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인조 속눈썹, 중국산으로 포장돼 전 세계 판매되고 있어"
[박성우 기자]
▲ 북한산 인조 속눈썹 상당수가 대북 제재를 피하기 위해 중국산으로 둔갑해 전 세계에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3일 로이터통신은 중국 내 인조 속눈썹 업계 종사자 15명과 무역 전문 변호사, 북한 경제 전문가 등 20명을 대상으로 북한산 인조 속눈썹 수출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
ⓒ 로이터통신 보도 갈무리 |
북한산 인조 속눈썹 상당수가 대북 제재를 피하기 위해 중국산으로 둔갑해 전 세계에 판매되고 있다는 사실이 보도됐다.
3일 로이터통신은 중국 내 인조 속눈썹 업계 종사자 15명과 무역 전문 변호사, 북한 경제 전문가 등 20명을 대상으로 북한산 인조 속눈썹 수출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로이터통신에 중국에 본사를 둔 기업들이 북한에서 반가공 제품을 수입한 후 중국산으로 포장해 판매하는 시스템에 대해 설명했다.
해당 수출업에 직접 관여하는 회사 관계자 8명에 따르면 완성된 인조 속눈썹은 서방과 일본, 그리고 한국 등의 시장으로 수출된다. 중국 세관 자료에 따르면 북한은 2023년에 총 1680톤의 인조 속눈썹, 수염, 가발을 중국에 수출했으며, 이는 약 1억 6700만 달러(약 2236억 원)에 달한다.
로이터통신은 "북한의 최대 무역 파트너인 이웃 중국에서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는 북한산 인조 속눈썹의 가공과 포장은 김정은 정권에 국제 제재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하고, 중요한 외화 수입원"이라며 "미 국무부와 국제 전문가들은 북한 해외 소득의 최대 90%가 빈곤층인 북한 주민들의 노동을 통해 벌어들이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로이터통신은 "북한이 속눈썹 거래를 통해 매달 벌어들이는 수백만 달러가 김정은 정권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고 가정해야 한다"는 신동찬 국제제재 전문 변호사의 발언을 인용했다. 매체는 신 변호사의 견해에 다른 두 명의 국제 무역 전문가들도 동의했지만,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다고 덧붙였다.
북, 논평 요청에 응답 안 해... 미, 북한산 재료 쓴 회사에 벌금 부과도
로이터통신은 해당 보도에 대해 뉴욕과 제네바의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베이징 주재 북한 대사관, 단둥 주재 북한 영사관에 논평 요청을 보냈으나 북한은 응답하지 않았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로이터통신의 논평 요청에 베이징과 평양은 "우호적인 이웃"이며 "합법적이고 규정을 준수하는 양국 간의 정상적인 협력은 과장되어서는 안 된다"고 답했다. 또한 중국 외교부는 "(보도된) 상황을 알지 못하지만" 유엔 제재 위반 혐의는 "완전히 근거가 없다"고 밝혔다.
반면 미국 재무부 대변인은 로이터통신에 "미국 기업과 외국 기업 모두에 대해 광범위한 대북 제재 권한을 적극적으로 집행하고 있다"며 "북한의 모든 수익 창출 노력을 계속해서 공격적으로 표적으로 삼을 것"이라면서 사례 하나를 들었다.
미국에 본사를 둔 '엘프 코스메틱스' 사의 경우 2012년부터 약 5년간 중국에서 수입한 인조 속눈썹에 북한산 재료가 포함된 사실이 드러나 지난 2019년 미 재무부가 약 100만 달러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했다는 것이다.
로이터통신은 해당 회사가 이후 인조 속눈썹 판매를 중단했다며 로이터통신에 보낸 성명에서 합법적이고 책임감 있게 제품을 만들겠다는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은 이외 현재 북한 속눈썹 거래에 관여하는 서방 기업이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전세계 인조 속눈썹의 70% 생산하는 중국 핑두시... "북한산이 8할"
한편 로이터통신과 인터뷰한 업계 관계자들은 '세계의 속눈썹 수도'를 자처하는 중국 산둥성의 핑두시가 북한산 인조 속눈썹 공급망의 핵심 거점이라고 말했다. 핑두시가 생산한 인조 속눈썹은 전 세계 인조 속눈썹 생산량의 70%를 차지한다.
가족과 관련 업체를 운영하는 왕팅팅씨는 로이터통신에 "미국, 브라질, 러시아에 제품을 수출하는 '몬셰리(Monsheery)' 사 등 핑두시에 본사를 둔 많은 회사들이 주로 북한산 인조 속눈썹을 포장해 판매한다"며 "북한산 제품의 품질이 훨씬 좋다"고 말했다.
로이터통신은 핑두시의 속눈썹 업계 관계자들은 복잡한 유통망 속에서 대북 제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며 "대북 제재가 없었다면 (북한이) 중국을 통해 수출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다른 속눈썹 업체 운영자의 발언을 인용했다.
매체는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과 높은 품질을 높이 평가한 중국 제조업체들은 2000년대 초부터 북한 속눈썹 공장과 협력하기 시작했다"며 "중국 인조 속눈썹 박스 제조업체인 '칼리(Kali)' 사가 누리집에 게시한 2023년 추정치에 따르면 핑두시의 인조 속눈썹 공장 중 약 80%가 북한에서 인조 속눈썹 원료와 반가공 제품을 구매하거나 재가공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높은 품질에 중국 임금의 1/10인 저임금 때문에 북한산 선호
북한 노동자들의 임금에 대해 네 명의 중국 공장 소유주와 관리자들은 로이터통신에 북한 노동자의 급여가 중국 임금의 10분의 1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중국 제조업체 관계자는 로이터통신에 북한 라선시의 공장 노동자들에게 평균 월급 300위안(약 5만6400원)을 지급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인조 속눈썹 업계 관계자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북한의 국경이 폐쇄됐을 당시 북한으로부터 공급을 받지 못해 애를 먹었다며 팬데믹 이후에도 여전히 공급량이 충분치 않아 배송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 관세청은 로이터통신에 "중국산으로 위장한 북한산 제품을 수입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면서도 북한과 중국 사이의 공급망에 대한 로이터통신의 보도만으로는 원산지를 "판단하기 어렵다"며 "이 문제를 조사하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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