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카 브랜드, 미래車 시장서 살아남는 법

우수연 2024. 2. 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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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카 브랜드, 전동화 기술력 격차 확보 잰걸음
포르셰 타이칸, 고성능 전기차 초기 시장 선점
람보르기니, 하이브리드로 점진적 전동화 추진
애스턴마틴, 신생 전기차 업체와 기술 제휴
페라리, 반도체 전문가 CEO 영입으로 SDV 대비

미래차 시장이 전동화·SDV(소프트웨어 중심 차량) 위주로 빠르게 재편되는 가운데 슈퍼카 브랜드들이 독보적인 성능 격차를 유지하기 위해 잰걸음을 치고 있다. 이들 업체는 브랜드 정체성을 강조하고 전동화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주행 성능, 운전자의 편의성을 높이는 소프트웨어(SW)도 차세대 슈퍼카 개발의 주요 과제다.

내연기관 시대 슈퍼카의 기준은 확고했다. 일반 스포츠카를 확실히 넘어서는 엔진·주행 성능을 보유해야 슈퍼카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가 되면서 이같은 기준은 모호해졌다. 테슬라, 루시드, 리막 같은 신생 전기차 업체들이 주행 성능이 월등한 전기차를 먼저 쏟아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테슬라 모델 S 플래드는 최대 출력 1020마력,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2.1초에 불과하다. 반면 가솔린 V12엔진을 탑재한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는 최대 출력이 780마력, 제로백은 2.8초다. 하지만 이같은 수치의 차이는 순간 가속력이 뛰어난 전기차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다. 통상 테슬라는 슈퍼카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다.

람보르기니, 페라리, 애스턴마틴, 맥라렌, 포르셰 같은 전통 슈퍼카 브랜드들은 100년이 넘는 내연기관 시대 선두주자였다. 전기차 시장에서도 일반 브랜드와 제품력 격차를 벌리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모색하고 있다.

우선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브랜드 정체성 강화다. 그동안 쌓아왔던 고성능 브랜드 이미지를 그대로 가져가면서 전동화 성능을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성능이 월등한 순수전기차를 개발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면 뛰어난 내연기관 기술과 전기 모터를 결합한 하이브리드로 시간을 버는 방법도 있다.

포르셰는 슈퍼카 브랜드 중 가장 빠르게 전동화에 뛰어든 업체다. 첫 번째 순수전기차 타이칸은 디자인은 물론 주행 능력에서도 내연기관 포르셰의 DNA를 그대로 계승했다. 덕분에 타이칸은 업계에서 신차가 출시될 때마다 비교군에 오르는 고성능 전기차의 기준이 됐다.

보통 전기차는 초기 가속력은 뛰어나지만 수차례 가혹 주행을 하는 환경에서는 배터리 출력이나 열관리에 문제가 생기기 쉽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포르셰는 타이칸에 2단 변속기를 탑재해 내구성과 효율성을 높였다. 1단 기어는 정지 상태에서 출발할 때 가속을 빠르게 해주고, 고속 주행 시에는 2단 기어가 힘을 더 보태준다.

포르셰 타이칸[사진=포르셰]

람보르기니는 앞으로 4~6년 이후에 ‘최고의 전기차’를 내놓겠다는 목표다. 순수전기차 출시 전까지 공백은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로 채운다. 올해 안에 우루스, 우라칸 등 전 라인업의 하이브리드화를 추진한다. 뛰어난 내연기관 기술력과 전기 모터를 결합해 하이브리드 엔진에서 기술력의 우위를 가져간다는 전략이다.

애스턴마틴은 전기차 기술력을 빠르게 끌어올리기 위해 신생 업체와 협업을 추진했다. 지난해 6월 애스턴마틴은 루시드모터스에서 전기차 파워트레인, 배터리 시스템 설계·제조 분야 핵심 기술을 받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루시드 에어 사파이어는 최대 출력 1234마력, 제로백 1.89초의 성능을 갖춘 ‘괴물 전기차’로 불린다. 내연기관 시대엔 애스턴마틴의 기술력이 우위였지만, 시장 선점을 위해선 스타트업의 신기술까지도 적극 수용하겠다는 자세다.

전동화뿐만 아니라 커넥티비티·자율주행 등 SDV도 이들 브랜드의 차기 과제다. 그동안 슈퍼카 브랜드는 주행 성능과 운전의 재미에만 집중해 자율주행이나 운전자의 편의성을 높이는 SW 개발에는 소홀했다. 하지만 완성차 업계의 트렌드가 SW 중심으로 바뀌면서 이에 대한 고민도 추가됐다.

2021년 페라리는 유럽 최대 반도체업체 고위 임원 출신인 베네디토 비냐를 CEO로 전격 영입했다. 반도체는 차량 내 다양한 SW를 구현하기 위한 핵심부품이다. 다만 페라리는 SW 개발은 온전히 ‘운전의 즐거움’을 위한 것이라며 개발의 방향성을 명확히 했다. 비냐 CEO는 "자율주행, 인포테인먼트가 아닌 주행 성능 향상을 위한 SW를 개발하겠다"고 강조했다.

스테판 윙켈만 람보르기니 회장은 "미래차 시대 슈퍼카 브랜드의 생존 전략은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혁신을 수용하는 데 있다"며 "전기화를 통한 성능을 향상시키면서도 지속가능성, 선도적 기술, 탁월한 주행경험 등 브랜드 본질은 유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윙켈만 회장은 2000년대 초반부터 람보르기니를 이끌며 최근 20년간 글로벌 슈퍼카 시장의 성장을 지켜본 인물이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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