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한 모금]근육질 다비드상의 성기가 작은 이유는

박병희 2024. 2. 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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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 그 자체로 책 전체 내용을 함축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단숨에 독자의 마음에 가닿아 책과의 접점을 만드는 문장이 있습니다. 책에서 그런 유의미한 문장을 발췌해 소개합니다.

성(性)을 소재로 역사 이야기를 다룬다. 성은 인간의 본능이고 따라서 인간의 역사에도 성은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사회 통념상 성을 다루는 이야기를 터놓기는 쉽지 않았기에 제대로 살펴볼 기회는 많지 않았다. '역사'와 '성'이라는 두 단어를 제목에 사용한 이 책이 눈길을 끄는 이유다. 노골적이고 대범하면서도 흥미로운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교양을 쌓을 수 있는 인문학적 내용도 적지 않다. 저속하게 보이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으로 보인다.

명작이라고 불리는 '다비드상'도, '라오쿤 군상'도 모두가 미미한 생식기가 눈을 빼앗습니다. 그리스 석상으로 분류되는 작품 대부분은 유달리 성기를 작게 묘사했습니다. (중략) 고대 그리스는 철학의 나라였습니다. 이들에게 남성성은 두 가지로 압축됩니다. 신체 단련을 통한 근육질 몸매와 합리적 사고로 무장한 이성이었습니다. 근육질 몸매와 이성은 서로 극명히 다른 요소로 보이지만, 사실 인간의 의지로 아름답게 빚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하나로 연결됩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불굴의 의지로 섹시한 근육질 몸매를 만든 사람과 이성과 철학을 겸비한 시민을 최고의 남자로 쳤던 것입니다. 반면 이들에게는 원초적인 욕망에만 집착하는 사람은 교양 있는 그리스 시민이 아니었습니다. 성기는 욕망의 지표였기에 그만큼 작아야 했지요. 성장하지 않은 아이의 성기가 가장 '이상적인 것'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입니다. '그리스의 동성애'를 쓴 케네스 도버는 "그리스인들에게 거대한 성기는 그저 멍청하고 탐욕적이며 흉한 것"이라고 표현했습니다.(13~15쪽, 그리스 석상의 성기는 왜 이렇게 작나)

19세기 미국은 매춘과 육식, 과도한 음주가 만연한 사회였습니다. 세상이 욕망에 빠져들수록, 이에 반기를 드는 사람도 늘어나는 법이지요. 미국은 청교도들이 세운 나라인 만큼, 하나님의 본래 뜻대로 살아가자는 목소리도 그만큼 높아졌습니다. '템퍼런스 무브먼트(Temperance movement)'라고 불리는 절제 운동의 시작이었습니다.(이 운동이 노동자들을 술로부터 단절시켜 근로 윤리를 고취하려는 자본가 계급의 시도에서 시작됐다는 사회학적 해석도 있습니다.) 템퍼런스 무브먼트 초기는 알코올 절제 운동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 운동이 힘을 얻으면서 점차 성욕, 육식 등 많은 쾌락들이 교정의 대상으로 여겨지기 시작합니다. (중략) 이 때문에 템퍼런스 무브먼트는 주로 종교계가 주도합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가 대표적이었습니다. 이들은 종교적 신념에 맞춰 육식을 배제하는 채식주의를 내세웠습니다. 존 하비 켈로그 역시 이 종파의 신자였지요(55쪽, '호랑이 힘' 콘푸로스트가 자위 방지용이라고?)

고대 그리스인들은 목욕을 치료의 도구로 생각했습니다. 기원전 5세기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는 "찬물과 뜨거운 물에 몸을 차례로 담그면 신체 영양분이 골고루 흡수되고 두통도 해소된다"고 말했습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목욕을 중히 여겼기에, 아기가 태어날 때도 깨끗한 물로 목욕시켰습니다. (중략) 고대 그리스인들이 목욕을 경외의 느낌으로 바라봤다면, 고대 로마에서 목욕은 쾌락과 연결됩니다. 고대 로마 지도자의 권력 기반은 '빵과 서커스'였습니다. 먹을 것과 유흥을 통해 시민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지요. 이 서커스 중 하나가 목욕이었습니다. 목욕탕에서 일종의 성매매가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고대 로마인들은 나체로 따뜻한 물에 들어가서 느끼는 기분 좋은 나른함을 성교와 연관 지었습니다. 화산 폭발로 사라진 폼페이의 한 목욕탕에는 목욕하는 사람들의 성교 모습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그림이 남아 있지요. 역사학자 에드워드 기번이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온수욕에 의해 로마는 무너졌다"고 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125~126쪽, 고대 목욕탕에서 이루어진 성매매)

동독의 지도자 에리히 호네커가 소련의 총서기장 레오니트 브레즈네프를 만났을 때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1979년 동독 건국 30주년 기념행사에서 두 사람이 느닷없이 진한 키스를 나눈 것이지요. (중략) 냉전 시대의 사회주의 리더들은 키스로 유대감을 표시했습니다. (중략) 이들의 키스에는 맥락이 숨어 있습니다. 바로 종교입니다. 공산권 국가인 러시아와 동유럽에서는 로마가톨릭교와 1000년 전부터 본격 분리된 동방정교회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었지요. 동방정교회에서는 종교적 존중의 표현으로 입맞춤을 하고는 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가 들어서기 전인 러시아제국에서도 군인과 장교 사이에 키스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지요. (중략) 동방정교회가 키스에 관대한 건 초기 기독교가 '평화의 입맞춤'을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초창기 때는 영적인 헌신의 표현으로 키스를 권장했지요. 동방정교회는 로마가톨릭보다 초기 기독교의 모습을 갖췄던 탓에 동성 간 키스 문화가 좀 더 오래 남아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138~141쪽, 사회주의자들은 왜 남자끼리 키스하나)

인류가 처음으로 옷을 입었다고 전해지는 시기는 기원전 9000년경입니다. 신석기 시대가 끝난 직후입니다. (중략) 이집트에서는 많은 사람이 옷을 입지 않고 다녔습니다. 그렇다고 멋을 위한 건 아니었습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옷을 입을 여력이 안 됐던 것이지요. 고대 이집트에서 나체인 사람들은 하층민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후기에 해당하는 신왕국 시절(기원전 1500~기원전 1069년)부터는 가슴까지 가리는 세련된 옷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계급을 가르는 의미로서의 패션이었지요. (중략) 이집트에서 누드가 가난을 상징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에서는 '남성성'의 상징으로 여겼습니다. 물론 평소에는 키톤이라고 불리는 가벼운 리넨 옷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운동을 할 때는 모든 의상을 벗고 올 누드로 경기를 즐겼지요. 고대 그리스의 체육관인 '김나시온(gymnasion)'이 나체를 의미하는 '김노스(gymnos)'에서 유래한 데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중략) 고대 로마에서는 벗은 남성이 동성애자로 보인다는 이유로 이를 권장하지 않았습니다.(170~172쪽, 왜 서양에는 나체주의자가 많을까)

역사 속 성 문화, 사색 | 강영운 지음 | 인물과사상사 | 336쪽 | 2만2000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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