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천재견, 한양과 광주를 오가다

성낙선 2024. 2. 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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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여행 1/2] 양림역사문화마을, 이장우 가옥과 우일선 선교사 사택

[성낙선 기자]

 양림역사문화마을, 이장우 가옥 안채.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 제1호다. 고아한 멋이 있다.
ⓒ 성낙선
광주광역시로 여행을 떠나기 전날, 다음날 폭설이 쏟아진다는 일기예보를 접했다. 그 소식에 급히 계획을 변경했다. 애초 자동차를 가지고 내려갈 예정이었으나, 서둘러 기차표를 끊었다. 여행 일정 또한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넘어서지 않게 대폭 수정을 가했다.

남구에 있는 양림역사문화마을은 눈이 내리는 날, 두 발로 걸어서 여행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마을이 생각처럼 크지 않다. 찾아가 봐야 할 장소들이 가까운 거리 안에 밀집해 있다. 카페도 많고, 맛집으로 불리는 식당도 적지 않다. 여행 중에 굳이 마을을 벗어날 일이 없다.

자동차를 포기한 건, 결과적으로 매우 잘한 일이었다. 여행 당일, 광주 지역에 엄청난 눈이 내렸다. 종일 쌓인 눈의 두께가 20cm에 달했다. 그 눈이 두터운 침대 매트리스를 떠올리게 했다. 도로에 쌓인 눈이 채 녹기도 전에 다시 눈이 내려 자동차들이 엉금엉금 기어다녔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사실 걸어 다니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세상 이치가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는 법. 폭설이 내린 덕에 평소에는 결코 볼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눈이 내리지 않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풍경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림역사문화마을로 들어가는 길 입구.
ⓒ 성낙선
눈이 내려 더 아름다웠던 이장우 가옥

양림역사문화마을은 이름대로 역사와 문화가 잘 어우러진 여행지다. 역사에 치중했으면 다소 무거웠을 것이고 문화에 기울었으면 다소 가벼웠을 터인데, 그 둘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뤘다. 여행은 마을 지도를 보면서, 동네 산보를 하듯이 하면 된다.

먼저, 광주 고택 중에 하나인 이장우 가옥에 들른다. 이장우 가옥의 건립 시기는 1899년, 대한제국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장우 가옥은 조선시대의 전통 가옥이 근대로 접어들면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장우 가옥은 '안채, 사랑채, 행랑채, 곳간채, 문간채로 구성된 근대 한옥'이다. 특히 안채가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 1호로 지정돼 있다. 건립 당시에는 다른 사람의 소유였으나, 1965년에 이장우가 이 집을 사들이면서 이장우 가옥이라는 이름이 붙게 됐다고 한다.
 
 양림역사문화마을 이장우 가옥, 마당에 들어앉은 연못. 연못에 가까이 다가가면 안쪽에 거대한 돌거북이 엎드려 있는 걸 볼 수 있다. 연못 너머로 사랑채가 보인다.
ⓒ 성낙선
 
올해로 건물이 지어진 지 125년이 되었는데도 그 세월이 무색하게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아직도 집 안 구석구석 집을 가꾸고 고치는 사람의 손길이 느껴진다. 집 안으로 들어서면, 마당 한가운데 대리석으로 만든 원형 연못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눈이 내려서 그런지, 그 연못이 여느 때보다 더 아름다워 보인다.
연못 너머로 보이는 건물은 사랑채다. 마당을 지나 왼쪽 문으로 들어서면 당시 상류 주택의 전형을 보여주는 안채가 나온다. 안채만 놓고 봐도, 이장우 가옥은 상당히 고아한 건물이다. 건물은 물론이고, 벽에 박힌 문잡이 장식조차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
 
 양림역사문화마을 이장우 가옥, 안채 벽에 걸린 문잡이,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는 게 특이하다. 문을 열어서 고정하는 용도로 쓰였다.
ⓒ 성낙선
 
돌계단은 유려한 구름 문양으로 깎아서 만들었다. 지붕과 처마 장식은 물론이고, 마루를 장식한 작은 쇳조각들에도 무늬를 새겨넣었다. 그 장식물들이 건물 전체를 고상하게 꾸며준다. 그걸 보면, 집주인이 이 집을 지을 때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이장우 가옥은 정면에서 보면 대문이 닫혀 있다. 그래서 출입이 안 되는 것처럼 보인다. 방문객들이 이 집을 출입할 때는 대문 옆 문간채 쪽문을 이용해야 한다. 일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그때는 담장 너머로 집안을 들여다볼 수 있다. 담장 밑에 디딤돌이 놓여 있다. 담장에는 친절하게도 '그 위에 올라서서 집안을 들여다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양림역사문화마을 골목길 안쪽에서 바라본 이장우 가옥 대문.
ⓒ 성낙선
주인보다 더 유명세를 타고 있는 천재견

이장우 가옥 근처 길가에 세워져 있는 '효자광주정공엄지려'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물 중의 하나다. 이 유물은 흔히 보는 효자비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 지나치기 쉽다. 그런데 이 유물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제법 있다. 이유는 효자비 앞에 서 있는 작은 동물 석상 때문이다.

이 석상은 얼핏 봐선 어느 전설 속 동물처럼 보이는데, 실상은 개를 조각한 것이다. 이 석상에 얽힌 이야기가 재미있다. 효자비의 주인공인 정엄선생은 1558년 과거시험에 급제해 남원부사와 나주목사 등을 지낸 분이다. 이분이 개 한 마리를 키웠는데, 그 개가 대단한 명견이었던 모양이다.
 
 양림역사문화마을, 어느 길 모퉁이에 서 있는 '효자광주정공엄지려'. 효자 정엄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안쪽에 개 석상이 있다.
ⓒ 성낙선
안내문에 적힌 글을 보면, 그 개가 '한양과 감영지방 방백들과 문서수발 등 신속한 통신 연락업무를 해냈기로 유명'했는데, '각종 문서나 연락사항을 보자기에 싸고, 가고 올 노잣돈만큼의 엽전을 전대에 넣어 목에 걸어주면 보내고자 하는 곳을 다녀왔'다고 한다. 놀라운 일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 개가 여느 때처럼 한양과 광주를 오가며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길 위에서 새끼들을 낳다가 그만 숨을 거두게 된다. 그 후 그 개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이 석상을 세우기에 이른다. 이쯤 되면, 그 개가 무언가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사실 요즘도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입에 돈을 물고 동네 가게로 심부름을 가는 개가 종종 나오곤 한다. 정엄선생이 기르던 개도 아마 그런 천재견들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지금은 이 천재견이 애니메이션과 웹툰의 주인공으로까지 등장해 주인보다 더 유명세를 타고 있다.
 
 양림역사문화마을 골목길. 오른쪽 벽에 걸린 사진의 주인공은 독일 간호사 출신 서서평 선교사이다. 일제강점기에 의료선교사로 한국에 건너와 병자 구완과 빈민 구제에 힘썼다.
ⓒ 성낙선
5.18 실상을 국외에 알린 외국인 선교사

눈 덮인 길을 계속 걸어서 호랑나무가시언덕으로 향한다. 그곳에 광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선교사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마을에 가면, 1900년대 초 광주에서 기독교를 전파하던 외국인 선교사들이 사용하던 사택들을 볼 수 있다. 그중에 '우일선 선교사사택'과 '허철선 선교사사택'이 있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은 192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광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서양식 주택 건물'이다. 우일선은 미국인 선교사로, 본명은 'Robert M. Willson'이다. 우일선은 그의 한국식 이름이다. 그는 광주에서 '1908년 제중원(현 광주기독병원) 원장을 지냈으며, 1911년 전남 최초 근대식 병원인 그레이엄기념병원을 건립했다.
 
 양림역사문화마을, 우일선 선교사사택.
ⓒ 성낙선
 양림역사문화마을, 우일선 선교사사택 주변의 나무들. 왼쪽에 보이는 검은 몸통의 거목이 흑호두나무다.
ⓒ 성낙선
길가에서 올려다보면 나무가 울창한 숲속 언덕에 회색 벽돌로 지어진 2층 건물 한 채가 그림처럼 앉아 있는 게 보인다. 그 풍경이 꽤 이국적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른 나라에 와 있는 듯한 감상에 젖게 한다. 선교는 옛말이 되고, 요즘은 이 선교사사택을 배경으로 웨딩 촬영을 할 때도 있다고 하니, 격세지감이 느껴진다.
사택만 아름다운 게 아니라, 건물 주변에 서 있는 거목들도 꽤 운치가 있다. 이 나무들 중에 피칸나무와 흑호두나무 같은 경우, 선교사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타향에서도 고향 분위기를 느끼기 위해 가져와 심은 나무들이라고 한다. 그 나무들이 이제는 아름드리나무가 돼서, 수호신처럼 이 마을을 지키고 있다.
 
 양림역사문화마을, 허철선 선교사사택.
ⓒ 성낙선
 
우일선 선교사사택에서 오웬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길을 따라서 조금 더 올라가면 허철선 선교사사택이 나온다. 허철선 선교사사택 건물은 앞서 본 우일선 선교사사택과는 다르게 매우 소박한 모습이다. 선교사 사택에서도 그 건물을 지은 사람의 개성이 드러난다.

허철선 선교사사택은 사택 건물보다는 허철선이라는 인물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이 더 많다. 그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외국인 선교사 중의 한 명이다. 1980년 봄, 광주에서 벌어진 그날의 실상을 알리는 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1965년 한국으로 건너와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5.18 당시 광주기독병원 원목으로 있으면서, 병원으로 실려 온 희생자들과 시신들이 안치된 참혹한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미국과 일본 등으로 전송했다. 그 공로로, 그는 2017년 오월어머니상을 수상했다.

선교사들이 지은 건물이 한국의 전통 가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역사도 다르다. 하지만, 예스러운 풍경과 함께 뜻깊은 이야기들을 간직한 것만은 크게 다르지 않다. 양림역사문화마을은 서양의 역사 문화와 한국의 역사 문화가 어떻게 공존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양림역사문화마을. 사직공원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광주 시내. 그 너머로 멀리 정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인 무등산이 보인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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