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죽어간다... 그들은 정말 절박할까
[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박소희 기자]
▲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이 3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가운데, 청사 정문에서 대통령 거부권 반대와 특별법 즉각 공포를 요구하던 유가족협의회 이정민 운영위원장이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 권우성 |
"8살 아이가 동생을 너무 많이 좋아한다. ...(중략)... 최근에 거부권 관련해서도 아이한테 '삼촌이 사고가 났는데 왜 사고가 났는지는 우리는 알아야 돼. 근데 대통령님께 알고 싶다고 요청을 했는데 들어주시지 않으셨어'라고 했더니 '대통령님 빨리 만나러 가자'고, '알아야 되는 거 왜 안 가르쳐주냐'면서 화를 내더라. '만나달라고 했는데도 만나주시지도 않으셔'라고 대답을 해줬다."
2022년 12월 15일, 국회 앞 농성장을 찾아온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에게 유최안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회장이 말했다.
"누가 그랬다. 다른 사람, 안 움직이는 사람들을 움직이는 게 만드는 게 정치고 투쟁이라고. 저희는 회사 측 노동조합도 만들 수 없을 정도의 노동환경에 처해있는 집단이다. 이게 임계점 같다. 그럴 때마다 정치의 역할이 더 필요할 거라고 보고. 저희는 여유가 없기 때문에 더 극단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 노조법 3조가 (개정)되지 않으면 선택지가 없다. 다른 선택지도 있다는 걸 좀..."
거부권 또 거부권... 절박한 국민 내치는 대통령
모두가 절박한 이들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담긴 이태원 참사 특별법,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는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했으나 속절없이 사라졌거나 곧 사라질 위기다. 쌀 시장의 불안정성을 보완하기 위한 양곡관리법, 고령화 사회와 지역 의료 격차에 대응하고자 했던 간호법, 고질적인 방송장악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던 방송3법 당사자들의 절박감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대통령의 거부권은 윤석열 대통령과 그 가족만 보호했을 뿐, 절박한 국민들은 가차없이 내쳐버렸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줄곧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을 고집하고 있다. 양상은 다양하지만, 역시 대표사례는 민주화 이후 역대 최다(9회)를 자랑하는 거부권 행사다.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직후 "국민은 늘 무조건 옳다"고 말했을 때에는 설마했다. '카르텔'이란 표현을 줄이고, 모처럼 국회의 도움을 요청하던 2024년도 예산안 시정연설 때도 긴가민가했다. 슬픈 예감은 늘 틀리지 않는다. 지난해 12월 1일, 윤 대통령은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 거부권 행사로 '변함없음'을 과시했다.
▲ 윤석열 대통령이 1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서울대병원에서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여덟 번째, 생명과 지역을 살리는 의료개혁'에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의 발표를 들은 뒤 박수치고 있다. 2024.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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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자의 무절제한 권한 행사는 가장 약하고 상처받은 이들에게 독으로 돌아가고 있다. 윤 대통령이 말하는 '국민'에 농민, 간호사, 하청노동자와 비정규직, 언론의 자유를 위해 싸우는 이들, 참사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유가족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생존자들은 포함되지 않는다. 누군가 내게 '지금 야권에게 가장 시급한 과제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막무가내로 쓰이는 대통령의 거부권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라고 답하고 싶은 이유다.
여의도의 오랜 문법은, 이럴 때 절대 숫자를 말하지 말라고 이른다. '200석'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오는 순간 오만해보이고 역풍 맞는다며 입단속을 한다. 맞는 말이긴 하다. 이해찬 전 대표의 '20년 집권론'은 보기 좋게 폐기됐다. 새 나라를 꿈꾸던 1000만 개의 촛불이 세운 새 정부는 불과 5년 만에 심판당하지 않았나. 하지만 2024년 지금 '200'이라는 숫자를 언급하는 이들의 사정은 조금 다르다. 아니 그들은 '제발 살려달라'고 절규하고 있다.
정말 가능한 숫자인지는 알 수 없다. 솔직히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특정 정당이 단독으로 국회의원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일은 망상이나 다름없고,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딱 한 가지 방법은 있다. '연대'다. 절박한 약자들의 곁에 서겠다는 마음들이 모이고 모인다면 기적처럼 일어날지도 모를 일이다. 헛된 생각이지만, '어쩌면'이라는 실낱 같은 마음을 버리기가 어렵다. 사람들은 자꾸 거리로,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와중에 정치의 시간, 선거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오른쪽은 홍익표 원내대표와 고민정 최고위원. |
ⓒ 남소연 |
다만 다른 정당에도 묻고 싶다. '정말 절박했는가.' 애당초 '병립형'만 말하는 국민의힘은 논외다. 우리 사회의 가장 낮고 약한 이들을 대변해야 하는 진보정당들이 얼마나 고달픈 상황인지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병립형으로 돌아간다'는 소문이 심상찮을 때만 국회 본청 앞 계단 혹은 소통관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그들이 정말 연동형을 지키는 데에 절박했을까. 진보정당 최대의 위기가 도래하고 있다는데 카메라 앞 혹은 SNS에서 호소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무엇을 할 것인가'가 사라진 정치는 사람들을 살리기는커녕 죽음에 이르게 만든다. 그 결과 노동자는 끼어 죽고, 떨어져 죽고, 어린아이들은 스쿨존에서 죽고, 청소년들은 수학여행길에 죽고, 젊은이들은 거리에서 죽는다. 이들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의석 수'만을 위한 선거제도 논의가 아니길 간절히 바란다. 민주당이든 다른 정당이든 정치의 복원이 절실한 시절이다. 사람들이 죽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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