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놀라게 한 '코리안타임'... 핵심은 중꺾마였다

이준목 2024. 2. 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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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아시안컵 조별 및 토너먼트 경기 분석

[이준목 기자]

 
▲ 페널티킥 성공시킨 손흥민 손흥민이 25일(현지시간) 카타르 알와크라 알자누브 스타디움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최종전 한국과 말레이시아의 경기에서 후반 페널티킥을 성공 시킨 뒤 축하받고 있다.
ⓒ 연합뉴스
 
한국축구는 '90분이 지난 후에' 진정으로 시작된다. 축구에서는 90분을 내내 리드할 필요는 없고 마지막 단 1분만 이기고 있으면 충분하다. 지난 2022 카타르월드컵에 이어 다시 한번 등장한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유행어는 이러한 한국축구의 정신을 가장 잘 설명하는 표현이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은 지난 2월 3일(한국시간) 카타르 알 와크라에 위치한 알 자누브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8강전에서 연장까지는 접전 끝에 호주에 2-1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4강진출에 성공했다.

손흥민의 존재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전을 벌었던 사우디와의 16강전에 이어 2회 연속 연장 승부이자, 끌려가고있던 경기를 막판에 뒤집는 대역전극이 펼쳐졌다. 한국은 전반 황인범의 패스실수에서 비롯된 호주의 역습으로 선제골을 먼저 허용하며 0-1로 끌려가고 있었다. 호주는 강력한 피지컬을 앞세운 몸싸움과 두터운 두 줄수비로 한국의 공격을 철저히 차단했다. 한국은 경기 종반까지 좀처럼 공격의 활로를 찾지못하고 있어서 이번에야말로 패색이 짙어보였다.

흐름을 한순간에 바꾼 것은 '캡틴' 손흥민이었다. 후반 추가 시간 페널티지역 인근에서 공을 잡은 손흥민은 단독 드리블 돌파를 시도했다. 촘촘히 공간을 점유하고 있는 호주 수비수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에서 몸싸움을 견디면서 페널티지역으로 진입했다. 당황한 호주 수비수는 공을 걷어내기 위하여 발을 뻗었으나 공에 닿지못하고 손흥민의 다리를 걷어찼다. 완벽한 페널티킥이었다.

손흥민은 페널티킥을 자원한 황희찬에게 기꺼이 기회를 양보했다. 황희찬이 자신감있게 킥을 성공시켜 골망을 가르며 1-1 동점을 만들었던 시간은 무려 95분 52초였다. 불과 1분뒤 심판은 휘슬을 불었고 경기는 연장에 돌입했다. 절망적으로 보이던 경기의 흐름이 순식간에 한국 쪽으로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연장 전반 103분, 마침내 한국이 이날 경기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리드를 잡았다. 이번에도 손흥민이었다. 황희찬이 문전 인근에서 호주의 파울로 프리킥 찬스를 얻어냈다. 이강인과 나란히 프리키커 위치에 선 손흥민은 이번에는 본인이 해결사로 나섰다. 침착하게 호흡을 가다듬은 손흥민이 쏘아올린 예리한 오른발 슈팅은 호주의 수비벽과 골키퍼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각도로 솟아오르며 그대로 골망을 갈랐다. 손흥민의 이 득점은 승부를 결정짓는 결승골이 됐다.

이 골은 손흥민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었다. 손흥민은 이날 호주전에서 이영표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16경기)의 기록을 넘어 한국 선수 통산 아시안컵 최다인 17경기 출전 기록을 수립했다. 또한 호주전 결승골로 아시안컵 통산 7골째를 기록하며 이동국(10골)에 이어 최순호 수원FC 단장과 함께 한국 선수 아시안컵 최다골 공동 2위에도 이름을 올렸다.

손흥민은 이번 대회에서 총 3골을 기록중이다. 조별리그에서 2골을 넣었지만 모두 PK였고 필드골은 없었다. 손흥민은 지난 2019년 UAE 아시안컵에서는 무득점에 그쳤고, 필드골은 2015년 호주 아시안컵 결승전에 넣은 동점골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한국이 연장접전 끝에 호주에 1-2로 석패하며 우승컵을 내줘야했던 탓에 손흥민은 골을 넣고도 눈물을 흘려야했다.

9년이 흘러 손흥민은 다시 만난 호주를 격침시키는 결승골을 넣으며 2015년 결승의 아픔을 뒤늦게 설욕했다. 손흥민은 9년 전 아시안컵 8강전에서도 당시는 우즈벡을 만나 연장에만 2골을 넣으며 한국의 극적인 승리를 이끈 바 있다.

경기 후 영국 '스카이스포츠' 'TNT 스포츠' 등 외신들은 한국의 4강진출을 보도하며 몇 번이나 벼랑끝에서 기사회생하는 불사조같은 저력에 주목했다. 외신들은 한국이 이번 대회에서 4강에 오르는 동안 정규 시간 90분 이내에 승부를 확정지은 것은 조별리그 첫 경기인 바레인전(3-1) 한 경기 뿐이라고 설명했다. 요르단(2-2), 말레이시아(3-3)와의 조별리그 2, 3차전, 사우디(1-1), 호주(2-1)와의 토너먼트까지 4경기 연속으로 90분 이내에 승부를 가리지못했다.

물론 내용상으로 보면 바람직한 상황은 아니었다. 우승후보로 꼽혔던 한국이 그만큼 상대를 압도하지 못하고 매번 고전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한국은 조 1위를 놓쳤고, 빡빡한 일정에 선수들의 체력부담과 부상위험-카드관리 문제 등에서 어려움에 봉착해야했다.

마법의 코리안타임

하지만 바꿔말하면 한국축구는 어떤 상대를 만나든 쉽게 지지 않았고, 끝까지 포기하지도 않았다. 외신들은 한국축구가 이번 아시안컵 5경기에서 총 11골을 넣는동안 거의 절반에 가까운 5골이 정규시간인 90분 이후에 터졌다는 것, 최근 4경기 연속으로 뒤지고 있던 경기를 따라잡거나 역전시켰다는데 주목하며, 한국축구의 놀라운 저력에 찬사를 보냈다.

'코리안타임'이 시작된 요르단과의 2차전에서 한국은 2-1로 끌려가던 91분에 황인범이 자책골을 유도해내며 동점골을 기록했다. 말레이시아전에서는 94분에 손흥민의 PK로 역전골을 만들어냈지만 종료 직전 다시 동점골을 내줬다.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무려 99분에 조규성의 헤더로 동점골을 기록했다. 호주전에서는 황희찬의 PK골이 96분에 터지고 이어 연장 전반 13분에 손흥민의 프리킥 역전골이 이어졌다. 한편으로 인플레이 시간을 강조하는 최근 축구계의 흐름에 따라 카타르월드컵을 전후하여 추가시간이 크게 확대된 데 한국축구가 최대의 수혜자가 된 셈이다.

물론 시간만 더 주어졌다고 해서 모두가 기적을 이뤄내는 것은 아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한국축구의 불굴의 정신력이야말로 추가시간을 코리아타임으로 만들어낸 진정한 원동력인 것이다.

조별리그까지 부진한 경기력으로 실망감을 자아냈던 대표팀은 토너먼트에서 놀라운 투혼으로 감동적인 명승부를 연이어 이끌어내며, 비난을 찬사로 돌려놓는데 성공했다. 한국의 다음 상대는 조별리그에서 만나 무승부를 기록했던 요르단이다. 64년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노리는 한국축구가 또 어떤 놀라운 드라마를 이어나갈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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