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천재견, 한양과 광주를 오가다
[성낙선 기자]
▲ 양림역사문화마을, 이장우 가옥 안채. 광주광역시 민속문화재 제1호다. 고아한 멋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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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에 있는 양림역사문화마을은 눈이 내리는 날, 두 발로 걸어서 여행하기에 적합한 곳이다. 마을이 생각처럼 크지 않다. 찾아가 봐야 할 장소들이 가까운 거리 안에 밀집해 있다. 카페도 많고, 맛집으로 불리는 식당도 적지 않다. 여행 중에 굳이 마을을 벗어날 일이 없다.
자동차를 포기한 건, 결과적으로 매우 잘한 일이었다. 여행 당일, 광주 지역에 엄청난 눈이 내렸다. 종일 쌓인 눈의 두께가 20cm에 달했다. 그 눈이 두터운 침대 매트리스를 떠올리게 했다. 도로에 쌓인 눈이 채 녹기도 전에 다시 눈이 내려 자동차들이 엉금엉금 기어다녔다.
▲ 양림역사문화마을로 들어가는 길 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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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림역사문화마을은 이름대로 역사와 문화가 잘 어우러진 여행지다. 역사에 치중했으면 다소 무거웠을 것이고 문화에 기울었으면 다소 가벼웠을 터인데, 그 둘이 적절하게 균형을 이뤘다. 여행은 마을 지도를 보면서, 동네 산보를 하듯이 하면 된다.
먼저, 광주 고택 중에 하나인 이장우 가옥에 들른다. 이장우 가옥의 건립 시기는 1899년, 대한제국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장우 가옥은 조선시대의 전통 가옥이 근대로 접어들면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다.
▲ 양림역사문화마을 이장우 가옥, 마당에 들어앉은 연못. 연못에 가까이 다가가면 안쪽에 거대한 돌거북이 엎드려 있는 걸 볼 수 있다. 연못 너머로 사랑채가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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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건물이 지어진 지 125년이 되었는데도 그 세월이 무색하게 보존이 잘 되어 있다. 아직도 집 안 구석구석 집을 가꾸고 고치는 사람의 손길이 느껴진다. 집 안으로 들어서면, 마당 한가운데 대리석으로 만든 원형 연못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눈이 내려서 그런지, 그 연못이 여느 때보다 더 아름다워 보인다.
▲ 양림역사문화마을 이장우 가옥, 안채 벽에 걸린 문잡이, 거북이 모양을 하고 있는 게 특이하다. 문을 열어서 고정하는 용도로 쓰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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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은 유려한 구름 문양으로 깎아서 만들었다. 지붕과 처마 장식은 물론이고, 마루를 장식한 작은 쇳조각들에도 무늬를 새겨넣었다. 그 장식물들이 건물 전체를 고상하게 꾸며준다. 그걸 보면, 집주인이 이 집을 지을 때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 양림역사문화마을 골목길 안쪽에서 바라본 이장우 가옥 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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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우 가옥 근처 길가에 세워져 있는 '효자광주정공엄지려'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유물 중의 하나다. 이 유물은 흔히 보는 효자비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 지나치기 쉽다. 그런데 이 유물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제법 있다. 이유는 효자비 앞에 서 있는 작은 동물 석상 때문이다.
▲ 양림역사문화마을, 어느 길 모퉁이에 서 있는 '효자광주정공엄지려'. 효자 정엄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안쪽에 개 석상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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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어느날, 그 개가 여느 때처럼 한양과 광주를 오가며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길 위에서 새끼들을 낳다가 그만 숨을 거두게 된다. 그 후 그 개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긴 사람들이 석상을 세우기에 이른다. 이쯤 되면, 그 개가 무언가 탁월한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 양림역사문화마을 골목길. 오른쪽 벽에 걸린 사진의 주인공은 독일 간호사 출신 서서평 선교사이다. 일제강점기에 의료선교사로 한국에 건너와 병자 구완과 빈민 구제에 힘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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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길을 계속 걸어서 호랑나무가시언덕으로 향한다. 그곳에 광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선교사마을'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마을에 가면, 1900년대 초 광주에서 기독교를 전파하던 외국인 선교사들이 사용하던 사택들을 볼 수 있다. 그중에 '우일선 선교사사택'과 '허철선 선교사사택'이 있다.
▲ 양림역사문화마을, 우일선 선교사사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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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림역사문화마을, 우일선 선교사사택 주변의 나무들. 왼쪽에 보이는 검은 몸통의 거목이 흑호두나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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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림역사문화마을, 허철선 선교사사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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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일선 선교사사택에서 오웬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길을 따라서 조금 더 올라가면 허철선 선교사사택이 나온다. 허철선 선교사사택 건물은 앞서 본 우일선 선교사사택과는 다르게 매우 소박한 모습이다. 선교사 사택에서도 그 건물을 지은 사람의 개성이 드러난다.
허철선 선교사사택은 사택 건물보다는 허철선이라는 인물 때문에 찾아오는 사람이 더 많다. 그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외국인 선교사 중의 한 명이다. 1980년 봄, 광주에서 벌어진 그날의 실상을 알리는 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1965년 한국으로 건너와 선교 활동을 시작했다. 5.18 당시 광주기독병원 원목으로 있으면서, 병원으로 실려 온 희생자들과 시신들이 안치된 참혹한 현장을 사진으로 찍어 미국과 일본 등으로 전송했다. 그 공로로, 그는 2017년 오월어머니상을 수상했다.
▲ 양림역사문화마을. 사직공원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광주 시내. 그 너머로 멀리 정상이 하얀 눈으로 뒤덮인 무등산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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