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인가족 30평 관리비가 57여만 원... 나만 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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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지 기자]
▲ 역대급 갱신이다. 매년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
ⓒ 최은경 |
며칠 전, 남편의 단톡방이 심상치 않게 울렸다. 휴대폰이 하루종일 띵똥 띵똥 대는 게 무슨 일이 있는 모양이다.
"인기남이네? 누구야?"
"아파트 단톡방이야, 지금 다들 난리 났어."
"왜? 우리 아파트에 뭔 일 생겼어?
"관리비 때문에 다들 멘붕 상태인가 봐."
"얼마씩 나왔대?"
"역대급 찍었대. 다들 40-50만 원 대인가 봐. 지난해보다 더 춥게 살았는데 이게 말이 되냐고... "
"휴우... 왠지 동질감이 생기네."
1월 우리집 관리비. 57만 8천 원. 30평 4인 가족, 10년 차 아파트 관리비다. 사람들 말마따나 역대급 갱신이다. 매년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놀라운 경험을 하고 있다.
지난해 최대 관리비가 40만 원 대였는데, 현재는 10만 원이 훌쩍 넘게 오른 상태다. 특히 난방비와 공동 열요금, 급탕비가 많이 올랐다. 관리비가 부과된 후, 우리 집은 비상 태세에 돌입했다.
▲ 후덜덜 매년 역대급 갱신 중인 관리비... 귀신 보다 무서워요 |
ⓒ 조영지 |
하지만, 군기 빠진 사춘기 아들 딸은 욕실만 들어갔다 하면 함흥차사다. 게다가 온 집안의 불은 죄다 켜고 다니고, 냉장고 문은 10분 단위로 열었다 닫았다... 휴우... 할 수만 있으면 조기제대 시키고 싶은 심정이 굴뚝같다.
아이들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며 잔소리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내 마음도 슬슬 짜증과 원망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따뜻하게 산 것도 아닌데...'
'뜨끈뜨끈한 탕 목욕도 못하고...'
'대체 뭣 때문에 관리비가 오른 거야! 누구 짓이야? '
옷 사고, 가방 사는 건 아껴도 내 집에서 쾌적하게 사는 건 아끼고 싶지 않았다. 밖에서는 차갑고 시린 겨울바람을 맞더라도 집에서만큼은 따뜻한 온기와 넉넉한 풍요를 맛보았으면 했다. '아, 여기가 내 집이지.' 하는 마음의 안정만큼이나 육체의 안정도 주고 싶었던 것이 나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가족 모두 서로의 눈치를 보고 감시를 하며 난방비 사수작전을 펼치느라 집안에서도 편히 쉬기 어렵다. 남편이나 나나 예전보다 더 많이 노력하는데도 나아질 거란 기대보다는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더 커져가는 요즘이다. 난방비 폭증과 전기요금 인상, 물가 인상, 이다음엔 또 뭐가 있을지... 원래 보이지 않는 공포가 더 크다고 했다. 보이지 않는 희망만큼 무서운 것도 없으리라.
▲ 실내온도 내리기, 샤워 10분이상 금지, 온수 빨래 금지... 관리비 줄이기 사수 작전을 펼치다가 부아가 치밀었다(자료사진). |
ⓒ 픽사베이 |
최근엔 사람들을 만나면 '관리비 안녕'부터 묻는 게 자연스러운 인사가 됐다. 다른 아파트 사는 친구들에겐 더 집요하게 묻는다. 우리 아파트만 유독 비싼 건지, 내가 헤프게 쓰는 건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이다. 한 친구는 작년보다 온도를 2도를 낮추고, 사용량도 훨씬 줄었는데 관리비는 외려 올랐다며 울상을 지었다.
다들 비슷비슷한 상황임을 확인하고 주거니 받거니 서로의 하소연에 커피가 식어가는 줄 모른다. 효과적인 난방 기술과 온수 이용법을 공유하기도 하면서 마음의 냉기를 제거해 본다.
대한민국에서 아파트에서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예전에 한 재테크 책에서 경제적 위기에서 헤쳐 나갈 여유가 있을지 없을지 확인해 보려면 살고 있는 집이 현재 수준의 소득 없이 거주 가능한지 살펴보라고 했다. 현재의 소득 없이 살 수 없는 집에 살고 있다면 위험 상황이라고 했는데 이거 어쩌나, 현재의 소득으로도 살기 힘든 집에 살고 있는 나는.
이 겨울, 따순 방에 몸 한 번 지져보지 못하고, 온수 한 번 콸콸 써 보지 못하고, 창문 한 번 시원하게 열어 환기시키지 못하는 내가 왠지 가난의 한 줌을 쥐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떫다.
징징대는 거 딱 질색이고, 웬만하면 좋게 좋게 생각하자가 나의 신조인데 언제부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내 징징 대고만 있는 것 같다. 장보기 무섭다. 관리비 무섭다. 뉴스 무섭다. 징징... 징징... 어떻게 해야 괜찮아질 거야라는 희망의 다짐을 나에게 또, 상대에게 할 수 있을까?
징징대는 내게 한 친구가 귓속에다 대고 이렇게 말했다.
"더 무서운 사실 알려줄까? "
"뭔데?"
"곧 설이다."
"꺄악!!!"
나이가 들면 귀신보다 돈 나가는 날이 제일 무섭다. 댁내 관리비는 다들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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