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철새들의 왕국 금호강... '개발 바람'이 속상합니다

정수근 2024. 2. 4.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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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금호강 안심습지에서 달성습지까지 돌아보니

[정수근 기자]

 큰기러기들이 앉아 쉬고 있는 앞을 큰고니가 유영하며 지나간다. 이곳이 바로 안심습지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큰고니 50여 개체가 안심습지 인근에서 쉬며 놀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지난 1일 금호강 일대를 돌아봤다. 겨울이 다 가기 전에 금호강을 찾아온 겨울 철새들의 동정을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새봄이 찾아오면 이들은 모두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에 그 전에 이들의 도래 현황을 파악해볼 필요도 있었다.

겨울, 금호강을 돌아보다

금호강 대구 구간의 시작점인 안심습지부터 금호강이 낙동강과 만나는 합수부가 있는 달성군 죽곡리까지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돌아봤다. 금호강을 전체적으로 다 돌아보니 이 겨울 금호강은 겨울 철새들의 왕국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멸종위기종 큰고니와 큰기러기에서부터 물닭과 청둥오리, 홍머리오리, 청머리오리, 쇠오리, 비오리 같은 오리류들이 특히 많았다. 이들은 금호강 곳곳에 분산해서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그들 나름의 질서를 지키고 있는 듯했다.

그중에 단연 압권은 안심습지였다. 그곳은 멸종위기종 큰고니와 큰기러기들 그리고 민물가마우지들의 주무대였다. 이날 안심습지에서 확인한 큰고니는 60여 개체이고, 큰기러니기는 150여 개체, 민물가마우지는 100여 개체였다. 물론 그밖에도 물닭과 청둥오리, 비오리 등 오리류 등도 많았다.
  
 큰기러기 100여 개체가 안심습지로 내려오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안심습지 큰고니들의 유영.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아침 8시에 안심습지에 다다랐는데, 때마침 잠자리에서 막 돌아온 큰기러기 100여 마리가 일제히 안심습지로 내려오는 장관을 목격할 수 있었다. 특유의 울음소리를 내지르면서 마치 비행기가 활주로로 미끄러져 내려오는 듯 착륙하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 앞으로 고니들이 우아한 자태로 유영하며 지나갔다. 그것 또한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런데 새들의 우아한 자태를 감상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들이 눈에 띄었다. 안심습지 주변에선 인간들의 흔적들이 곳곳에서 목격되는데, 바로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다.

이런 생태계의 보고에 웬 쓰레기란 말인가. 대구의 의식 수준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어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또 하나, 거름더미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잠시 서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안심습지를 떠나 금호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갔다. 이번엔 팔현습지다. 팔현습지는 오리류들의 왕국이다. 청둥오리, 알락오리, 홍머리오리, 비오리, 쇠오리 등과 물닭들 그리고 민물가마우지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그 사이에 큰기러기와 큰고니들도 수 개체가 들어와 있다.
 
 팔현습지를 찾은 다양한 겨울 철새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팔현습지는 금호강 대구 구간 중 철새들이 가장 자유롭게 포진해 있는 곳이고, 그 모습을 가장 잘 조망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팔현습지의 가치는 더욱 크다. 그러나 팔현습지의 명물을 따로 있다. 그 주인공은 텃새다. 바로 팔현습지의 깃대종이자 터줏대감인 수리부엉이 부부다.
이날은 수놈 수리부엉이 '팔이'의 모습만 확인할 수 있었다. 암놈 '현이'는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팔이가 앉아 있는 곳이 특이했다. 주로 팔현습지 하식애 중앙의 나무 둥치 옆에 마치 뱀이 또아리를 뜬 것처럼 앉아 있는데, 이날은 하식애 바위 틈에서 자라 나온 특이한 나무의 가지에 앉아 잠을 청하고 있었다. 
 
 팔현습지의 터줏대감 수리부엉이가 하식애에서 자라나온 나뭇가지에 앉아있다. 그 앞에 까치 한 마리가 알짱거린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금호강 팔현습지 터줏대감 수리부엉이 '팔이'의 모습. 백수의 제왕다운 표정이다.
ⓒ 최병성
     
잠을 청하는 수리부엉이 수컷 '팔이' 앞에서 까치 한 마리가 알짱거린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딱 그 모습이다. 그 모습을 뒤로하고 주변을 살펴보니 곳곳에 수리부엉이에 당한 흔적들이다. 새털만 수북한 곳이 있는가 하면 물닭의 다리만 남은 곳도 있다. 이곳이야말로 바로 야생의 영역이란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수리부엉이의 영토 팔현습지를 나와서 공항교로 향했다. 이곳은 바로 위에 동촌보가 있고 그 아래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습지가 있다. 동촌보가 있는 그 상류와 하류의 풍경이 천양지차다. 상류는 동촌보로 인해 거대한 물그릇의 형태를 보이고 있고, 그 하류는 각종 버드나무들이 자라나 습지의 모습이다.
 
 동촌보 상류와 그 하류의 모습이 완전히 다르다. 철새들은 보 하류에만 빼곡히 내려와 쉬고 있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큰기러기들이 편대를 이루어 금호강 상공을 날아간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보로 막힌 강과 보가 없는 살아 흐르는 역동적인 강의 모습을 동시에 조망해볼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이곳이다. 이 일대도 역시 각종 오리류와 물닭, 민물가마우지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강에서 잘 볼 수 없는 새의 주검도 확인됐다. 맷도요가 강변에 죽어 있었다. 아마도 인근 산에서 물을 먹기 위해 강에 내려왔다가 변을 당한 것으로 보인다.

화담산 주변의 심각한 인위적 개입

맷도요의 주검에 간단히 묵념하고 더 하류로 내려갔다. 불로천 합수부를 지나 더 내려가면 '금호워터폴리스'라고 한참 택지개발공사를 벌이고 있는 곳이 나오고 그 너머가 금호강이다. 그리고 금호강 건너편은 화담산이다. 산과 강이 잇닿아 있어 생태적 온전성이 그대로 살아있는 곳이다.

야생동물들이 이 일대를 기반으로 살 수 있는 중요한 생태공간이다. 그런데 이런 입지적 중요성과 달리 이 일대는 지금 너무 심각하게 개발돼 있다. 금호워터폴리스란 거대한 택지개발사업이 진행 중이고 그 앞에 금호강 둔치는 오토캠핑장, 야구장, 축구장에 최근 한참 유행 중인 파크골프장까지 들어서 있다.
 
 가운데 보이는 금호워터폴리스 택지개발지구. 그 앞 강변 둔치와 건너편 강변 둔치가 모두 개발돼 있다. 야생의 영역들이거의 없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파크골프장은 강 건너 맞은편 둔치에도 대규모로 들어와 있다. 그러니까 강 양쪽 둔치에 모두 인간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는 것이다. 달랑 한 필지 200여 평 정도만 둔치로 남아있다. 야생의 영역으로 남아있어야 할 둔치가 개발된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건 화담산에 놓인 산책로다. 기존에 길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대구 북구청에서 강의 중턱에다 나무데크로 산책로를 만들어놨다.
입지상 각종 겨울 철새들이 찾아와 쉴 만한 곳이지만 새들의 흔적은 많지 않다. 비오리 20여 개체와 그 상류에서 본 큰고니 몇 마리가 전부다. 데크길 산책로가 없었더라면 이곳은 비오리가 아닌, 전 세계적으로 1000여 개체뿐이라는 멸종위기종 1급 호사비오리가 내려와 쉴 만한 곳으로 보였다.
 
 산과 강이 연결된 그 공간으로 인간의 길을 만들어놓았다. 생태 테러가 아닐 수 없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화담산 중턱에 둘러친 나무데크 산책로. 강과 산이 잇닿아 잇는 생태적 온전성이 살아있는 이런 곳에 꼭 산책로를 내어야 하는가.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입지적으로 생태적 온전성이 살아 있을 수밖에 없는 이 공간에 대체 무슨 짓들을 하고 있단 말인가. 이런 사업들도 환경영향평가란 것을 다 거쳤을 것이다. 환경부가 환경부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단 사실을 또 한번 확인하게 된다.

분명한 문제제기가 필요한 현장이다. 이번에는 무태교로 향한다. 이곳 또한 무태보가 들어서 있는 곳으로 무태보 상하류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무태보 상류는 거대한 호수와 같은 모습이고, 그 하류는 잘 발달된 습지의 형태다. 당연히 철새들은 그 하류에 빼곡히 앉아 있다. 강 가운데뿐 아니라 고무로 된 수중보 위에도 많은 개체가 앉아 쉬고 있다. 힘찬 물질을 마치고 뭍으로 나와 쉬어야 하는데 그 자리가 마땅치 않아서 수중보 위에 앉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체수도 다양하다. 홍머리오리, 청둥오리, 물닭, 민물가마우지 등이 사이좋게 공간을 함께 점하고 있다.
 
 무태보 아래 자그만한 자갈밭 공간에 빼곡히 앉아 쉬고 있는 철새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무태보 위에 빽곡히 앉아 쉬고 있는 오리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이날 오전엔 저 안심습지에서부터 신천과 만나는 합수부까지 둘러봤다. 금호강 대구 구간의 절반을 둘러본 셈이다. 오후에는 무태교에서부터 맨 아래 달성습지까지 둘러봤지만 그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생명의 강 금호강에 부는 개발 바람... 공존의 질서 회복해야

이 겨울 금호강은 겨울 철새들이 우점하는 그들의 왕국이었다. 새가 많이 찾아온다는 것은 금호강이 생태적으로 살아있다는 것으로 산업화 시절의 시궁창 금호강을 완전히 탈피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즉 지금의 금호강은 생태적 온전성으로 펄펄 살아 흐르는 생명의 강으로 돌아왔다는 의미다. 이렇게 금호강이 살아돌아왔건만, 대구시는 금호강에 다시 '삽질'을 예고하고 있다. '금호강 르네상스'란 이름으로 말이다.

환경부가 팔현습지에 이어 벌이는 대구시의 금호강 르네상스 사업은 공존의 원리가 아닌 '시민 이용 중심'이란 개발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을 뿐이다. 21세기의 화두는 공존이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이다.
 
 큰고니 금호강에 내려오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조화로운 공존의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개발 이외의 사업은 즉시 철회되어야 한다. 환경부의 팔현습지 도보교 사업이나 금호강 르네상스 사업은 꼭 해야 하는 사업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업들이 바로 공존의 질서를 헤치는 사업들인 것이다. 공존의 질서를 지켜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무분별한 탐욕의 사업들은 중단되거나 사라져야 한다.
생명평화아시아가 지난해 산에들에연구소에 의뢰해 1년 동안 조사한 금호강 조류조사에서 총 121종의 조류가 관찰된 결과가 나왔다. 엄청난 숫자다. 금호강에 이렇게 많은 새들이 살고 있다. 금호강의 참 주인은 바로 이들이 아닐까 싶다. 뿐만 아니라 14종에 이르는 법정보호종들과 무수한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다. 이들이 먼저 이곳에 자리잡고 살고 있었다. 이들은 사실 인간 개발을 피해 하천으로 쫓겨들어온 이들이다.
  
 큰고니 금호강 창공을 날다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금호강을 찾은 비오리
ⓒ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말하자면 금호강은, 하천은, 이들 야생동물들의 마지막 서식처로 그들의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이런 하천마저 인간 이용 중심으로 개발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이들 야생과의 공존을 길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강에 대한 개발 철회에서부터 시작된다. 따라서 팔현습지 보도교 사업이나 금호강 르네상스 사업은 지금이라도 철회되는 것이 옳다.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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