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의 막장화…‘기분 좋은’ 웃음 찾기 힘든 방송가 [기자수첩-연예]

장수정 2024. 2. 4. 07: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불륜으로 점철된 드라마, 빌런 부각하는 예능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사랑을 받으면서, 코미디 드라마가 안방극장 대세 장르가 됐다. 그러나 다수의 작품들이 ‘기분 좋은’ 웃음보다는 주인공들의 막장 행각으로 ‘욕하면서’ 즐기는 전개를 선보이는 것은 아쉬운 지점이다.

남편과 믿었던 친구의 불륜을 알고 충격을 받은 것도 모자라 그들에게 살해까지 당해야 했다. 그런데 눈 떠보니 10년 전,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한 주인공의 시원한 복수극을 다룬 tvN 드라마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주말드라마를 넘어, 아침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는 평을 들을 만큼, 기막힌 내용으로 점철이 돼 있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 속 한 장면ⓒtvN 영상 캡처

사사건건 질투하며 은근히 괴롭힘을 주도하는 친구는 물론, 자신을 만만하게 보고 하대하는 남편과 그의 어머니까지. 후반부 복수의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한 설정이라는 걸 감안하고 보더라도 지나치게 과장된 인물들의 행동에 헛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지질한 매력으로 웃음을 끌어내는 남편 캐릭터의 활약에 힘입어, ‘생각 없이 볼 수 있어 좋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에서는 심각한 내용의 장르물이 구독자들의 선택을 이끌고 있지만, TV 드라마에서는 오히려 가볍고, 유쾌한 내용들로 진입장벽을 낮추는 것이 성공 전략으로 꼽히고 있다. 제작비는 물론, OTT의 수위를 쫓아가기 힘든 상황에서, 오히려 OTT들이 하지 않을 선택으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사례들이 다수 탄생했다.

지난해 20년 차 가정주부에서 1년 차 레지던트가 된 차정숙의 이야기를 유쾌하고, 또 공감 가게 그려내며 사랑을 받은 JTBC ‘닥터 차정숙’부터 국가대표 반찬가게 열혈 사장과 대한민국 수학 일타 강사의 달달한 로맨스를 코믹한 톤으로 그려낸 tvN ‘일타 스캔들’ 등이 사랑을 받으면서 ‘코믹 드라마가 안방극장에서 통한다’는 기대감이 생겨났다.

앞서는 JTBC ‘힘쎈여자 강남순’가 힘쎈 세 모녀의 활약을 B급 감성의 코미디로 풀어낸 바 있다. ‘클리셰’를 오히려 적극 활용하며 편안한 재미를 선사하는 작품들이 연이어 제작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가벼움’, ‘유쾌함’이 도를 지나칠 때가 생겨나고 있다. 자신을 무시하는 친구의 코를 납작하게 해 주겠다며 현실에선 보지 못할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동창회에 등장하는가 하면, 악역들의 선 넘는 행동이 유발하는 분노까지.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시청률은 높지만,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면서 시청자들에게 불쾌감과 쾌감 사이, 자극적인 재미를 선사 중이다. ‘힘쎈여자 강남순’ 또한 단순함을 넘어, 유치하다는 평을 받으면서 호평과 혹평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오갔었다. 코미디 드라마가 아니더라도, ‘마에스트라’, ‘나의 해피엔드’ 등 불륜을 소재로 자극적인 전개를 보여주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것도 사실이다.

‘날 것’의 재미를 강조하며 사랑을 받는 연애 프로그램 또한 마찬가지다. 매 기수, 일부 출연자는 ‘빌런’으로 지목돼 연일 논란에 휩싸이곤 하지만, ‘욕하면서 보는’ 재미를 충실하게 채우는 ENA ‘나는 솔로’가 있으며, 엠넷 커플 매칭 서바이벌 ‘커플 팰리스’는 ‘결혼 시장 현실을 반영하겠다’며 직업, 학력, 연봉 등 조건을 강조하며 다소 민망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특히 한 남성 출연자가 여성 출연자에게 ‘날씬하지 않다’는 자극적인 발언을 그대로 담아 온라인상에서 회자되고 있다.

제작비와 표현의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OTT에 맞서는 TV 콘텐츠들의 고민은 물론 필요하다. OTT가 보여주지 못한 편안한 재미의 콘텐츠 또한 지금의 시청자들에게는 필요한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가벼움’이 ‘저급함’으로, ‘유쾌함’이 ‘유치함’으로 잘못 해석되는 것은 아닐까. TV 콘텐츠들의 방향성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Copyright © 데일리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