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만난뒤 박카스 들이킨 백남준…그 꿈이 베니스서 이어진다
1935년 당시 함남 원산에서 태어나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목조각가 김윤신(89), 성 소수자의 이야기를 발굴해 예술로 엮어온 이강승(46), 월북 미술가여서 국내에서 한동안 ‘금기의 화가’였던 이쾌대(1913~65), 100원 동전에도 쓰인 이순신 영정의 한국화가 장우성(1912~2005).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미술 올림픽' 베니스 비엔날레가 선택한 한국 미술가들이다.
'누구나 이방인'…베니스 비엔날레 주제전에 월북 화가부터 남미서 활동하는 원로 여성 조각가까지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인 아드리아노 페드로사는 지난달 31일 이탈리아 베니스 현지에서 주제전의 참여 작가 332명을 발표했다. 참여 작가를 호명하는 중에 이쾌대의 ‘두루마기 입은 자화상’(1940년대) 이미지도 보여줬다. 이탈리아 르네상스풍의 초상화에 한복 차림으로 팔레트를 든 화가의 자화상으로 본전시 주제와도 상통하는 작품이다.
주제인 '누구나 이방인(Foreigners Everywhere)'은 어디를 가든 이방인을 만날 것이며, 우리 또한 마음 깊은 곳에선 이방인임을 뜻한다. 페드로사 총감독은 “외국인ㆍ이민자ㆍ실향민ㆍ망명자ㆍ난민 예술가들의 작업에 초점을 맞출 예정”이라며 “나아가 이방인의 의미를 확장해 성 정체성으로 박해받고 소외되는 퀴어 예술가, 독학으로 작업을 시작한 예술가, 민속 예술가 등 미술계의 변방에서 겉도는 인물들, 모국에서 여전히 이방인으로 취급받는 토착 예술가 등의 실천을 조명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시는 4월 20일부터 11월 24일까지. 히토 슈타이얼, 테레사 마솔레스, 잉카 쇼니바레, 슈퍼플렉스, 디에고 리베라 등 세계 미술의 거장들도 참여한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강보경 차장은 "상파울루 미술관 예술감독이기도 한 아드리아노 페드로사는 지난해 4월 한국을 방문해 서울시립 남서울미술관의 김윤신 개인전, 광주비엔날레 등 한국 미술의 현장을 둘러보며 베니스에 초청할 만한 작가들을 조사해 갔다"고 설명했다.
1895년부터 격년으로 열려온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은 국가관별 참가로 ‘미술 올림픽’이라 불리며 대표적인 현대미술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는 1986년 첫 참여를 시작으로 1995년 한국관(Korean Pavilion)을 건립했다. 한국관은 국가관이 모여 있는 자르디니에 들어선 마지막 국가관이다.
백남준의 꿈…대통령 면담 후 박카스 꺼내 시원하게 들이켜
2년에 한 번 현대 미술의 최첨단을 보여주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국가관을 건립해 한국 미술을 선보이자는 건 백남준(1932~2006)의 꿈이었다. 1993년 독일관 대표작가로 나가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그는 베니스 시 당국에 "한국관에서 남북한 공동 전시를 열어 베니스가 평화에 기여했다는 공을 남기겠다"고 당시 베니스 시장을 설득했다. 이어 김영삼 대통령을 찾아 한국관 건립 예산 및 광주비엔날레 창설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병국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은 "전날 남대문 시장서 산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청와대에 나타난 백남준의 재킷 호주머니가 불룩했다. 대통령 면담을 끝내고 '힘들어 죽겠다'며 층계참에 서서 주머니에서 박카스를 꺼내 시원하게 들이켜는 모습이 마치 퍼포먼스 같았다"고 돌아봤다. 19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 백남준은 ‘고인돌’이라는 제목의 미디어 아트를 출품했다. 5ㆍ18 민주화운동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의미였다.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내년도 30주년을 앞두고 베니스의 일 지아르디노비안코 아트스페이스에서 ‘마당: 우리가 되는 곳’이라는 자료전을 연다. 대표 출품작은 백남준의 ‘고인돌’이다.
올해 한국관에서는 구정아(57)가 향기를 전시한다. 실향민ㆍ입양아 등이 풀어낸 한국에 대해 가진 추억을 모티브로 조향사가 만든 향기로 한반도의 지도를 그려 보인다는 구상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12세기에 건립된 몰타기사단 수도원에서 한국관 개관 30주년 기념전 ‘모든 섬은 산이다’도 연다. 비구니 20여명의 퍼포먼스를 펼쳤던 곽훈부터 특별언급상을 받은 전수천ㆍ강익중ㆍ이불 등 역대 참여 작가 30여명이 출품한다.
유영국의 산, 이성자의 하늘…베니스에서 선보이는 한국 미술의 스펙트럼
유영국미술문화재단은 르네상스 화가 조반니 벨리니의 작품이 상설 전시된베니스의 고택에서 ‘유영국: 무한 세계로의 여정’을 연다. 단색화 세대의 스승인 1세대 추상화가 유영국(1916~2002)은 나고 자란 울진의 산을 강렬한 원색으로 그렸다. 한국 근대 미술 애호가인 방탄소년단 RM의 소장품도 출품된다.
한국근현대미술연구재단은 바르토메우 마리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기획으로 재불화가 이성자(1918~2009)의 회고전을 연다. 갤러리현대는 신성희(1948∼2009)의 박음 회화, 엮음 회화 연작을 전시한다. 일찌감치 타지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했으나 충분히 조명받지 못한 작가들이다.
빌모트재단에서는 ‘이배: 달집태우기’ 전시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 뉴욕 록펠러센터 앞에 초대형 숯덩어리 조각을 세웠던 이배(68)가 경북 청도의 달집태우기를 모티브로 한 영상과 설치를 통해 불ㆍ나무ㆍ종이의 생성과 소멸을 보여줄 예정이다. 시장성 높은 단색화 위주로 알려졌던 한국 미술이 베니스에서 다양한 스펙트럼을 펼쳐 보인다.
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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