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정신’의 경제적 가치를 조명하다 [홍기훈의 ‘세계를 바꾼 경제학 고전]
조지프 슘페터는 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경제학자다. 비엔나대, 그라츠대 등에서 경제학 교수로 재직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오스트리아의 재무장관과 바더만은행의 총재를 역임했다. 이후 1932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 교수가 됐다. 1934년에는 미국계량경제학회장으로 선출됐는데,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미국경제학협회장이 된 경우다. 케인스와 함께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로 꼽힌다.
창조적 파괴는 대부분 사람들이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유명한 단어다. ‘경제발전의 이론’은 1911년에 출간됐고, 당시에는 슘페터가 창조적 파괴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다. 다만, 사실상 책에 쓰인 내용들이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을 설명하는 기반이 됐다. 슘페터는 경제학에서 전통적으로 추구하던 정태적(수동적)인 균형 개념에 반대하고, 경제의 동태적 발전을 주장했다. 그는 기업가의 혁신이 경제 발전 핵심 동인이라고 봤다. 그리고 기업가의 혁신 활동이 경제를 변화시키는 과정을 ‘창조적 파괴’라고 명명했다.
사실 창조적 파괴라는 용어 자체는 원래 좀바르트(Werner Sombart)에 의해 경제학에 도입됐다는 주장이 있다. 슘페터 또한 오스트리아 학파의 선배 경제학자인 비저(Friedrich von Wieser)를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이런 정황들로 미뤄 봐 ‘창조적 파괴’는 20세기 초 독일과 오스트리아 학계에서 이미 공유되고 있던 개념을 기반으로 발전됐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의 경제적 부상과 이를 설명하기 위한 노력
산업혁명 이후 영국은 눈부신 경제 발전을 이룬다. 고전학파의 경제학은 영국의 경제적 성공을 구조화하고 이론화해 설명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 영국과 유럽의 경제적 영광은 그 끝이 보이고 있었다. 1871년 보불 전쟁에서 프랑스 제2제국이 패한 후 유럽은 극한의 정치적 갈등과 혼란에 빠진다. 제국주의 분위기가 고조됐고 영국과 프랑스는 신생 독일제국과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한다. 러시아와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군사적 갈등으로 인해 발칸반도는 정치적 수렁에 빠져 들어갔다. 결국 이런 제국주의 국가들 간 갈등은 20세기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폭발한다. 그리고 세계대전과 함께 유럽의 경제적 헤게모니는 종식된다.
이에 반해 신흥 국가 미국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1865년 남북 전쟁이 끝나고 미국 사회의 대통합을 이뤄내면서 미국 경제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의 발전과 대량 생산을 위한 인프라 구축이 진행됐다. 인프라 구축을 위해 철도와 철강 산업 그리고 금융업이 발전하면서 마크 트웨인이 언급한 ‘도금의 시대’가 도래했다. 미국의 경제력은 유럽의 경제력을 앞서기 시작한다.
세계의 경제축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동하자 경제학자들 또한 미국이라는 신흥국의 경제 상황을 이론화하고 설명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 미국 경제는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기업 활동에 참여하고 경쟁했다. 제국주의를 기반으로 한 무역으로 부를 쌓은 유럽 국가와는 달랐다. 미국에서는 자신의 경제 왕국을 건설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업가들의 부와 발전에 대한 욕망으로 경제가 발전했다. 기업가의 혁신적 도전을 바탕으로 하는 미국의 경제 발전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서 다양한 노력이 나타나게 된다.
슘페터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경제 발전의 원천은 혁신이라고 내다봤다. 여기서 혁신이란 새로운 제품을 고안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새로운 원료를 활용한 제품 생산, 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의 변화 심지어는 시장 관행을 바꾸는 조직 체계까지도 혁신으로 봤다.
슘페터는 발전이 없는 정적인 경제 상태에서 기업가가 혁신을 통해 새로운 제품, 생산 방법, 신시장 등을 더해 기존 균형이 깨지고 경제 발전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기업가가 혁신을 일으키고 성공하면, 그 후 일련의 혁신들이 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이후 경제가 발전하고 인류의 번영이 온다. 그리고 이런 번영이 정리되는 과정이 불황이라고 주장한다.
슘페터에게 있어 경기 변동이란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의 속성이며, 혁신적 변화가 만들어낸 부산물에 해당했다. 경제 공황을 정부 지출로 해결하려는 케인스 방식의 시도는 슘페터가 보기에 경제 발전을 오히려 더디게 만드는 행위였다. 정부 지출을 통한 유효 수요 창출은 경쟁력이 부족한 기업에 연명할 시간을 줘 혁신적인 제품이나 프로세스가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할 뿐이었다.
이런 혁신은 자본주의 시스템 내에서 그냥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혁신을 이루고자 하는 기업가정신이 방해받지 않아야 하며, 기업가정신을 실현할 수 있는 수단이 갖춰져야 한다. 그런 점에서 슘페터는 제도의 중요성과 은행 신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나치게 관료적인 형태의 문화 또는 제도는 기업가정신을 훼손할 수 있다. 기업가에게 신용을 제공하는 금융기관이 없다면 기업가는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기 어렵다.
슘페터는 기업가정신을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본다는 점에서 기존 경제학과는 확실히 다른 관점을 취한다. 실제 위대한 기업가들은 슘페터가 말한 바와 같은 기준으로 의사 결정을 내리고 있었다. 20세기 미국을 지배했던 존 록펠러, 앤드류 카네기, 헨리 포드 등은 단순히 이익만을 좇던 인물은 아니었다. 이들 모두 생산 요소 또는 유통 구조에 변화를 줌으로써 거대한 사업을 일궈냈으나, 부를 넘어선 각자의 신념 또는 야망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었다. 록펠러의 경우 석유 산업의 90%를 장악, 독과점으로 많은 비난을 받았지만, 실제로는 합병을 통해 사업을 재구성하고 규모의 경제를 달성함으로써 석유 공급 단가를 오히려 낮췄다.
슘페터에 따르면, 이런 기업가들은 자기 발전에 대한 동기가 강하고 위험 추구 성향이 높으며, 독자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가장 핵심적으로는 변화에 대한 갈망을 갖고 기존의 것을 다른 방식으로 구성해낼 수 있는 역량을 지닌 이들이었다.
미 재무부 장관과 국가경제회의 위원장을 역임한 로렌스 서머스는 “21세기는 애덤 스미스도, 존 메이너드 케인스도 아닌 조지프 슘페터의 세기다”라고 말한 바 있다. 20세기에는 케인스의 이론이 국가 정책 방향을 결정함에 있어 지배력을 행사했다면, 21세기에는 슘페터 이론에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는 의미다.
기업가가 일궈내는 혁신은 다른 요소와의 독특한 조합을 통해 이뤄진다. 특히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확대되는 IT 산업은 기업 간의 지식 교류·합병을 통해서 과거보다 더욱 다양한 방식으로 혁신이 이뤄진다. 일례로,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벤처캐피털리스트들은 자신이 투자한 기업 사이의 시너지를 확인하고, 합병을 주도함으로써 시장에 혁신적인 제품과 서비스를 탄생시키는 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또한,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이라는 이름의 경영 전략이 각 기업에 도입되면서, 제품과 서비스의 연구개발 활동이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서 기업 간 협력·계약을 통해 더욱 확대되고 있다. 즉, 지식 경제에서 생산 요소라 볼 수 있는 다양한 정보들이 더욱 역동적으로 결합되면서 혁신이 탄생하기 용이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슘페터의 ‘경제발전의 이론’은 출판한 지 1세기가 지난 현재가 돼서야 경제 발전의 원리를 더 잘 설명해낸 책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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