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레미제라블’ 조정은 “내 마지막 판틴… 이제야 즐기며 공연”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굶주린 조카를 위해 빵을 훔쳤다가 19년간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이 가석방 중 만난 마리엘 주교에 감화돼 선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이야기를 그렸다. 작품 곳곳에 19세기 프랑스 민중의 궁핍하고 비참한 삶이 담겨 있다. 한국어 프로덕션으로는 2013년 초연과 2015년 재연에 이어 세 번째 시즌(~3월 10일까지 블루스퀘어 신한카드홀)이 진행 중이다. 배우 조정은(44)은 세 시즌 모두 판틴 역을 맡았다.
조정은은 최근 블루스퀘어에서 가진 라운드테이블에서 “‘레미제라블’이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8년 만에 돌아온 이번 시즌이 내가 판틴을 연기하는 마지막이 되지 않을까 싶다”면서 “더 나이를 먹기 전에 판틴을 연기할 수 있는 나이에 이 역할을 다시 맡게 돼 기쁘다. 그래서 매 회차가 지나가는 게 아까울 정도로 작품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초연 때는 이 작품이 좋고 훌륭한 것을 알면서도 판틴을 연기하기에 급급했다. 특히 1년 가까이 원캐스트였기 때문에 정말 부담이 컸다”면서 “재연 때는 역할이 두 번째인 데다 더블캐스팅이라서 여유가 조금 생겼던 것 같다. 그리고 이번에 세 번째 공연에서야 작품을 즐기며 공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판틴은 ‘불쌍한 사람들’이라는 뜻의 ‘레미제라블’ 속 인물 중에서도 가장 불쌍한 삶을 살았다. 사랑하던 남자에게 버림받고 미혼모가 된 판틴은 딸 코제트를 여관에 맡기고 공장에 일하러 다녔다. 하지만 추근대던 감독관을 거절했다가 눈 밖에 나면서 해고됐다. 딸이 있는 여관에 돈을 보내기 위해 그는 처음엔 목걸이, 다음엔 머리카락, 그다음엔 이빨을 팔더니 결국 몸을 파는 신세가 됐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그는 위독한 상태에서 장발장을 만나 딸을 부탁하고는 세상을 떠난다.
공연 시간이 3시간에 달하는 뮤지컬 ‘레미제라블’에서 판틴의 출연 시간은 20분이 채 되지 않는다. 판틴은 1막 전반에 죽었다가 장발장이 세상을 떠나는 2막 마지막에야 다시 무대에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판틴은 작품의 흐름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특히 판틴이 부르는 ‘나는 꿈을 꾸었어요(I dreamed a dream)’는 작품을 대표하는 노래 가운데 하나로, 애달픈 가사가 심금을 울린다.
조정은은 “판틴은 15~20분 정도 출연하는데, 그 안에서 캐릭터의 기승전결을 다 보여줘야 한다. 판틴이 부르는 ‘I dreamed a dream’이 내겐 하나의 작품으로 느껴질 정도다. 이 노래를 통해 판틴의 드라마가 관객에게 잘 전달됐으면 한다”면서 “연출가가 매번 강조하는 ‘판틴이 자기연민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신경 써서 연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극 중 판틴이 죽은 뒤에는 앙상블로 출연한다. 몸은 힘들지만 ‘레미제라블’의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조정은은 그동안 판틴으로 400회 이상 무대에 섰지만, 공연을 할수록 새로운 것이 보인다고 털어놓았다. 무엇보다 딸인 코제트에 대한 마음이다. 조정은은 “비록 내가 (현실에서) 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소중한 존재를 대하는 심정이 절실하게 와닿는다”면서 “예전에는 대사 표현을 고민했다면 지금은 판틴의 심경에 대해 좀 더 고민하게 된 것 같다”고 피력했다.
2001년 서울예술단 앙상블로 뮤지컬에 데뷔한 조정은은 이듬해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으로 신인상을 받으며 스타덤에 올랐다. 그리고 뮤지컬계 스타 배우로 어느덧 24년째 무대에 서고 있다. 다만 그가 배우의 길에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영국 유학을 다녀오거나 작품을 쉬는 시간이 길었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조정은은 “과거에는 배우를 계속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내 재능에 회의를 느끼며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한동안 작품을 쉬면서 ‘아무리 역할이 작더라도 난 여전히 배우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발견했다. 그리고 2014년 뮤지컬 ‘드라큘라’ 초연 당시 미나로 출연할 때 배우로서 자신의 고유성을 인정하게 됐다. 덕분에 지금은 커튼콜에서 관객이 주시는 박수를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있다”고 돌아봤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집중하는 성격이다 보니 그는 겹치기 출연을 절대로 하지 않는다. 다만 이번에 ‘레미제라블’과 동시에 공연 중인 ‘드라큘라’에 출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은 없을까. 조정은은 “‘레미제라블’ 오디션을 보는 과정에 ‘드라큘라’ 제안이 있었다면 고민했을 수 있다. 하지만 판틴 역으로 이미 결정된 후에 (‘드라큘라’ 제안을) 듣게 돼서 다행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며 웃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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