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수간 점철된 야설이 60억에 팔린 이유 [강영운의 ‘야! 한 생각, 아! 한 생각’]
6년 전인 2017년, 사드 후작이 쓴 ‘소돔의 120일’의 육필 원고가 프랑스 파리 경매 시장에 나왔다. 프랑스 문화부는 450만유로, 한화로 치면 약 60억원에 이 작품을 사들였다. ‘극악의 고어물’을 정부가 거액에 사들인 배경은 무엇일까.
먼저 소설의 간단한 줄거리부터 살펴보자. 시대는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 치세 말기. 지배계층에 위치한 네 명이 고성 ‘샤또 드 실링’에 모였다. 귀족과 성직자, 전직 판사, 은행가인 이들은 4개월 동안 ‘극한의 쾌락’을 맛보기로 모의한다. 네 명의 나이 든 포주가 도우미를 자처했다. 도합 여덞 명의 악마는 10대 초반 8명의 소년과 8명의 소녀를 납치했다. 지배계층 4인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이들의 가학성은 ‘크레셴도(점점 강하게)’로 나아간다. 첫 모임이 벌어진 11월 동안은 납치한 소년·소녀들을 대상으로 수음의 단계를 밟다가, 12월부터는 본격적인 강간이 시작된다. 종국에는 산 채로 아이들 가죽을 벗기고, 그들에게 배변을 먹이며, 임신한 여성의 배를 갈랐다. 가학성교로는 더 이상 만족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저자인 사드 후작도 자신의 작품만큼은 아니지만 성적인 방종의 극치를 달린 인물이었다. 성매매 여성과 관계를 갖다 채찍을 휘두르고 불에 달군 쇠로 가학행위를 했다. 귀족 여성과 결혼한 지 9개월 만이었다. 1786년에는 독일인 미망인 로즈 켈러를 “가사 노동자가 필요하다”고 꾀어 성폭행해 전국구로 이름을 알렸다. 그의 변태적 성행위를 예의 주시하던 프랑스 당국이 1778년 그를 뱅센성에 가뒀다. 신체적인 자유가 구속되면서, 그의 머릿속은 변태적 성애로 더욱 들어찼다. 에너지를 소설로 쏟아내기 시작했고 바로 그 첫 작품이 ‘소돔의 120일’이다.
사드 지지하고 나선 ‘고립주의’ ‘페미니즘’
당대의 악동이었던 사드 후작은 20세기 들어 점점 지지를 얻었다. 변태적 소설로 보이는 그의 텍스트에서 사람들이 철학적 영감을 도출해내면서였다. ‘소돔의 120일’은 당시에는 변태 소설로 폄훼당했지만(물론 지금도 대부분 평은 그렇다), 한 세기가 지난 후 철학자들은 그가 당대의 성과 도덕에 관한 모든 기준을 무너뜨렸다는 점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기존 소설에서는 절대 볼 수 없던 ‘희소성’도 사드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가장 자유로운 영혼(소설가 기욤 아폴리네르)”이라거나 “사랑의 상상력을 해방시켰다”는 극찬도 나왔다.
후대 학자들은 사드 작품에서 ‘철학적 메시지’를 끄집어내기까지 했다. 그들은 사드가 이상 성욕자였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고립주의(isolisme)’라는 철학이 있었다고 분석한다.
고립주의란 “이 세상은 모두 고립된 존재기 때문에 타자의 극심한 고통은 나 자신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반면, 스스로가 경험하는 아주 미미한 쾌감은 큰 감동을 준다”는 명제를 갖고 있다.
그의 작품 속 캐릭터 역시 타인의 고통에 공감 못하고 극단적인 쾌락만 추구한다.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학살에는 무관심하지만, 삶 속 작은 쾌락에는 크게 반응하는 우리네 모습도 고립주의의 사례다. 제1·2차 세계대전에서 보여준 인간의 끝없는 저열함은 성선설을 폐기하고 사드의 고립주의를 주목하게 했다.
사드의 작품에는 놀랍게도(?) ‘페미니즘’적인 요소도 녹아 있다. 대표작인 ‘쥐스틴’과 ‘쥘리에트’가 대표적이다. 줄거리는 이렇다. 자매인 쥐스틴과 쥘리에트는 선과 악을 대표하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쥐스틴은 착하고 예의 바르며, 총명한 사람이다. 반면 언니인 쥘리에트는 품행이 방정하지 못하고, 색욕으로 가득 찬 여성이었다.
전형적인 소설이라면 쥐스틴은 흥하고 쥘리에트는 벌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드는 노골적으로 권선징악을 비웃는다.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이었던 쥐스틴은 그들에게 빼앗기고 폭행당하면서 결국 강간까지 당한다. ‘착한 여인’ 쥐스틴의 죽음을 묘사한 대목은 사드의 가치관을 여실히 드러낸다.
“입으로 들어간 번개가 질을 통해 나왔다. 하늘의 불이 휩쓸고 지나간 두 갈래의 길 위로 끔찍한 빈정거림이 지나간다.”
쥘리에트는 자신만의 거침없는 삶을 살아간다. 자신의 몸을 파는 데 주저함이 없고,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욕망을 채웠다. 친아버지를 유혹해 성관계를 맺다 머리에 총을 쏘기까지 했을 정도다. 동성애와 난교 파티를 거리낌 없이 하는데도, 그의 삶은 최상위 권력으로 승승장구한다. 교황과도 성관계를 맺는 인물이 쥘리에트였다.
프랑스 페미니스트 시몬 드 보부아르는 ‘우리가 사드를 불태워야 하는가(Must we burn Sade)’라는 작품에서 사드의 철학 세계를 탐구한다. 보부아르는 사드를 이렇게 평했다.
“성적 본능과 실존에 대해 놀랍도록 깊은 통찰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페미니스트 일부는 ‘쥘리에트’를 극찬하기도 했다. 기존 남성들의 ‘창녀’에 관한 선입견을 해체했다는 이유에서다. 사드 이전 작가들은 여성은 본질적으로 정숙한 존재라 여겼다. 창녀는 ‘그들을 팔아넘긴 사악한 부모들의 희생양’으로 그렸다. 이면에는 여성은 본성적으로 정숙하고, 성에 관심이 없는 존재라는 ‘편견’이 자리한다.
사드 작품 속 창녀들은 당대의 여성관을 완전히 전복해버렸다. 그들은 배신이나 유혹을 당한 것도, 교활한 포주에게 속아서 악의 세계로 들어온 ‘순진한 처녀’도 아니었다. 당당히 자신의 의지와 욕구로 창녀가 되길 원하는 존재들. ‘쥘리에트’의 대사는 새로운 여성관을 여실히 대변한다.
“내가 창녀였다고 공개적으로 선언됐으면 좋겠어. 내 몸을 파는 것을 금지하는, 그 비위에 거슬리는 서약을 깼으면 해.”
그의 작품에서 벌어지는 성관계에서도 성역할의 전복이 수시로 일어난다. 이 역시 페미니즘 요소로 여겨진다. 가학적인 성관계에서 사드는 ‘가해자 남성’과 ‘피해자 여성’의 공식을 거부했다. 여성이 채찍을 남성에게 휘두르며 가학적으로 다루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당시의 성관념으로는 결코 받아들이기 힘든 전위적인 내용이었다.
사드는 150년 동안 헐뜯음을 당해오며 금기시됐지만 20세기를 맞아 전격적인 복권에 성공한 듯 보인다. 20세기 초반 예술의 주축이었던 초현실주의자들은 “사드는 우리에 영감을 주는 존재”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기까지 했다. 프랑스 정부가 ‘소돔의 120일’을 얻기 위해 60억원의 거액을 쾌척한 배경에는 이 같은 문화적 조류가 자리하고 있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45호 (2024.01.31~2024.02.06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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