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운동권 심판론’ 앞세우는 이유 [신율의 정치 읽기]

2024. 2. 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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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선거 전략으로 ‘운동권 심판론’ 부상
정권 심판론에 대항하고 세대 포위론 현실화
정치 양극화 부추길 우려도…정치 테러 없애야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이 서울 중·성동갑 출마를 선언했다. 윤 전 의원은 “이번 선거의 정신은 ‘껍데기는 가라(다)’ ”라면서 “민주화 운동 경력이라는 완장을 차고, 특권의식과 반시장 반기업 교리로 경제와 부동산 시장을 난도질하는 것이 껍데기”라고 말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발언과도 일맥상통한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은 86 정치인을 “자기 손으로 땀 흘려 돈 벌어본 적 없고 오직 운동권 경력 하나로 수십 년간 기득권 차지하면서 정치 무대를 장악해온 사람들”이라고 규정했다.

운동권 심판론은 여당의 중요한 선거 전략이 될 수 있다. 실제 한동훈 위원장은 운동권 심판론을 이번 총선의 중심 구도로 만들려는 것 같다. 윤희숙 전 의원과 박민식 전 장관 그리고 원희룡 전 장관과 김경률 비대위원이 공천을 받는 데 성공한다면, 이들과 86 운동권 출신이 맞붙는 선거 구도가 형성되고 이를 통해 운동권 심판론이 불붙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동훈 위원장이라는 미래 권력의 등장은 정권 심판론이라는 ‘회고형 투표’를 미래 가치에 투표하는 ‘전망형 투표’로 바꿀 수 있다. 총선 성격을 변하게 만드는 데 실패한다면, 정권 심판론에 대항할 수 있는 존재가 필요하다. 그게 바로 운동권 심판론이다. 총선 성격을 전망형 투표로 변화시키는 데 성공한 이후로도 전망형 선거 구도를 공고하게 만들 수 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월 2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운동권 심판론은 또 다른 의미도 지닌다. 세대 포위론을 현실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행정안전부 주민등록 인구통계를 보면, 2023년 10월 기준 2030세대 유권자(18세와 19세 포함)는 전체 유권자의 31.1%를 차지한다. 4050세대 37.5% 그리고 60대 이상 세대는 31.4%를 차지한다. 2030세대 유권자는 이념 지향적 정치 행태를 보이기보다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정치에 접근한다. 이런 젊은 유권자에게 운동권 심판론은 부정적으로 비쳐지지 않을 확률이 있다. 60대 이상 유권자 역시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기에 운동권 심판론에 적극 호응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반론이 있을 수 있다. 60대 유권자는 86세대 맏형이다. 나이가 들면 보수적으로 변한다는 ‘연령 효과’보다는, 세대 고유의 사회화 경험이 사고를 지배하는 ‘세대 효과’가 더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물론 그럴 수 있지만, 여론조사는 이런 반론이 틀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1월 12일에 발표된 한국갤럽 여론조사(1월 9일부터 11일까지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전화 면접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60대 중 이번 총선은 정권에 대한 심판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40%인 반면, 정권 지원 계기여야 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48%였다. 또한 2023년 12월 30일과 31일 양일간 18세 이상 유권자 1018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TV조선과 조선일보가 케이스댓리서치에 의뢰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60대 응답자 중 86세대 퇴진론에 공감하는 비율은 68%, 공감하지 않는다고 답한 응답자는 30%에 그쳤다. 이는 60대도 운동권 심판론에 공감할 확률이 높음을 보여준다. 이는 운동권 심판론을 고리로 2030세대와 60대 이상 세대가 연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이 같은 연결이 성공하면,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을 보이는 4050세대를 이들 세대가 포위하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세대 포위 전략의 성공이다. 이렇듯 운동권 심판론은 정권 심판론에 대항하는 선거 구도도 만들고 동시에 세대 포위 전략을 구사할 수도 있게 하는,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일석이조’ 전략이다.

한편에서는 운동권 심판론이 정치 양극화를 부추길 위험성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 1월 29일 YTN라디오 ‘신율의 뉴스 정면승부’에 출연한 신평 변호사는, 정치 테러의 빈번한 발생이 정치적 양극화와 관련 깊다면서, “한국의 정치 양극화에는 그 근저에 운동권 세력의 존속을 둘러싼 공방이 있지 않나, 그리고 정치권에 대한 전방위적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그에 대한 반감이 작용하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한다)”이라고 주장했다.

정치 테러가 빈번히 발생한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다. 배현진 의원에 대한 테러가 정치 테러인지, 아니면 정신 질환을 앓는 학생에 의해 저질러진 것인지는 아직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정치인이 언제든 공격받을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은 출마자에게 공포를 주기에 충분하다.

정치 테러 해결 방법은 없는 것일까?

현행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2조 3항에는 ‘경비, 주요 인사(人士) 경호 및 대간첩·대테러 작전 수행’이라는 항목이 있다. 주요 인사에 국회의원은 포함돼 있지 않다. 경찰청 훈령상 ‘주요 인사’에는 대통령과 가족, 국회의장, 국무총리,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등과 대선 후보만이 포함돼 있다. 또한, 정당 대표가 신변 위협을 느낄 경우, 정당이 요청하면 신변 보호가 이뤄질 수 있지만 이때 역시 국회의원까지 확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국회의원을 주요 인사에 포함시키면, 지금과 같은 선거 국면에서는 ‘의도치 않은’ 불평등이 발생할 수도 있다. 현역 의원이 아닌 원외 후보 역시 신변 위험을 느낄 수 있는데, 이들까지 경찰이 보호해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국 사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주(州) 의원 10명 중 4명이 최근 3년간 협박이나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고 전해진다. 미국 역시 정치인이 불의의 테러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통계다. 2021년의 트럼프 지지자 의회 진입 사건이나, 2022년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 자택 테러 사건은 미국 정치인이 처한 불안한 상황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상황이 이렇자, 미국은 의원 보호를 위해 선거 자금과 관련한 제도를 개선했다. 의원이나 후보자가 자신과 직계가족을 지키기 위해 선거 자금으로 경호 인력을 충원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우리 역시 이런 미국 사례를 숙고할 만하다. 우리도 선거 기간, 선거 비용에 경호 인력 고용을 위한 항목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장기적으로는 정치 혐오를 줄이는 방향으로 정치를 바꿔야 하겠지만, 시간이 매우 오래 걸린다. 또한 정치 혐오를 없앤다 해도 정신 질환을 가진 이들의 테러까지 막을 수는 없다. 자체 경호 인력을 확충하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현재로서는 유일한 방책이다.

또 하나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

정치인이나 언론인에 대한 테러는 가중 처벌하도록 법을 바꾸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언론인에 대한 테러를 엄벌할 경우, 테러범은 상당한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될 테다. 당연히 지금보다 상황이 조금은 나아질 수 있다. 테러는 없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없앨 수 없는 것이 테러라면, 그 피해 규모를 줄이는 데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6호 (2024.02.07~2024.02.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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