택한다. 그만큼 경기 침체와 저성장은 민생경제를 어렵게 만들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가 경기 침체와 저성장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는 배경에는 고금리 외에도 다양한 요인이 있다. 먼저 중국의 성장률 둔화로 대중국 수출이 급감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총수출의 20% 내외를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의 성장률 둔화는 한국의 저성장과 경기 침체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중국의 추격으로 중국과 기술격차가 줄어들면서 조선과 철강, 전자 등 주력 산업의 경쟁력이 약화하는 것도 수출을 줄이는 요인이다. 이는 1992년 대중국 수교 이후 흑자를 유지해온 무역수지가 작년에 적자로 전환된 것을 봐도 잘 알 수 있다.

세계의 보호무역 추세도 수출에 부정적이다. 과거 1980년대에도 그랬듯이 고금리 이후 미국은 그동안 강달러로 늘어난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보호무역을 강화할 것이 우려된다. 여기에 미국 공화당 대통령 경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오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될 경우 보호무역 추세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이미 관세율을 대폭 높이겠다고 공약하고 있다.

고금리·고물가에 소비 어려워져

내수 위축도 경기 침체와 저성장의 원인이다. 생활 물가가 오르면서 실질 소득이 감소하고 고금리로 이자 부담이 늘어나면서 가처분소득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 구조적으로 소비가 늘어나기 어려운 상황에 있는 것이다. 기업 투자 역시 늘어나기가 쉽지 않다. 과도한 정부 규제는 물론 세계 경기 침체와 중동 사태로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저성장과 경기 침체가 지속할수록 민생경제의 고통은 더욱 커지게 된다. 경기 침체와 저성장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책 당국의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정근영 디자이너

먼저 내수 부양에 초점을 둬야 한다.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고 대중국 수출 감소를 대체할 새로운 수출선 확보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는 시간이 걸리는 과제다. 또한 세계 경기도 고물가와 고금리 지속이 전망되면서 회복이 지연될 가능성이 크다. 수출이 점차 늘어날 수는 있지만 급속히 증가하기는 쉽지 않다.

국제통화기금(IMF)도 내수 경기 회복을 제안하고 있다. 내수를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건설 경기를 진작시킬 필요가 있다. 건설업은 다른 많은 산업과 연관 효과가 커서 선진국에서도 내수 경기 부양을 위해 활용하고 있다. 또한 비숙련 노동자의 고용을 늘릴 수 있어 저소득층의 소득을 늘리는 데도 적합하다. 정부도 이를 인식하고 올해 상반기 중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투자를 앞당겨 실시할 것을 계획하고 있다. 최근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 경선 후보도 당선될 경우 미국의 낙후된 사회간접자본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려서 일자리를 만들고 내수 경기를 회복시킬 것을 공약하고 있다.

건설 부문 투자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지역의 교통과 유통, 교육인프라에 투자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불필요한 인프라 투자를 줄여서 재정 낭비를 없앨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직장이 있는 도심으로 출퇴근에 불편을 겪고 있는 변두리 저소득층 민생경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그 외에도 도심 주택의 수요를 분산시켜 주택 가격을 안정시킬 수 있고 늘어난 부의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다. 저소득층 지역의 낙후된 교통 인프라 확충에는 건설에 긴 시간이 걸리는 광역급행철도(GTX) 외에도 도심 진입에 어려움을 주는 터널과 교량 그리고 지상철 등 다양한 교통 인프라를 확충해 내수를 진작시키고 동시에 서민들의 고통을 낮춰줘야 한다.

높은 법인세·상속세 투자 위축시켜

글로벌 스탠다드에 반하는 기업 규제와 조세 제도를 개선해 기업의 국내 투자를 늘리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는 그동안 정치적 이유로 글로벌 스탠다드보다 강한 정부 규제나 높은 세율을 과세해 왔다. 노동 관련 제도에 있어서도 노사 간에 균등하지 않은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법과 제도들이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보다 높은 법인세나 양도소득세 그리고 상속세 제도도 투자를 위축시키는 요인이다.

정근영 디자이너

이러한 제도들은 고성장 시기에는 기업의 국내 투자를 큰 폭으로 줄이는 등의 부작용을 발생시키지 않았다. 고성장 시기에는 국내 투자 수익률이 높아 해외 투자가 많이 늘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성장 시기는 다르다. 자본자유화가 된 상황에서 저성장 국면에 들어갈 경우 그리고 글로벌 스탠다드보다 높은 과세 제도와 강한 정부 규제가 존재하는 경우 해외투자가 늘고 국내 투자가 줄어 경기 침체와 저성장이 심화하는 부작용이 커지게 된다.

한국 경제는 과거와 다른 환경에 놓여 있다. 저성장 국면으로 들어가면서 투자 수익률이 낮아지고 있다. 과거와 같이 정치적 이유로 이러한 제도가 개선되지 않을 경우 국내 투자가 큰 폭으로 감소하는 등 그 부작용은 커지게 된다. 이미 해외 부동산과 같은 실물과 주식 등 금융 투자가 늘어나면서 최근 시중금리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보다 Fed의 정책금리나 미국 채권금리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주가가 저평가되는 데서도 나타난다. 미국 등 외국의 주가는 상승하는데 한국 주가가 오르지 않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도 글로벌 스탠다드와 연관이 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반하는 각종 정부 규제나 제도 때문에 외국인 주식투자가 감소하면서 주가가 저평가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합리적 제도 선택이 부국 만드는 조건

물론 글로벌 스탠다드에 반하면서 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중국과 같이 자본시장 자유화를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보이지 않는 금’인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통화를 통해 익명의 불법적인 방법으로 해외 투자와 자본 유출이 늘어나게 된다. 이 때문에 자본이 유입되는 미국과 일본은 가상통화의 규제에 소극적이며 글로벌 스탠다드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면서도 불법적인 자본 유출을 우려하는 중국은 이를 강력히 규제하고 있다. 결국 가상통화는 또 다른 방법의 자본 자유화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자본 자유화를 한 국가가 저성장 국면에 들어갈 경우는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되는 정부 규제와 과세 등의 제도 개혁을 하는 것이 국내 투자 위축과 경기 침체를 막는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MIT 대학의 데런 애쓰모글루 교수는 자신의 책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합리적인 제도 선택이 부국을 만드는 조건이라고 했다. 한국 경제는 전환기에 놓여 있으며 새로운 제도가 필요하다. 중국의 추격으로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저성장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디지털화도 빠르게 진전되고 있으며 온라인 거래가 늘어나면서 기존의 유통 구조 또한 변화되고 있다. 전기 자동차의 등장으로 새로운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신산업이 중요시되고 있으며 청년 일자리가 줄어들고 경제적 불평등도 심화하고 있다. 변화에 적극 대응하지 않을 경우 고물가, 저성장의 뉴노멀 시대에 민생경제의 고통이 더욱 커질 것이 우려된다. 정책 당국은 저소득층 거주지역의 인프라 확충으로 내수 경기를 진작시키고, 글로벌 스탠다드에 부합되도록 각종 제도와 정부 규제를 개선해 국내 기업 투자를 늘려 민생경제를 살려야 한다. 지금은 올바른 정책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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