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온 걸그룹도 "놀랐어요"…31년 반도체학회 '회춘 역주행'
지난달 24일 오후 12시 서울역에서 출발한 KTX 열차가 경주역에 도착하자 승객들이 우르르 내렸다. 대부분 20~30대였다. 이들은 역에서 나와 대기 중인 ‘한국반도체학술대회’라고 쓰인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남은 자리 없이 꽉 찬 버스 4대는 학술대회가 열리는 경주 보문단지로 이동했다.
올해 31회를 맞은 한국반도체학술대회가 지난 24일부터 사흘간 경주 화백컨벤션센터에서 열렸다. 20대 학부생부터 교수, 기업인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반도체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최신 반도체 기술에 대해 공유했다.
반도체 산업 성장에 학회도 커져
국내 반도체 산업이 성장함에 따라 반도체 학술대회의 규모도 점차 커지는 추세다. 한국반도체 학술대회는 1994년 처음 개최됐는데, 당시에는 몇 명이 참석했는지 참석자 수가 집계조차 되지 않았다. 집계가 처음 시작된 1998년의 참석자 수는 793명이었다. 올해에는 이보다 366%가 증가한 3700여명이 참석했다. 역대 최대 규모다. 올해 발표된 논문 건수 역시 1172건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학술대회가 다루는 분야도 다양하다. 설계, D램,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계측, 노광 등 총 22개 분과로 반도체와 관련된 거의 모든 연구를 포괄한다. 안기현 한국반도체협회 전무는 “해외 유명 반도체 학회도 설계 분야나 메모리 등 특정 분과별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렇게 모든 분과를 총망라하는 학술대회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라고 말했다.
학술대회는 그동안 한국반도체협회·기업·대학이 2년마다 공동주관했다. 올해에는 포스텍이 공동으로 주관했다. 기업 주관사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DB하이텍이 돌아가며 맡고 있다.
학회의 각 세션에도 기업인들이 발표자로 참여해 자사의 최신 연구를 공유한다. 이번 대회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연구진들도 발표자로 나섰다. 한 기업 관계자는 “발표 자료를 만들고 나면 회사에서 보안상 문제가 없는지 검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라며 “처음에 만들었던 발표 자료 슬라이드는 26장이었는데 수치 등 민감한 기술 관련 내용이라고 판단된 부분은 회사에서 모두 삭제했고 결국 준비한 발표자료 절반이 날아갔다”라고 귀띔했다.
이렇게 보안이 민감한데도 기업들이 학술대회에 참가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바로 인재 유치와 정보 공유를 위해서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학술대회야말로 반도체 인재들이 한데 모이는 자리인 만큼 이들에게 우리 회사는 이런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리고 우리와 함께 일하고 싶어하게끔 만드는 게 중요하다”라며 “기업인들도 많이 오니 최신 트렌드를 확인하기에도 좋은 자리”라고 말했다.
학술대회지만, 석·박사뿐 아니라 학부생도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인하대 반도체융합전공 학부에선 학생 26명이 몰려왔다. 행사장에서 만난 이 대학 4학년 학생은 “관심 있는 세션을 찾아 듣고 흥미로운 논문 포스터는 사진 찍어 저장했다”며 “석사에 진학할지 반도체 기업에 취업할지 고민 중인데 학회 참석이 도움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번 학술대회에선 학부생 논문 186건이 발표됐다.
축제의 장이 된 학술대회
눈에 띄는 것은 저녁에 열린 축제의 장이다. 학술대회 이틀째 밤에 열린 네트워킹 세션에선 가수 스테이시와 윤성의 공연이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행사장에서 배포된 야광봉을 들고 스탠딩 파티로 공연을 즐겼다. 이날 공연한 가수 스테이시는 “한국에서 제일 큰 반도체 학회라고 들었는데 예상과 달리 젊은 층이 많아서 놀랐다”며 “기존 내 팬들의 응원 방식으로 반도체 전문가들이 호응해줘서 뿌듯했다”고 말했다. 가수 윤성은 무대에 올라 “이렇게 많은 공대 전공자들 앞에서 노래 부르는 건 처음”이라며 “한국 반도체 산업을 이끌 인재들이 모인 곳이라 들었는데 여러분들이 미래를 이끌어주면 나 같은 사람들이 그 수혜를 볼 것 같다”고 말했다.
이병훈 한국반도체학술대회 대회장(포스텍 반도체공학과 교수)은 “올해 학술대회는 31회로, 국내 반도체 업계가 한 세대를 지나 다음 세대로 배턴을 넘긴다는 의미가 있는 만큼 젊고 활기찬 축제의 장을 만들려고 노력했다”며 “학회 기간 내내 열심히 참여하는 학생들을 보며 한국 반도체 산업의 장래가 밝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다.
경주=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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