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잦은 노년 우울증, 용기 내자 달라졌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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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숙 기자]
요즘 내 주변에 퇴직한 지인이 많다. 나도 2022년 8월 말에 퇴직하였다. 대부분 교원이나 공무원으로 퇴직했지만,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다가 은퇴한 지인도 있다.
교원으로 퇴직한 분은 정년퇴직도 있지만, 요즘 학교들이 힘들다 보니 명예퇴직한 분이 많다. 퇴직하고 한 달 정도는 대부분 자유로운 일상을 즐긴다. 그동안 바쁘게 긴장하며 살다가 출근하지 않으니 내 세상 같았다. 하지만 한 달 정도다. 나도 한 달은 자유롭게 즐기며 살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이렇게 아무 일도 안 하며 살아도 되나 고민이 되었다. 일할 능력이 되는데 연금만 갉아먹으며 살아도 되는지 회의가 왔다. 우울증이 그렇게 성큼 다가올 줄은 몰랐다. 종일 뭘 해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냥 커피잔을 들고 하염없이 창밖만 바라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주르르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던 중 아는 교감 선생님 부탁으로 이웃 학교에 시간 강사로 나가게 되었고, 글쓰기도 시작하면서 삶의 활력을 얻었다.
불면증 있다면 약 도움 받는 게 현명
▲ 출간한 에세이집 퇴직하고 6개월 동안 쓴 글로 POD(Publish On Demand) 주문형 자가 출판으로 에세이집을 출간하게 되면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
ⓒ 유영숙 |
그런 일이 있은 뒤 친구는 혼자 외출하기가 불안해졌단다. 갑자기 또 쓰러질 같아서 늘 걱정이 되었다고. 아파트 내 상가에 잠시 다녀오는데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갑자기 손이 떨리고 가슴이 불안해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어떻게 집에 오긴 했는데 진정이 안 되어 딸에게 119를 불러 달라고 해서 응급실로 갔다고 한다.
신경외과 뇌 촬영을 하였지만, 이상이 없다고 해서 퇴원했는데 마음이 잡히지 않았다고 한다. 낮에는 남편이 운영하는 가게에 나가 잠시 일을 봐주는데 의자에 그냥 멍하니 앉아서 '저 사람들은 뭐가 행복해서 저리 웃을까?',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하며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남편에게조차 '나 건드리지 말고 아무 소리도 하지 말라'며 고립돼 지냈다. 밤에도 불면증이 와서 잠도 못 자고 식사도 할 수 없었단다.
▲ 감기약 마음의 감기 같은 우울증, 특히 노인 우울증도 감기처럼 약 처방을 받으면 좀 더 빠르게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 유영숙 |
친구는 말한다. 신경정신과 약 먹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우울증이 심할 때는 상담도 받고 약도 처방받아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이다. 특히 불면증이 심할 땐 병원에 가서 상담하고 약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다고 했다. 맞는 것 같다. 나 혼자 힘으로 안 될 때, 현대 의학으로 치료할 수 있으면 그 또한 현명한 방법이다.
친구는 지금 건강해져서 손자도 보며 잘 지내고 있다. 모임에 나와서 그때 이야기하며 용기 내어 병원에 간 것이 잘한 일임을 강조한다. 이제 신경정신과나 정신건강의학과 방문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마음의 감기 같은 우울증, 특히 노인 우울증도 감기처럼 약 처방을 받으면 좀 더 빠르게 치료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반려 식물 키우기가 준 유익
다음은 작은 공장을 운영하며 사업을 하던 모임의 언니 사장님이 있다. 늘 골프도 함께 치고 한 달에 한 번 모임에도 빠지지 않고 잘 나오셨던 분이다. 60대 후반에 공장을 접고 일에서 은퇴하셨다. 모임에 나오면 일을 안 하니 마음이 허전하다고 하셨다. 나도 그즈음에 퇴직했기에 그 허전한 마음이 이해되었다. 그동안 정말 쉼 없이 열심히 일하셨으니 간만의 휴식이 적응 안 되셨을 거다.
▲ 다육 식물 전시장 모임 중에 다육이 키우는 동생이 있어서 다육이도 같이 사러 다니고 늘어나는 다육이 화분을 보며 식물 키우기에 집중하다보니 우울증이 좋아지셨다. |
ⓒ 유영숙 |
몇 달이 지났는데 모임의 한 분이 동네 마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어 카페에 가서 잠시 이야기하다 보니 은퇴하면서 우울증이 왔었다고 하셨다. 열심히 일하다가 일을 손에서 놓으니 무기력증에 빠진 것 같았다고 하셨다.
사람들도 만나기 싫어 집에만 있으며 지내다가, 어느 날 베란다에 놓여있는 시든 화분을 보니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나 싶어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평소에 좋아하던 식물을 본격적으로 키우기 시작했다고 하셨다. 특히 다육이(식물)를 키우다 보니 조금씩 마음이 안정되어 좋아졌다고 하셨다.
다육이를 키우며 이야기도 하고, 늘어나는 화분을 보며 나도 다육이처럼 꿋꿋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다. 모임 중에 다육이 키우는 동생이 있어서 다육이도 같이 사러 다니고 집도 오가며 많이 좋아지셨다고.
▲ 우리 집 난 화분 우리 집에서 키우는 반려 식물인 난 화분이다. 난이 가끔 꽃도 피워주고 화분 갈이로 식구수도 늘어나는 것을 보며 마음의 위로를 얻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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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어느 시기에는 우울증이 올 수 있다. 은퇴 뒤엔 더욱 그렇다. 아무 생각 없이 즐겁게 여행 다니며 즐겁게 잘 지내는 분들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서 한 번씩 우울증이 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 노인 복지 회관의 체력 단련실과 탁구장 우리 동네 노인 복지 회관에 있는 체력단련실과 탁구장이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많은 교육 프로그램도 있고 3,500원을 내면 점심 식사도 가능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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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나는 집 근처 노인 복지관과 복지회관, 도서관에 회원 가입을 했다. 은퇴 뒤 시간을 잘 보내고 싶어서다. 복지관이나 복지회관에는 다양한 운동이나 교육 프로그램을 적은 비용 또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추첨에서 떨어지기도 하지만, 나에게 맞는 프로그램을 찾아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노년을 잘 보내는 방법이다. 우울증도 스스로 흥미가 가는 방법을 찾아서 잘 지나가려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내 경우처럼, 글쓰기에 관심이 있으신 분은 작가에 도전해서 글쓰기를 하셔도 좋을 것 같다. 내 주변엔 80이 넘으신 분도 작가로 활동하고 계시다. 브런치 스토리에 글 쓰는 작가들 중, 퇴직 후 무기력으로 인한 우울증이나 육아 우울증으로 힘들었던 분들이 글을 쓰며 회복되는 사례를 많이 보았다. 나도 그 중 한 명이다. 마음이 허전하거나 무기력증이 오는 분은 글쓰기로 삶을 바꿔보셔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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