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만 듣는다"는 클래식 애호가, 애플이 나서면 맘 돌아설까
애플 뮤직 클래시컬 출시, 오랜 클래식 애호가가 본 스트리밍의 전망
까다로운 분류 작업, 음질의 문제 넘어 접근성 높여야 성공
지난달 24일 애플이 애플 뮤직 클래시컬 서비스를 한국에서도 시작했다. 지난해 초 북미, 유럽에서 시작했던 클래식 음악 특화 서비스다. 닷새 후인 29일에는 피아니스트 임윤찬(20)이 서울 명동에서 애플 클래식의 출시 행사에서 연주해 화제가 됐다. 애플 클래식은 기존의 애플 뮤직 이용자들이 추가 비용 없이 이용할 수 있다.
클래식 음악의 스트리밍 시장은 그동안 큰 힘을 내지 못했다. 여기에 애플이라는 강력한 사업자의 등장은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 까다로운 클래식 애호가들이 이번에는 스트리밍으로 돌아설 수 있을까?
2017년 처음으로 스트리밍을 포함한 디지털 매출이 CD 등의 물리 매체를 제친 후 5년 만에 차이가 4배로 벌어졌지만(국제음반산업협회 기준), 음악을 스트리밍으로 듣는 것이 당연한 이 시대의 유일한 예외가 클래식이었다. 애플이 굳이 클래식을 위한 별도의 앱을 만들었다는 것은, 이제 클래식 스트리밍 시장이 성숙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만약 이 시도가 성공한다면 음반 산업계는 또 한 번 전환점을 맞이할 것이다.
음반 산업에서 클래식은 독특한 존재감을 가진다. 물리 매체의 세계에 홀로 머물러, 진작에 사라졌어야 할 CD의 명줄을 잇는 링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장르에서 CD는 결국 한낱 전화기에 정복당했다. 1982년 CD가 처음 등장한 이후 30여년간 크기를 줄이고 음질은 높인(DCC, DAT, MD 등) 여러 디지털 매체가 CD에 도전했지만 모두 초라하게 사라져갔다. 이 철옹성을 무너뜨린 것은 더 뛰어난 음질이 아니었다. 어이없게도 훨씬 초라한 음질의 MP3였고, 남은 성벽마저 무너뜨린 것은 재생 매체가 아니라 휴대전화였다.
음질이 관건인 클래식 음악
초기 스트리밍 서비스는 이 MP3 기반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클래식 장르에서는 외면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등장한 무손실 압축 포맷인 FLAC은 CD의 WAV 포맷과 동일한 음질이면서도 용량은 작았기에 고음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와도 잘 맞았다. 이런 고음질을 이용한 스트리밍 서비스가 2014년 시작한 타이달(Tidal)이다. 타이달은 더 나아가 24비트 음원으로 빠르게 주목받았고 여전히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서비스되고 있지는 않은데도 우회적으로 가입한 음악애호가가 많다. 타이달의 음원은 고급 오디오에 연결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기에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꽤 화제가 됐다.
메이저 음반사 중심이었던 음반 시장의 지형도도 스트리밍 시대에 이르러 상당히 달라졌다. 디지털은 복잡한 경로를 거치지 않고 상업적으로 음원을 공개하기에 좋은 수단이 되었고, 풍부한 음원을 보유하고 있는 오케스트라 등의 단체는 자체 레이블을 만들기 시작했다. 런던심포니, 런던필하모닉, 로열콘세트르헤보우, 베를린 필하모닉 등의 오케스트라 레이블이 탄생한 배경이었다. 메이저 음반사가 아니었지만, 이 신성 레이블들은 지명도 높은 연주자들로 탄탄하게 카탈로그를 구성했다.
데이터베이스 만들기도 까다로워
이 점에서 애플 클래식은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보다 확실히 나은 결과를 제공한다. 이를테면 오페라를 검색했을 때 참여한 모든 연주자가 나타나고, 연주자들 이름을 클릭해 바로 해당 연주자가 참여한 앨범을 쉽게 검색할 수 있다. 이는 연주자 이름이 텍스트가 아닌 DB 기반으로 입력됐다는 뜻이다. 특히 트랙별로 참여 연주자를 구분해 놓은 점은 꽤 인상 깊다. 이에 더해 독점 음원을 풍부하게 갖추고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뉴욕 필하모닉의 자체 음원을 독점적으로 서비스하고 있으며, 로열콘세트르헤보우 등의 알려진 레이블 중에서도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음원을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아이폰이 오랫동안 고집하던 라이트닝 단자를 버리고 USB-C로 전환한 덕분에 HiFi 오디오와 연결성이 좋아진 것도 애플 클래식 앱에는 호재다.
애플에 앞서 시장에 등장한 클래식 전문 스트리밍으로 이다지오(Idagio) 또한 DB가 일목요연했다. 검색해 들어가면 해당 곡을 연주한 연주자들의 리스트는 물론 음반 개수도 정리되어 있어, 클래식을 제대로 알고 있는 애호가가 이다지오의 DB와 검색 인터페이스를 설계했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다지오는 여러 콩쿠르나 페스티벌의 실황 음원들을 독점적으로 서비스하고 있기도 하다.
효과적 전략 있어야
하지만 가장 큰 장벽은 기술이나 라이브러리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음반의 역사에서 시장을 지배한 매체는 MP3가 보여주었듯 가장 뛰어난 기술의 매체가 아니었다. 유튜브가 프리미엄 상품을 내놓은 후 유튜브 뮤직은 시장 지배자였던 멜론을 빠르게 제쳐버렸다. 이 과정에서 음질이나 깔끔한 검색 때문에 유튜브 뮤직을 선택한 사용자는 거의 없었다. 유튜브를 제약 없이 보기 위해 프리미엄을 선택했는데 유튜브 뮤직을 함께 쓸 수 있게 된 편리함 때문이었다. 음질, 기술, DB의 문제가 아니었다. 2,000년 전 유럽을 지배한 로마 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더 강력하고 더 발달한 제국이 아니었다. 그저 정착할 땅을 찾아 북서쪽에서 건너온 야만인이었을 뿐이다.
◇이일호=음악평론가. BMG(소니)클래식스와 유니버설 뮤직의 레이블 매니저를 거쳐 현재 음반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과 게오르그 솔티의 전집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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