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샘 올트먼의 막연한 철학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장 뜨거운 단어는 ‘인공지능(AI)’이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1월 초에 열렸던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4의 핵심 주제는 AI였다. 세계 유수의 기업들이 AI를 자사 서비스에 어떻게 접목했는지 뽐냈다. 최근 열린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에서도 AI는 주요 키워드였다.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재계 지도자, 정치인들이 앞다퉈 AI가 불러올 미래를 강변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도 전 세계는 한 남자의 행보에 특히 주목한다. 챗GPT를 만들어 생성형 인공지능 열풍을 일으킨 오픈AI의 샘 올트먼 최고경영자(CEO)다. 챗GPT의 등장은 농업혁명, 산업혁명, 정보혁명 이후 산업 패러다임 전체를 AI 중심으로 바꾸는 기폭제라는 평가가 붙는다. 자연스레 올트먼 CEO는 현재 인류 전체를 통틀어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로 꼽혔다. 올트먼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어떤 목표를 가지고 AI 기술을 개발하는지는 온 인류의 관심사가 됐다.
하지만 정보기술(IT) 전문가들조차 올트먼이 어떤 기술 철학을 가졌는지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렵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AI가 불러온 윤리적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그렇다. AI가 일상으로까지 파고든 이후 생성형 AI를 활용한 범죄가 발생하고 비윤리적인 활용이 늘었다. 이로 인해 오픈AI의 책임론까지 대두됐지만, 정작 올트먼은 이에 대한 입장을 명쾌하게 내놓지 않았다.
향후 AI가 인간을 뛰어넘는 지적 능력을 보이고, 인류를 공격할 것이라는 식의 불안감에 대해서도 입을 닫는다.
지난 17일(현지시간) WEF에서 열린 비공개 특별대담에서 올트먼 CEO는 인간과 같이 포괄적인 지식을 기반해 업무를 처리하는 범인공지능(AGI)이 출현하는 시점이 언제냐는 질문에 “AGI의 정의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답을 피했다. 그는 “전 세계가 AGI에 더 가까이 갈수록 위험과 스트레스, 긴장 수위가 모두 올라갈 것이고 낯선 일이 더 많이 생길 것”이라며 “더 많이 준비하고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일반론으로 답을 대신했다.
지난 11일 공개된 올트먼과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와의 인터뷰 팟캐스트에서도 올트먼은 AGI와 관련해 ‘막연한 언어’를 이어갔다. 그는 AGI가 개발되면 나타날 우려에 대해서 “기술을 연구하는 데 어려운 부분이 많지만, 이 일이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라면서 “균형감을 갖는 것이 내가 하는 일 중 마지막으로 힘든 일일 수 있다”고 말했다.
스스로 AGI를 개발하는 데 상당한 만족감을 얻고 있고, AGI가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이라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그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선 판단을 유보하겠다는 것이다. 게이츠 창업자가 “AGI가 나타나면 나쁜 사람이 시스템을 통제하는 우려가 생긴다. AGI와 같은 시스템이 통제권을 장악할 가능성도 있다. 기계가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면 혼란스러워진다. 교육(학습)을 통해 개선하겠지만 무엇을 위해서 교육해야 할지 고민”이라며 기술적 딜레마에 대한 고민을 깊이 있게 표현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올트먼 CEO는 AI 기술의 진일보가 불러올 장밋빛 미래를 굳게 믿는 것으로 보인다. AI는 인간을 도와주고 인간의 능력을 보완해주는 기술이라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 빛을 발하기 위해선 진일보로 발생할 반작용과 부작용에 대한 깊은 성찰이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올트먼의 인류애적 고민의 흔적은 희미할 뿐이다. AI에는 개발자의 철학이나 이념, 사상이 투영될 수밖에 없는데, 올트먼은 불명확하다.
올트먼 CEO가 몸담은 오픈AI는 2015년 비영리단체로 설립됐다. “인류를 위해 AI를 연구한다”며 설립 목적을 내세웠었다. 특히 AGI가 출현할 경우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지를 AI 연구를 통해 알아내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올트먼의 막연한 언어를 접하다 보면 오픈AI의 설립 철학은 이미 무너지고 수익성을 추구하는 단체로 변질한 것 아닌지 의문이 든다.
지난주 올트먼이 한국을 찾자 국내 재계 1~2위 기업 경영진이 극진히 대접했다. 조만간 국내 기업들이 올트먼 CEO가 촉발한 인류와 AI의 위험한 속도전을 보조하는 역할을 할 것이란 막연한 우려가 떠올랐다.
전성필 산업1부 기자 fe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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