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닫았던 이대 명물 '빵낀과'…사상 초유 '구청 직영점' 된 사연

김경희 입력 2024. 2. 3. 11:00 수정 2024. 2. 3.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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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한파에 지난해 6월 폐업한 이화여대 앞 명물 분식집 '빵 사이에 낀 과일'이 지난해 말 서대문구청 직영점으로 재탄생했다. 사진 서대문구

코로나19와 고물가 한파에 지난해 6월 폐업한 이화여대 명물 분식집 ‘빵 사이에 낀 과일(빵낀과)’이 지난해 말 서대문구청 직영점으로 재탄생했다. 본지 보도(2023년 1월 25일자) 이후 이성헌 서대문구청장이 직접 박춘희(73) 사장을 여러 차례 찾아가 설득한 결과다.

지난달 29일 오전 빵낀과에서 만난 박씨와 직원 3명은 가게 오픈 준비로 분주했다. 박씨는 “현실적으로 영업을 지속하기 어려웠지만 학생들의 안식처가 사라진다는 생각에 미안함도 컸다”며 “구청에서 가게를 살려보자고 하니 저도 힘 닿는 데까지 운영 노하우와 레시피 등을 전수하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빵 사이에 낀 과일' 창업자 박춘희(73)씨가 지난해 2월 이화여대 졸업생 20여 명에게 감사패와 꽃다발 등을 받은 후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박춘희씨 제공

1997년 이대 앞에 문을 연 빵낀과는 지난 26년간 한자리를 지키며 이대생들의 사랑방 역할을 했다. 몇 차례 폐업 위기를 겪을 때마다 재학생들이 구매 운동을 벌이고 졸업생들이 몰려와 만류했다. 박씨가 폐업 결심을 굳혔다는 소식에 지난해 2월엔 졸업생 20여 명이 찾아와 “그간 사장님의 따뜻한 마음과 사랑이 큰 힘이 됐다”며 감사패와 꽃다발, 손편지를 전하기도 했다.

이는 박씨가 구청의 제안을 받아들인 결정적 계기가 됐다. 재오픈 소식을 듣고 가게를 찾은 졸업생 손영진(01학번ㆍ42)씨는 “학교 앞 추억의 공간들 중 남아있는 곳이 손에 꼽힌다”며 “폐업 소식을 듣고 안타까웠는데 친구들과 다시 ‘빵낀과에서 만나자’ 말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참 감사하다”고 했다.

이화여대 앞 명물 분식집 '빵 사이에 낀 과일'이 폐업한다는 소식을 듣고 지난해 2월 이대 졸업생 20여 명이 찾아와 박춘희(73)씨에게 감사패와 손편지 등을 전달했다. 사진 박춘희씨 제공


구청이 기존의 가게를 직영점으로 바꿔 운영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보니 우여곡절도 적잖았다. 현재는 시그니처 메뉴인 과일 샌드위치와 참치치즈 샌드위치만 판매하고 있다. 집밥을 먹고 싶다는 학생들의 요청으로 만들어주기 시작한 떡볶이ㆍ김치볶음밥 등도 설비가 갖춰지는 대로 메뉴에 추가한다는 계획이다.

맛과 품질은 그대로인데 가격은 더 낮췄다. 샌드위치 가격은 각 3500원, 커피는 2500원이다. 그러다 보니 지난 한 달간 올린 매출은 300여 만원 수준이다. 인건비 등을 빼면 남는 게 거의 없다. 박씨는 “구청에서 만약 수익이 난다면 공익 사업에 쓰겠다고 해 권리금도 받지 않고 상호명을 넘겼다”며 “장사가 잘돼서 주변 상권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고물가 한파에 지난해 6월 폐업한 이화여대 앞 명물 분식집 '빵 사이에 낀 과일'이 지난해 말 서대문구청 직영점으로 재탄생했다. 사진 서대문구

서울의 주요 상권으로 꼽히던 신촌ㆍ이대 상권은 코로나 이후에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기준 신촌ㆍ이대 상권 공실률은 22%로 서울 전체 공실률(5.6%)에 비해 훨씬 높다. 18년 영업을 이어온 롯데리아 신촌로터리점, 투썸플레이스 신촌점 등 터줏대감 격이던 프랜차이즈 1호점들도 속속 문을 닫고 있다.

서대문구는 지난해 신촌지구단위계획 변경을 통해 이대 지역 업종제한을 사실상 폐지하고, 임대인들과의 면담을 통해 임대료 30~50% 인하를 이끌어내는 등 지역 상권 살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임대료 지원ㆍ컨설팅 등을 통해 청년 상인들의 이대 상권 창업도 적극 도울 계획이다.

고물가 한파에 지난해 6월 폐업한 이화여대 앞 명물 분식집 '빵 사이에 낀 과일'이 지난해 말 서대문구청 직영점으로 재탄생했다. 사진은 지난달 29일 빵낀과를 찾은 이성헌 구청장(가운데), 창업자 박춘희씨(왼쪽 두번째)와 직원들. 사진 서대문구


제2ㆍ제3의 빵낀과 모델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성헌 구청장은 “지역 상권 침체로 빵낀과와 같은 명물 가게가 사라진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며 “구청이 직접 점포를 확보해서라도 이런 곳들을 지역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일자리 창출, 주변 상권 활성화에 기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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