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도 아닌데, 원앙 100마리 모였다…춘향이의 남원에 왜

김준희 2024. 2. 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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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남원 광한루원 내 연못 위를 원앙 무리가 떠다니고 있다. 남원시는 "현재 광한루원에 원앙 100여마리가 둥지를 틀었다"고 밝혔다. 사진 남원시


'록스타 오리' 남원에 떴다


전북 남원에 '록스타 오리' 100여마리가 날아들었다. 2018년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 화려하고 선명한 깃털을 지닌 수컷 원앙 한 마리가 등장하자 뉴요커들이 원앙 실물을 보러 모여들었다. 원앙은 미국 등 북미 지역에선 보기 드물어서다. 당시 외신은 이 원앙을 '록스타 오리'라 불렀다.

남원시는 3일 "최근 광한루원에 천연기념물 제327호인 원앙 100여마리가 둥지를 틀었다"며 "개체 수로는 역대 가장 많다"고 밝혔다. 부부 금실을 상징하는 원앙이 이몽룡과 성춘향이 만난 광한루의 새 명물로 떠올랐다. 2008년 명승으로 지정된 광한루원(6만9795㎡)은 광한루가 있는 정원을 말한다.

2018년 11월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에 등장한 원앙. AP=연합뉴스


15년 전 처음 발견…수십 마리 정착


남원시에 따르면 광한루원에 원앙이 처음 발견된 건 약 15년 전이다. 이땐 한두 마리였다고 한다. 이후 10년 전부터 점점 늘더니 4~5년 전부턴 원앙 수십 마리가 가을에 왔다가 이듬해 봄이 되도 날아가지 않고 아예 광한루원에 눌러앉았다.

(사)한국조류보호협회에 따르면 국제적 보호종인 원앙은 러시아·중국·한국·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현재 동남아시아 야생 집단은 2만여마리다. 한국에 서식하는 원앙은 약 5000마리로 추정된다. 일부는 텃새가 돼 하천·호수·계곡 등에서 5~10마리씩 서식한다. 100~200마리씩 무리로 발견되는 원앙은 러시아 사할린 등에서 겨울을 나기 위해 한국을 찾은 겨울 철새라고 한다.

남원 광한루원 내 연못에서 원앙 한 쌍이 쉬고 있다. 사진 남원시


"텃새와 겨울 철새 섞여"


광한루원에 있는 원앙은 텃새와 겨울 철새가 섞여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평소엔 40~50마리 수준이지만, 겨울엔 철새까지 포함해 100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남원시는 "봄이 오면 원앙 무리 중 절반은 남고, 절반은 떠난다"고 했다.

철새 도래지나 동물원도 아닌 광한루원에 원앙이 집단으로 서식하는 까닭은 뭘까. "원앙 습성과 연관이 있다"는 분석이다. 원앙은 활엽수림이 발달한 산간 계곡이나 강·저수지와 연결된 지천 상류 지역, 숲속에 물이 고인 곳을 선호한다. 먹이 활동은 새벽과 저녁 무렵에 하며, 낮에는 그늘진 숲속에서 시간을 보낸다. 도토리·곡식 등을 즐겨 먹으며 곤충류나 물고기도 잡아먹는다.

남원 광한루원 내 연못에서 원앙 무리가 날갯짓을 하고 있다. 사진 남원시
광한루원 내 연못에서 힘차게 날갯짓하는 원앙 수컷. 사진 남원시
남원 광한루원에서 한 소녀가 연못에 모여 있는 원앙 무리에 사료를 주고 있다. 사진 남원시


풀숲·나무 속 구멍에 알 낳아


실제 광한루원은 나무와 풀이 우거져 있고, 커다란 연못이 있다. 인근엔 '요천'이라 불리는 하천도 흐른다. 남원시는 "원앙은 광한루원 내 풀숲이나 나무 속 구멍 등에 알을 낳고 부화한다"며 "최근엔 고양이나 들짐승 공격을 피해 주로 오작교가 있는 연못 가운데 토끼섬에 모여 있다"고 했다.

봄이 되면 원앙이 새끼 무리를 데리고 광한루원 곳곳을 돌아다닌다고 한다. 학계에 따르면 원앙은 4월 하순부터 7월까지 번식한다. 한배에 9~12개 알을 낳는다. 암컷이 알을 품는 기간은 28~30일이다.

남원 광한루원 내 연못에서 원앙 무리가 돌아다니고 있다. 사진 남원시


"잉어 이어 새로운 명물"


노환순 남원시 관광시설사업소 시설지원팀장은 "관광객이 원앙을 보고 엄청 신기해하고 좋아한다"며 "잉어에 이어 광한루원에 새로운 볼거리가 생겼다"고 했다. 광한루원 연못엔 비단잉어·토종잉어 등 1000여마리가 산다.

노 팀장은 "잉어가 겨울엔 물밑으로 내려가 동면하기 때문에 자판기에서 파는 사료를 줘도 안 먹는다"며 "사료를 주면 원앙이 쏜살같이 와 먹는데 특히 아이들이 즐거워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광한루원은 연간 77만명이 찾는 명소"라며 "원앙 인기 덕에 관광객이 더욱 몰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중랑천 용비교 부근에 출몰한 원앙 200여 마리. 이 영상을 촬영한 윤무부 경희대 명예교수는 "한두 마리 나타나는 것은 본 적이 있지만 이렇게 집단으로 나타난 것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일"이라고 말했다. 천연기념물 327호인 원앙은 주로 동아시아에 서식한다. 2018년 뉴욕 센트럴파크 연못에 원앙 한 마리가 등장해 인파가 몰렸었다. [성동구청 유튜브 캡처]


중랑천서 200마리 포착…"반가운 일" vs "SOS"


이와 함께 서울 중랑천에서도 최근 원앙 200여마리가 월동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지난달 16일 소셜미디어(SNS)에 "화합과 사랑의 상징인 원앙이 성동구에 무리 지어 나타났다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적었다.

이에 대해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측은 "중랑천 하류는 서울시 1호 철새보호구역으로 매년 원앙이 1000마리 넘게 찾는 곳이지만, 올해는 외려 그 수가 크게 줄었다"며 "진풍경이 아닌 철새가 보내는 SOS(조난 신호)"라고 지적했다. 한강 측은 "원앙 수가 급감한 건 하천 개발로 서식 공간과 먹이가 줄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지난해 5월 26일 남원 광한루원에서 열린 '93회 미스춘향선발대회' 수상자. 사진 남원시

남원=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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