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일곱, 어금니 하나를 잃고 얻은 깨달음

임태희 2024. 2. 4.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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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핑계 저 핑계로 치료 시기 한 해 두 해 미뤄... 회피하지 말았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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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희 기자]

아프던 어금니를 뽑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이었다.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흘렀다. 고작 나이 마흔일곱에 벌써 어금니 하나를 잃다니. 신체 일부를 상실한 마음이 얼마나 스산하고 서글픈 것인지 단박에 깨달아졌다. 앞으로 수술한 주변 사람을 위로할 땐 더욱 말을 가려서 섬세하게 안아 주어야겠다는 생각도 잠시 스쳤다.

몇 해 전 실수로 뼛조각을 씹고 아파서 치과에 간 것이 시작이었다. 그땐 이에 금이 살짝 갔으니 신경치료를 받고 크라운을 씌우는 게 좋겠다는 권유를 들었다. 하지만 나는 레진으로 금이 간 곳을 임시방편으로 덮어둔 상태에서 치과 치료받기를 중단했었다. 아이가 아직 어리다는 것이 첫 번째 이유였다. 여러 차례 치과에 방문해 신경치료를 받아야 할 텐데 그때마다 아이 맡길 곳이 여의칠 않을 듯했다. 또, 부담스러운 비용 역시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니 어쩌면 그런 것들은 단지 핑계에 불과했던 것 같다. 악명 높은 신경치료를 받을 일이 단순히 귀찮고 두려웠던 것이다.
  
 회피하지 말았어야 했다...
ⓒ Pixabay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나는 이 핑계 저 핑계를 들어 치료 시기를 한 해 두 해 미루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엔 요령이 생겼다. 아프지 않은 쪽으로만 씹는 것이 익숙해진 것이다. 통증도 사그라드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어영부영 치료를 받지 않은 채로 넘긴 것이 병을 키운 모양이다. 소리 없이 조금씩 금이 간 곳이 커지던 내 어금니는 결국 며칠 전 두 쪽으로 쩍 갈라지고 말았다.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어금니는 튼튼하지 않았다.

'안 아픈 지 한참 되었으니 한번 씹어 볼까?'
  
호기심에 오이를 한 입 아삭 씹은 그 순간, 영락없이 탈이 나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쉽게 어금니를 잃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면 진작에 치료를 받는 건데. 뒷북도 이런 뒷북이 없다. 이제 와서 후회막심이다.

가끔씩 올라오던 기분 나쁜 통증. 한쪽으로밖에 씹지 못하는 불편함. 그런 것들이 지겨워서 차라리 아픈 이를 뽑아버리면 시원하겠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막상 오늘 이를 뽑고 오니 시원하기는커녕 가슴이 휑하다. 아무리 고장이 나서 말썽이어도 내 몸의 일부이기는 했었나 보다. 상실감이 말도 못 하게 크다.

겁나게 살벌한 임플란트 후기들... 또다시 회피하고 싶은 맘 부추겨

앓던 이가 뽑혀 나갔으니 고민 끝 행복 시작이면 좋을 텐데 실상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우선 빠진 이가 있던 잇몸에 커다란 분화구 같은 구멍이 생겨 버렸다. 그 구멍에 뼈가 단단히 채워지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린다고 한다. 한동안 음식을 그쪽으로 씹지 않게 조심해야 하고 음식찌꺼기가 끼여 냄새가 날 수 있으니 잘 관리해 주어야 한다. 몸만 귀찮으면 좋을 텐데 비용을 생각하면 머리도 많이 아프다. 병원마다 임플란트 시술비가 천차만별이라 비교하다 보니 두통이 밀려왔다.

그 와중에 각종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오는 임플란트 후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다들 표현력이 어쩜 그리들 좋은지. 그 모골송연한 고생담을 읽다 보면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텨 볼까 하는 어리석은 생각이 스멀스멀 차오른다. 맙소사! 그동안 회피로 일관해오다 살릴 수 있는 어금니를 잃었으면서도 교훈이 부족했나 보다. 나는 일단 부정적인 후기 읽기부터 그만두기로 했다. 더 이상의 어리석음은 막아야 하니 말이다.

문제가 되는 이 하나를 뽑아 버리면 끝일 것 같지만 끝이 아니라고 한다. 서로 의지하던 주변 이들이 기댈 곳이 없어져 서서히 치아 배열이 무너지기도 한다고. 제 때에 새 이를 심어주지 않으면 잇몸에 뼈가 부족해 나중엔 심고 싶어도 못 심는 불상사가 생길 수도 있다고 한다. 고생스럽더라도 임플란트를 할 수 있다면 하는 것이 낫다고 의사들은 입을 모으고 있었다. 나는 치료받을 용기를 내 보기로 마음을 돌렸다.

비록 어금니 하나를 잃었지만, 온몸 구석구석 소중하지 않은 곳이 없다는 당연한 진리를 이제라도 깨달아서 다행이다. 게으름 피우거나 회피하지 말고 제 때 치료받는 용기가 중요하다는 교훈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젠 기사를 쓰기 전에 반드시 양치부터 한다는 나만의 원칙도 철저히 지키게 되었다. 작지만 큰 변화이다.

"혹시 양치를 미루고 여기까지 글을 읽으셨다면 잠시만 일어나 세면대 앞에 다녀오시길 당부드립니다. 이 하나하나를 소중히 닦아 보존해 주세요. 그리고 짝수 해에 태어나신 분들께선 올해 꼭 건강검진 받으세요!" - 이상 친절한 임기자 올림.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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