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폐수사냐, 선동정치냐”… ‘이재명 피습’ 왜곡수사 진실은 [팩트체크]
부상 축소 보고·습격범 비공개 시끌
민주 음모론 편승 재수사 요구 과도
이재명(사진) 더불어민주당 대표 피습 사건을 둘러싼 '축소·왜곡 수사'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 대표가 피습 8일 만인 지난달 10일 퇴원해 당무에 복귀하고 가해자 김모(66)씨가 살인미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야당은 축소·왜곡 수사 의혹을 제기하며 재수사 요구를 이어가고 있다. 피습 직후 경찰이 사건 현장을 물로 청소하고, 관계기관의 현장 보고에 이 대표 부상이 '열상'(피부가 찢어지며 생긴 상처)으로 표현된 점 등을 거론하며 관련 공무원에 대한 수사 및 사건의 전면 재수사를 요청한 것이다.
국민일보는 사건 발생 한 달이 지나도록 해소되지 않은 주요 논란들과 사실관계를 짚어봤다. 그 결과 사상 초유의 제1야당 대표 피습 사건에 대한 민주당의 '전면 재수사' 주장엔 다소 과도한 측면이 있지만, 경찰과 관계기관의 개운치 않은 대응도 정치 쟁점화의 불씨를 키운 측면이 있었다.
이 대표 피습 사건에서 가장 논란으로 떠오른 것은 경찰의 '현장 물청소'다. 이 대표 피습부터 병원 호송까지 1시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서 경찰이 사건 현장을 정리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민주당의 '증거인멸' 주장에는 과도한 측면이 있다고 본다. 당시 현장에 56명의 경찰관과 다수의 취재진, 지지자 등 인파가 있었는데, 피의자가 현행범으로 체포된 상황에서 증거인멸 주장은 지나친 부분이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경찰이 피해자인 이 대표 측과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고 청소를 진행해 문제 소지를 스스로 만들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대사건임에도 '현장보존을 할 필요성이 없다'는 관점에서 성급한 판단을 내렸다는 것이다. 특별검사팀 수사 경력이 있는 법조인은 4일 "증거물을 모두 확보했다고 해도 경찰이 지나치게 현장을 빠르게 정리해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달 2일 오전 10시27분 부산 강서구 가덕도신공항 건설부지를 시찰하다 지지자로 위장해 접근한 김씨에게 흉기(길이 18㎝ 칼)로 왼쪽 목 부위를 찔렸다.
이 대표의 부산대병원 후송 15여분 뒤인 11시5분쯤 경찰관 4명은 150m 떨어진 인근 펜션에서 물걸레 양동이 등을 빌려와 바닥에 뿌려진 혈흔을 닦았다. 경찰은 앞서 혈흔이 남은 현장을 검은 우산으로 가린 채 뒀고, 별도의 폴리스라인을 설치하지 않았다.
이 대표가 피습 당시 입은 와이셔츠가 피습 사흘 뒤 확보된 점도 부실대응 논란을 키웠다. 경찰은 수소문 끝에 이 대표의 혈흔과 피습 흔적이 옷깃에 남은 셔츠가 경남 진주시 한 의료폐기물처리업체에 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 별도의 법원 압수수색영장까지 발부받아 지난달 5일 확보했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이런 점을 거론하며 “축소·은폐·증거 인멸의 의도가 있던 것은 아닐까 하는 합리적 의심은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경찰의 현장 물청소는 이례적 행위일까. ‘경찰청 범죄수사규칙’에는 현장보존(제168조) 규정이 있지만, 경찰관의 현장 청소에 대한 규정은 따로 없다. 현장보존 규정의 핵심은 ‘경찰관은 범죄가 실행된 지점뿐만 아니라 현장보존의 범위를 충분히 정해 수사자료를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함부로 출입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범행 당시의 상황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원칙도 있다.
경찰은 증거 확보를 마친 뒤 범죄피해자지원제도에 따라 피해자를 대신해 경찰관이 직접 실내 현장을 치우거나 전문청소업체에 의뢰해 현장을 정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입장이다. 강력범죄현장 특수청소 전문업체인 스위퍼스 길해용 대표는 “집안에서 살인 등 강력범죄가 벌어진 뒤에 경찰이 혈흔이나 물품 정리 등을 의뢰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이 대표 사건의 경우 현장 보존의 필요성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부산경찰청은 “현장에서 범인이 검거됐고, 관련 증거물을 모두 압수해 더 이상 현장을 보존할 필요가 없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이해식 민주당 의원이 ‘경찰이 사건 발생 후 즉각 현장을 정리한 사례’와 ‘정리한 시점’을 자료로 요구하자, 부산경찰청은 지난해 3~8월 발생한 강력사건 3건을 사례로 제출했다.
원룸 복도와 노상에서 식칼이나 손도끼로 피해자가 찔리거나 맞은 사건들이었는데, 당시 출동 경찰관은 흉기 및 현장 CCTV 등 증거를 확보하며 따로 현장보존 조치를 시행하지 않았다. ‘다중이 지나다니는 공개된 장소’라는 이유였다. 다만 이 사건들은 현장보존 조치를 하지 않은 사건일 뿐, 경찰이 직접 나서서 현장을 정리한 사례는 아니었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청소 사례까지 따로 자료로 관리하진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물청소’로 피습 증거가 훼손됐다는 주장은 무리가 있다고 봤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범인이 현장에서 검거됐고, 공개장소에서 증거가 확보된 사건”이라며 “유튜버 영상기록까지 존재하는데 경찰이 핏자국을 계속 두는 것도 이상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검장 출신 김경수 율촌 변호사는 “핵심은 피고인이 유죄 판결을 받을 수 있는 증거를 확보했냐는 것”이라며 “경찰이 증거물을 충분히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이 대표 와이셔츠 등 주요 증거를 빠르고 신속하게 확보하지 못한 것은 경찰이 논란 소지를 자초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부분이다. 이창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사건의 셔츠는 피습 과정과 출혈 수준 등을 객관적으로 나타내는 물증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이 대표 피습 직후 국무총리실 등 정부기관의 내부보고 문자가 피습 직후 외부에 곧바로 유출된 점도 논란을 키웠다. 현장 초동 보고가 언론 및 소셜미디어 등에 급속도로 퍼지며 ‘축소·왜곡 수사’ 의혹의 단초가 됐다.
민주당은 앞서 국무총리실 소속 대테러종합상황실이 이 대표 부상 정도를 축소한 문자메시지를 사건 직후 관계기관에 배포했다며 소속 공무원들을 허위공문서 작성·행사 및 직권남용 등 혐의로 서울경찰청에 고발했다. 이 문자메시지는 이 대표 부상을 ‘목 부위 1㎝ 열상’으로, 범행 도구는 ‘과도’로 표기했다. ‘경상 추정’ ‘출혈량 적은 상태’ 등 표현도 담았다. 민주당은 이 표현이 사건의 정도와 파장을 축소하려는 의도를 담았다고 주장한다.
특히 ‘1㎝ 열상’ 표현 등은 소방당국의 초동 상황보고와 비교되며 논란이 됐다. 소방이 작성한 ‘부산 강서구 대항동 구급발생 보고 1보’는 이 대표 부상을 ‘1㎝’가 아닌 ‘1.5㎝’로 측정했다. 부상 종류도 ‘열상’ 대신 ‘자상’으로 기재했다. 자상은 ‘날카로운 것 등에 찔린 상처’를 의미한다. 열상은 ‘피부가 찢어지면서 생긴 상처’로 넘어지거나 부딪혀 찢긴 경우에 주로 사용한다. 이 대표 수술·치료를 담당한 서울대병원의 최종 진단은 ‘좌측 목빗근 위로 길이 1.4㎝ 자상(상처 깊이 2~2.5㎝)’이었다. 범행 도구 역시 과도보다 길고 큰 18㎝ 길이의 칼(칼날 길이 13㎝)이었다.
대테러상황실은 현장에 있던 경찰이 경찰청에 보고한 내용을 자신들이 ‘이름’만 바꿔 내부에 전파했을 뿐 내용 수정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김혁수 대테러상황실 센터장은 지난달 25일 국회 행정안전위에 출석해 “경찰청에서 (현장 상황보고) 1보와 2보를 받았다”며 “경찰청에서 온 원문 그대로에 ‘대테러종합상황실’ 이것만 딱 집어넣고 주요 내부 간부들에게 배포하는 게 기본”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현장 초기 보고의 정확성엔 한계가 있다고 항변한다. 우철문 부산경찰청장은 국회 행안위에 출석해 “현장 경찰관들이 급박한 상황에서 과도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며 “사전적 의미까지 현장 경찰관이 판단해 보고하라고 하면 위축돼 어떻게 활동하겠나”라고 말했다. 이 대표 집도의인 민승기 서울대병원 이식혈관외과 교수는 브리핑에서 ‘1㎝ 열상’ 논란에 대해 “목 부위는 혈관 등 중요 기관이 몰려 있는 곳이라 상처 크기가 중요하지 않다”고 언급했다.
법조계에선 현장 경찰의 단순 착오로 인한 보고 오기(誤記)는 처벌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창현 교수는 “당시 상황이 급박했던 점을 고려하면 실제 내부보고가 다른 것은 부득이한 상황으로 보인다”며 “허위공문서 작성이나 직권남용 등의 혐의 적용은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내부 보고용 문자가 외부로 유출된 정황은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김혁수 대테러센터장은 국회 정무위에서 “상황보고를 외부에 공식 발송한 적은 없지만, 대테러센터에서 언론에 유출됐을 가능성은 있다”며 “2주간의 내부 조사를 벌였지만 유출자를 특정하진 못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를 습격한 김씨 신상에 대한 비공개 결정을 놓고도 여진이 거세다. 부산경찰청 신상정보위는 지난달 9일 김씨 실명과 나이·직업·당적 등을 비공개 결정했다. 그러나 이후 미국 뉴욕타임스가 김씨 실명을 보도하고, 서영교 민주당 의원이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씨 얼굴 사진을 직접 공개하면서 비공개 결정의 실질적 효력은 없어진 상태다.
경찰은 외부 위원들이 포함된 신상정보위의 판단을 뒤집기 어려웠다는 입장이다. 부산경찰청 신상정보위는 각 지방경찰청 경찰관 및 의사, 교수,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까지 총 7명으로 구성된다. 심의 위원 3분의 2 이상이 동의해야 신상정보를 공개할 수 있는데, 이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철문 청장은 야당 의원 질의에 “기존에 신상을 공개했던 사건들에 비해 수단의 잔인성이나 범죄의 중대성이 다소 미흡하지 않으냐는 식으로 위원들 간 의견이 모아졌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강력범죄자 신상정보 공개제도는 2010년 4월 신설됐다. ‘강호순 연쇄살인사건’이 계기였다. 현행법에 규정된 신상공개 요건은 ‘잔인한 범행이고 중대한 피해’ ‘피의자가 범인이라 볼 만한 충분한 증거’ ‘알권리, 재범 방지 및 범죄 예방 등 공공의 이익’ ‘피의자가 청소년이 아닐 것’ 등이다. 경찰은 2021년 신상정보공개심의위원회 개최 여부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가 지휘하도록 지침을 개정하는 등 객관성 확보에 나섰지만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신상정보 공개 기준을 더욱 구체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해 3월 ‘피의자 신상정보 공개 제도 관련 현안분석’ 보고서에서 “지나치게 추상적 또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사항들에 대해 법령상의 근거와 내용들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는 등 개선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윤해성 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신상공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구체적으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팩트체크팀=양민철 박재현 박성영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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