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2035] 신혼부부의 돈 고민, 배부른 소리가 아니다
기사엔 실제 사례가 자주 들어간다. 공공기관에 재직하는, 경기 광주에 사는 각자의 사연은 주변 사람이나 인터넷에서 찾는다. 그러다 보니 네이버 카페, 인스타그램 등에 “연락 부탁드립니다” 댓글과 쪽지를 하루에도 수십 개씩 남긴다. 최근 쓴 기사 ‘결국 ‘있는 사람’이 결혼했다’도 같은 취재 과정을 거쳤다. 결혼준비 카페에 올라온 파혼 게시물 36건 중 16건(44.4%)이 돈 문제였는데 실질적으론 절반이 넘는다. 성격·생활 차이(33.3%), 집안 갈등(11.1%) 상당수도 돈과 관련 있다.
대부분 신혼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전셋집을 구하는데 더 보태줬다는 이유로 집에 자주 찾아오길 원하는 시어머니나 신부 측 부모가 집을 해주면서 생긴 예비 장인과 사위 간 갈등도 있다. 집이 없다고 모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니지만, 문제가 생긴 곳엔 돈과 집이 얽혀 있다.
배부른 소리로 치부하는 댓글이 여럿 달렸다. 먹고살 만한 시절인 건 사실이다. 그런데 ‘단칸방→투룸 빌라→20평대 아파트→30평대 아파트’ 식으로 집 평수를 늘려가겠다는 계획은 이제 상상에서나 실현될 이야기다. 보통의 소득 증가 속도로는 자산 가격 상승을 따라잡을 수 없다. 마강래 중앙대 교수는 “과거엔 점차 늘어나는 월급을 모아 집을 불려 나가는 게 가능했는데 이젠 아니다”며 “청년 세대가 결혼을 미루고 코인·주식을 찾는 현실엔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월급보다 집값이 더 많이 오르는 시대라는 의미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2년 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수도권 자가 가구의 연 소득 대비 주택가격비율(PIR)은 9.3배를 기록했다. 월급을 한 푼도 안 쓰고 전부 모으면 집을 장만하는 데 9.3년이 걸린다는 뜻이다. 서울 지역의 PIR은 15.2배다. 5년 전인 2017년엔 수도권 PIR이 6.7배였다. 부동산이라는 골대는 월급을 모으다 보면 점점 멀어진다.
정부도 집이 저출산의 원인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지난달 29일 아이를 낳으면 집 살 때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신생아 특례대출을 출시했다. 그런데 호응만큼이나 비판이 들린다. 부부 합산 소득은 1억3000만원을 넘지 않아야 하고, 주택가액 9억원, 전용면적 85㎡ 이하여야 한다는 각종 제한 때문이다. 엊그제부턴 신생아 특례대출 사례 수집에 들어갔다.
“합산 소득이 1억원 중반대인데 혼인신고를 안 하면 아내 소득으로만 잡히냐”, “지방에 살면서 셋째를 낳았는데 ‘국평’보다 조금 더 넓은 집은 왜 해당 안 되냐”, “대기업 맞벌이는 늘 소외된다” 등 사연이 쏟아진다. 결혼 한 건, 출생아 한 명이라도 늘리는 게 시급하다기엔 대출 조건이 참 많다. 이런 글이 보인다. “출산율이 0.7명대까지 떨어졌는데 아직도 이것저것 따지고 앉아 있느냐. 아무래도 정부는 배가 불렀다.”
정진호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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