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렬의 공간과 공감] 아르메니아 염원의 장소, 예레반 캐스케이드
아르메니아는 페르시아·오스만제국·러시아 등 인접 강대국의 침략으로 영토가 축소되고 국민이 학살된 나라다. 현재도 이웃 튀르키예와 아제르바이잔이 국경을 봉쇄해 어려움을 겪는 약소국이다. 그러나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이며 최초의 창제 문자를 가진 뿌리 깊은 문화국가이기도 하다. 수도 예레반도 기원전 8세기에 건설된 고도지만 수 없는 외침과 지진의 피해로 20세기에 재정비된 고즈넉한 도시다.
격자형 가로망을 원형 순환로가 감싸는 인상적인 도시계획은 알렉산더 타마니안(1879~1936)이 담당했다. 러시아 출신이나 아르메니아에 귀화한 그는 정부청사와 오페라하우스 등을 설계해 국민 건축가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여러 단의 폭포가 설치되어 캐스케이드라 불리는 건물도 그의 계획안을 바탕으로 2009년 완공한 예레반의 중요한 공공건축이다.
도심 북쪽으로 뻗은 50m 폭의 공원 겸 보행로 마지막 언덕에 5단의 계단식 공원이자 건물을 세웠다. 경사지에 572단의 넓은 계단식 광장을 만들고 수직적인 정원도 꾸몄다. 그 아래 내부에는 5개 층의 테라스 공간을 만들고 에스컬레이터로 각층을 연결했다. 여기에 아르메니아계 미국 컬렉터가 소장품들과 1억2800만 달러를 기증해 복합 문화공간을 조성했다. 기부자의 이름 딴 카페스지안 아트센터는 10여 개의 갤러리와 2개의 영화관·회의장 등으로 구성되었다. 전면 공원과 계단 광장에도 페르난도 보테로, 린 체드윅 등 세계적 대가의 예술품들이 설치되어 예레반에서 가장 활발한 문화적 장소가 되고 있다.
공화국 40주년 기념탑이 서 있는 정상부에 오르면 시가지가 내려다보이고, 아르메니아 민족의 성산인 아라라트산의 위용이 멀리 선명하다. 노아의 방주가 정박했던 이 영산은 1920년 튀르키예의 영토가 되었다. 타마니안은 폭포와 정원과 아라라트 전망대 계획을 예레반에 선물했다. 1세기 후에 실현한 캐스케이드는 고토 회복이라는 국민적 염원의 장소로 승화됐다.
김봉렬 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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